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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문 Dec 28. 2018

새장에 갇힌, 엄마라는 무게감

미스터리 재난 스릴러 [버드박스] 리뷰

※ 이 글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유럽과 러시아를 강타한 알 수 없는 재난이 드디어 내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남편도 없이 출산을 앞둔 말로리(산드라 블록)는 아직 아기 이름조차 짓지 않은 채 그림 작업에 몰두 중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의 깊은 상념에 빠진 말로리를 위로해주기 위해 동생(사라 폴슨)이 찾아오게 되고, 세상도 등진 채 살아가던 말로리는 그제야 세상 속 집단 자살 현상에 대해 듣게 된다. 별일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말로리는 진료를 받기 위해 들린 병원에서 통화 중이던 여자가 벽에 미친 듯이 머리를 박아대며 자살하는 것을 보게 되고 여동생과 함께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가려 하지만, 이미 자신이 있는 곳까지 사람들이 정신 이상증세를 보이며 혼란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도망쳐 나오던 여동생이 무언가를 본 후 달려오는 자동차에 몸을 던져 죽는 것을 바로 앞에서 보게 된 말로리,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쳐다보면 본인도 그들처럼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로리의 여동생, 무언가를 목격한 후 끝내 차도로 나와 자살한다.


#두 개의 이야기, [버드박스]

 

[버드박스]는 이미 재앙이 한참이나 벌어진 세상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는 말로리의 모습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현재와 5년 전 사건이 시작되던 과거가 교차 편집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현재의 이야기에서는 이미 생존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다는 듯 아이와 자신의 눈을 천으로 가린 채 행동하며, 나름의 살아남기 위한 규칙들을 준수하고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사건이 처음 발발하고 살아남기 위해 한 집에 갇힌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 과거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사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의 군상이 다뤄진다. 현재의 이야기는 말로리의 아이는 왜 두 명인가, 두 아이 중 누가 말로리의 아이인가, 말로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궁금증을 계속 관객에게 부여해주는 반면, 과거의 이야기는 일면식도 없던 인물들과 원인도 알 수 없는 상황, 한정된 공간 등으로 극 중 인물들이 의문투성이인 상황에 놓이게 되어 드러나는 공포감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두 가지 플롯의 교차 진행 방식은 재난 영화가 가지는 상투성을 반감시켜주며 미스테리한 사건을 다루는 작품에서 관객의 시각을 재난의 원인이 아닌 상황에 따른 인물들의 행동 양상으로 방향을 돌리는 효과를 가진다.



#재난 상황 속에 인물들 간의 연결고리

톰과 말로리

영화 초반부 말로리의 그림을 보고 동생은 ‘외로움’이 주제냐고 묻자 말로리는 외로움은 부수적일 뿐,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말로리의 담당 주치의조차 말로리에게 아이가 생길 것임을 주지 시키며 막연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충고한다. 

말로리는 아이의 아버지로 짐작되는 라이언이 떠나가며, 유일한 연결고리인 여동생까지 눈앞에서 잃게 된다. 위험한 순간, 그녀를 도와 집까지 데리고 온 톰(트래반트 로즈) 역시 끝내 그녀와 아이들을 지키다 죽게 된다. 말로리는 엄마 역할을 해내는 것이 아직 미숙하고 어색하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채 걸과 보이라고 부른다. 톰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을 때도 잘 시간이 훌쩍 지났다며 얼른 들어가라고 야단친다. 그리고는 톰에게 절대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말라며, 이루어지지 않을 일들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다투게 된다. 톰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희망적이고, 이루고 싶은 것들을 심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혹한 현실 앞에 언제나 희망적일 순 없는 말로리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다.


더 이상 식량도 부족해지고, 밖을 돌아다니기에는 추종자('그것'을 목격하고도 자살하지 않고 신으로 모시는 집단)들에게 위험한 상황에 처인 말로리와 톰은 무전 끝에 안전한 지역을 찾게 된다. 그곳도 믿을 수 없다며 부정하던 말로리는 톰의 죽음 앞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직감한다. 보이와 걸을 데리고 필사의 여정을 떠난 말로리는 강의 급류에서 누군가는 물살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이와 걸, 두 명 중 말로리는 누구에게 임무를 부여할지 고민한다. 



#새장에 갇힌, 엄마라는 무게감


영화 [버드박스]에서 새들은 ‘그들’의 존재를 탐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말로리는 이를 알고 새들을 박스에 담아 가지고 다닌다. 그녀에게 그들은 피해야 하는 존재고 그들을 넘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과거 장면 속 톰과 집안의 인물들이 겪는 도전들은 그녀에게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그런 행동들은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일 뿐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이름 같은 감상적인 것들은 불필요하다. 영화의 시작부에서 아이들에게 절대 눈을 가린 안대를 벗지 말아야 하고 소리에 집중해서 그들이 온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며 다그친다. 그 작고 연약한 아이들이 얼마나 훈련되어 있는지 어떤 칭얼거림도 하지 않은 채 말로리의 말을 따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생존에만 병적으로 신경 쓰는 것은 아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빈집을 터는 과정에서 그녀는 톰에게 보여줄 슬립 드레스를 챙기는 등 단순히 생존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녀에게 아이들은 의무감 일지 모른다. 그녀에게 부모가 됨은 단순히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지나지 않아서 일까, 그렇기에 톰과 의견이 대립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과 아이들을 연결하는 고리인 톰마저 잃게 되자, 말로리는 자신의 아이들과 직접 연결되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녀의 방식대로라면 그녀는 두 아이 중에 급류를 보고 노 젓는 것을 지시할 ‘눈’ 역할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의 존재를 보는 눈을 통해 병드는 구조는 즉, 상대를 인식하는 첫 번째 감각인 시각을 통해 확산된다. 그 속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외면하던 말로리는 두 아이를 인식하고 서로 연결 지어짐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달한 그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연결 지어지는 존재들의 생존은 나와 다른 타인과 관계 맺어지는 행위에 획일적인 방식만을 고집하던(다른 이들과 관계 맺음에 서툴던) 말로리의 인식 변화와 만나 부모-자식, 연인 관계, 동료 등 여러 가지 다양한 관계 연결에 있어서 발생하는 두려움을 떨쳐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영화 [버드박스] 마지막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날아가는 모습처럼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관계'라는 인식이 주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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