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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문 Jan 18. 2019

성장은 없고 각성만 남은 글래스

영화 [글래스] 리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영화 [더비지트]로 다시 재기에 성공했던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다음 작품인 [23아이덴티티]를 흥행에 성공시켰다. 자신의 장기인 독특한 아이디어와 영화 속 디테일한 조각들이 종전에 가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미스테리한 이야기 설계능력은 그만의 영화적 화법에 열광하는 팬들을 만들어냈다. [23아이덴티티] 결말 속 감독의 전작인 [언브레이커블]과 같은 세계관임을 보이며 끝을 내자, 많은 이들이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과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의 충돌을 스크린에서 보길 기대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최종장을 장식할 영화 [글래스]가 개봉했다.



#1. [언브레이커블]과 [23아이덴티티]에는 있고, [글래스]에는 없는 것    


영화 [글래스]는 예고편에서부터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단순히 던과 케빈의 대결일 줄 알았더니, [언브레이커블] 속 미스터 글래스(사무엘 잭슨) 엘리야 프라이스까지 등장시켜 삼파전을 예고하고 제목에서부터 [글래스]라니, 엘리야가 어떤 흑막을 지닌 채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영화 [글래스]는 이전 두 작품에서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장점들이 사라진 형국이었다.

샤말란의 장기인 미스테리한 상황으로 몰고 가기에는 이전 두 작품에서 이미 너무 많은 정보들이 풀려버린 상태여서일까, 영화는 결말을 향하는 엔딩 부분을 제외하고 시종일관 기대감만 증폭시킨다. [언브레이커블]에서는 데이빗 던이 진짜 슈퍼 히어로로서 능력이 있는지, 그 힘의 진위여부가, [23아이덴티티]에서는 왜 케빈은 여자 아이들을 납치했으며 무엇을 기다리고 무슨 일을 꾸미는지 등 관객에게 영화 내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두 영화는 쉴 틈 없이 관객에게 알 수 없는 힌트 조각들을 던져주며 겹겹이 쌓인 진실 더미를 한 꺼풀씩 벗겨주는 과정을 통해 샤말란 영화의 특성상 가지는 정적인 요소와 연출들에서 오는 지루함을 가감해주었다.(이는 샤말란의 호평받은 작품들이 가지는 일련의 특징이자 그의 망한 작품들이 늘 놓치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글래스]에서는 엘리야의 등장 전까지(혹은 그의 등장 이후로도) 관객에게 부여하는 것은 궁금증과 호기심이 아닌 기대감일 뿐이다. 샤말란을 잘 아는 팬들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가 엄청난 액션 장면과 피 튀기는 둘(던과 케빈)의 대결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그려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결말에서 꺼내놓는 색다른 관점의 이야기 서술 방식은 시작과 중간에서 관객에게 성실히 심어놓는 궁금증 없이는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일 뿐이다.



#2. 미스터 글래스의 각성 

[언브레이커블]에 이어 두 번째로 미스터 글래스로 각성한다.

샤말란의 영화들 속에서는 특히 부자관계(어른과 아이의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등)의 모습을 찾기가 쉽다. [식스센스] 속 정신과 의사-환자, [언브레이커블], [싸인]의 아버지-아들 이런 관계들이 주는 가장 큰 키워드는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샤말란 영화에서 성장의 개체는 아이나 자식이 아닌 아이들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어른에 있다. [언브레이커블]에서는 이혼위기와 열차사고, 운동선수로서의 실패 등 트라우마를 가진 데이빗이 엘리야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알아가며 조셉(아들)에게 보다 멋진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성장한다. [23아이덴티티]에서는 보다 특이하게 ‘성장’을 확장시킨다. 학대받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호 장치로 내면의 다른 인격들을 탄생시킨 케빈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비스트’를 만들어낸다. 그런 케빈에게 납치되었던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역시 같은 학대 트라우마를 지닌 소녀였고 그녀만 비스트에게 살아남게 된다. 그 일을 통해 케이시는 자신의 삼촌을 고발하게 되고, 그 일로 그녀는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에 ‘성장’을 통해 어른이 된 케이시의 모습은 [글래스]에서 보다 뚜렷하게 묘사된다. 케빈은 너무 나약해 다른 인격들에게 주도권을 뺏기기 일쑤지만 그런 그를 보듬고 이해하고 보호하려는 존재는 그의 다른 인격들도 아닌 그에게 피해를 입을 뻔한 케이시이다.

