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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문 Nov 30. 2018

가면을 벗겨 맨얼굴을 마주했을 때가 제일 재밌는 거야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리뷰

  포스터에서부터 [나를 찾아줘], [서치]를 들먹이는 추적 스릴러라니... 속된 말로 기본빵은 하는 장르여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저 그런 클리셰만 남발하는 영화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다. 나 역시 그랬고, 이 영화 역시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예상은 첫 시퀀스에서부터 완벽히 무너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엄연히 블랙 코미디이다. 적절히 추적 스릴러들의 훌륭한 클리셰들을 사용하며, 때로는 역으로 비꼬기도 하면서 교묘하게 유머로 점철된 이 영화는 감독 이름을 듣는 순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스파이],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고스트버스터즈]의 폴 페이그

 

그래 폴 페이그, 영화 [스파이],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의 그 폴 페이그이다. 이 영화에 안나 켄드릭이 주연일 때부터 알아챘어야 하는 데...  감독 이야기는 한 줄로 넘어 감고, 배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친구의 간단한 부탁으로 인해 혼돈의 사건으로 빠지게 되는 스테파니를 연기한 안나 켄드릭은 어찌 보면 윌 스미스 계열의 배우이다. 마치 윌 스미스가 모든 영화에서 윌 스미스를 연기하듯이, 언제나 그녀의 모든 영화 속 그녀의 캐릭터는 하나같이 똑같다. 이쯤 되면 안나 켄드릭을 디스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윌 스미스도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알아두자. 안나 켄드릭이 연기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안나가 아니면 대체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를 대체할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뛰어든 사람에게 엄청난 칭찬 아닌가. 그녀의 연기톤에서 오는 엉뚱하지만 사랑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실수들조차 그녀답다며 자연스럽게 납득되는 구조들은,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지점을 커버해준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전반에 나올지도 모를 ‘왜 저렇게 까지 하는 거야?’라는 물음에 대해, 그녀에 대한 영화 속 사전 지식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안나 켄드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진다.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말도 없이 사라지 게 되었음에도, 화를 내는 대신 그녀의 가족을 먼저 걱정하는 스테파니(안나 켄드릭)의 모습이나 그렇게나 진심을 다해 걱정하던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남편 숀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 영화가 정확히 코미디 장르라는 반증이다. 기괴하고 이상한 상황이지만 그 안의 룰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상황에서 개연성이나 인과관계를 이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두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하는 긍정 싱글맘 스테파니와는 완벽한 대척점을 형성하는 에밀리는 가십걸로 유명해진 배우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맡았다. 에밀리는 스테파니와는 다르게 멋진 집, 호화스러운 옷, 잘 생긴 남편, 잘 나가는 직업까지 갖고 있지만 상냥함이나 가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입은 데드풀 못지않게 걸걸하고, 자신의 상관에게 까지 욕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인물이다. 그 둘의 대비는 오프닝 장면부터 그들이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그려진다. 스테파니는 자신의 요리부터 소소한 일상까지 브이로그를 통해 공개하지만, 에밀리는 공원에서 멋지게 찍힌 사진조차 용납 못한다. 에밀리는 마티니 칵테일조차 자기 식대로 만들어버린다. 진과 차가운 잔, 얼음은 절대 안 된다는 규칙은 따르지만 베르무트나 올리브 따윈 준비하지 않는다. 얇게 슬라이스 한 레몬 껍질만 있으면 될 뿐이다. 그러나 스테파니가 만든 요리들은 정석적이며 레시피에 충실하다. 에밀리의 실종 후 사체가 발견되고, 숀과 닉키의 빈자리는 고스란히 스테파니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형사가 찾아와 숀이 최근에 들어놓은 에밀리의 사망보험금을 알려주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스테파니에게 그저 빵 부스러기를 찾아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음 장면에서 스테파니는 다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 빵 부스러기를 뿌린 시저 샐러드를 올린다.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인물들의 급변하는 상황과 감정 역시도 코믹하게 풀어나간다.

자신의 일상을 인터넷에 공유하는 스테파니
에밀리는 자신의 사진이 남겨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미국의 극작가이자 교수인 로버트 맥키는 자신의 저서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STORY)’에서 코미디를 이렇게 정의했다.

"코미디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지옥 같은 고통 속에 빠뜨림과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지옥의 불길이 사실은 타오르고 있지 않다는 점을 납득시키는 외줄타기를 해나간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은 뿌연 안갯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이 아니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앞서 배치되어 있다.(실제로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도 특별히 부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영화의 마지막은 진실이 이미 전부 드러난 지점에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간의 마지막 정리만이 남아있다. 영화는 마치 이제까지 스릴러인 척하느라 참아낸 것을 토해내 듯 마지막 10분 남짓한 시간을 유머와 개그로 휘몰아친다. 그리고 이제 관객들은 알고 있다 이 중에서는 그 아무도 죽지 않을 것임을.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두 주인공은 거짓말, 위선과 가식으로 덮인 인물들이다. 이 영화가 추적 스릴러의 가면을 쓰고 있는 음흉한 변태라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거대한 주제의식을 극 속에 가장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뜻이다. 알아둬라 누군가의 가면을 벗겨내 맨얼굴을 마주했을 때야말로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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