[23아이덴티티]에서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존재와 방식이 반드시 선할 필요는 없다는 신선한 방식을 보여주는 한편 비스트의 악행이 결국 그의 뜻에 따라 누군가를 각성(복수하고 보호한다는 명분)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글래스]에서 각자 삼인의 초인들에게 ‘히어로’인 동시에 ‘빌런’인 이중성을 부여해준다. 결국 전작들 속에서는 악인(빌런)으로만 남겨진 미스터 글래스에게 부족한 ‘히어로’적인 모습을 부여해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인 것이다. 결국 영화 [글래스]는 엘리야 프라이스의 미스터 글래스로 되는 성장을 담은 영화인 셈이다.

케빈을 보호하려는 성장한 케이시


#3. 그러나 영웅은 되지 못한 글래스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샤말란 감독의 영화 속 ‘성장’에는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글래스] 속 엘리야에게는 그가 보호해야 하는 존재가 없다. 던에게는 조셉으로 대표되는 일반 사람들(악한 무리에게 피해를 받는), 비스트에게는 케빈으로 대표되는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엘리야의 고난과 역경은 너무나 특수한 케이스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결국 히어로는 되지 못한다. 그는 코믹스 속 전형적인 악당일 뿐이다. 목적과 수단은 있지만 타당성이 부재하기에 그는 악인으로서 각성하지만 성장하지는 못한다. 

이야기의 골격이 그렇기 때문에 [글래스] 속에서는 유독 샤말란 영화들의 특징인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이 현격히 줄었다. 결국 샤말란의 주특기인 과거 회상과 현재 이야기가 함께 가는 플롯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확장된 인물관계에 맞게 조셉, 케이시, 엘리야의 엄마 등, 투입된 인물들 간의 얽힌 구조로 대신한다. 그러나 이미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정립된 이상, 그런 구조를 통해서는 관객에게 긴장감을 형성해주지 못한다. 결국 [글래스]는 결말로 가는 샤말란 특유의 추진력을 잃어버린 셈이다.        

왼쪽부터 조셉, 케이시, 앨리야의 엄마


영화 [글래스]는 앞 선 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코믹스 속 보이는 전형적인 히어로와 악당의 탄생 그리고 그들의 각성을 보여준다. [언브레이커블]에서는 히어로를 찾아내고 훈련시키는 조력자일 줄 알았던 인물이 사실은 빌런이었다는 방식으로, [23아이덴티티]에서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소재로 한 범죄 스릴러에서 히어로 장르 속 완벽한 빌런 탄생을 보여주었다. 결국 샤말란은 이야기 전체를 비틀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 전형적인 클리셰를 가져와 앞부분 혹은 중간부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빼내 순서를 재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신선함을 선사한다. 그는 이 방식을 통해 클리셰가 가지는 전형적인 재미 요소는 취하고, 그에 더해서 미스테리함을 만들어낸다. [글래스]에서는 [23아이덴티티]처럼 장르를 속일 수도 없고, [언브레이커블]처럼 중요한 한 부분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앞의 두 편까지 이용하여 일련의 이야기 방식이랄지, 상업 영화계의 당연한 기조랄지, 혹은 코믹스 연작 방식일지 모를 어떠한 답습을 타파하며 관객에게 놀라움을 주려했다. 이를 발상의 전환으로 대단하게 바라볼지, 반전만을 위한 잔재주로 바라볼지는 관객분들이 직접 판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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