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혁의 <중급 한국어>를 읽고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042
나는 이 책이 12권짜리 시리즈라고 해도 전부 다 읽을 것이다. 신간이며 리뷰할 책들이며 다 미루고 그것부터 읽을 것이다.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제목만 보고 그냥 넘겨버렸던 과거의 나를 한대 쥐어박고 싶다. 맨날 서점에 새로 등록된 책 훑으면서 소개 글 열심히 읽으면 뭐 하냐고. 언제쯤이면 좋은 책을 놓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중에 빠르게 <초급 한국어> 준비해두었다.
자서전은 백만장자 CEO나 유명 정치인, 특별하고 대단하고 빛나는 삶을 살았던 사람만이 쓰는 그런 글이 아닙니다. 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들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이에요.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p.12
이 책은 현실의 문지혁처럼 소설을 쓰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문지혁'의 이야기다. 책 속의 문지혁은 두어 권 책을 출간했지만 등단은 하지 못한 채로 계속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고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시간강사로 글쓰기를 가르친다. 동시에 문지혁은 남편이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아빠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 수업과 문지혁의 일상이 자연스레 교차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우리는 문지혁의 글쓰기 수업을 함께 듣고 생각에 잠기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어지는 문지혁의 일상은 비웃기라도 하듯이 뒤엎어버린다. 수업하는 문지혁과 일상을 살아가는 문지혁의 이야기를 읽으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고 자주 빵 터져서 웃었다. 그리고 조금 눈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이 책은 왜 이렇게 모든 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대부분의 한국문학을 읽을 때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서 새롭고 좋았다. 이런 표현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난 한국문학을 읽을 때마다 마음을 불끈 쥐어야만 읽을 맘을 먹을 수 있다. 이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것과 고민, 일상의 다정한 순간이나 감동 그리고 웃음까지 모두 있다. 그래서 좋았나보다.
어떤 내용이 허구이고 어떤 내용이 현실일까 생각하며 읽었다. 검색을 하며(이놈의 광기) 읽었다. 저자의 출간 리스트들을 검색해 보고 책에서는 제목을 살짝 바꾸었다는 걸 알게 됐다. 저자의 계정도 살펴보다가 난 지금 책을 읽는 것이다... 스토킹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충격의 100자 평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읽는 순간에는 좀 웃었는데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공개된 곳에 책의 후기를 남기는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중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신경 쓰는 건 저자가 받을 충격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 내가 쓴 후기가 누군가에게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거를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게 참 싫다. 그래서 좋지 않은 걸 좋았다고, 재밌었다고,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되 그 속에서 내가 느꼈던 빛나는 것들과 좋았던 것들을 잘 써야지 하고 맘먹게되었다.(하지만 적나라한 후기를 보고 대리만족하는 모순적인 인간이 또 바로 나다)
글쓰기 수업의 내용도 참 좋았다. 줄도 많이 그었다. 수업 시간에 소개하는 문학 작품들도 모두 좋아서 따로 목록을 체크해두었다. 카프카, 체호프, 커트 보니것, 셰익스피어 등 많은 작품들이 언급되는데 그중에서도 내 전자 책장에 있는 폴 오스터의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와 서점 장바구니에서 수년을 묵히고 있는 <애도 일기>를 이젠 읽어봐야겠구나 생각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은 당장 읽어보고 싶을 정도지만 <초급 한국어>를 먼저 읽을 거다. 특히 은채가 너무 귀여웠고 은채 덕분에 진짜 많이 웃었다. 그래서 <상급 한국어> 언제 나오나요? 하나도 애매하지 않은데. 나 완전히 문며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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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로부터 상급<고급>한국어는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팟캐스트 '책걸상'을 듣다가 문작가님이 '실전 한국어' 편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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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자신의 이야기와 허구가 섞여있는 장르를 '오토픽션'이라고 한단다. 문작가님이 얘기해주셨다. 자전적 소설과는 또 다르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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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은 없고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
/ '써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책상 앞에 앉지만, 언제나 써야 하는 이유보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죠. p.47
/ 소설의 인물들은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라, 실패하고 어긋나고 부서진 인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소설이란 윤리로 비윤리를 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 비윤리를 통해 윤리를 비춰보는 거울이자 그 둘이 싸우고 경쟁하는 경기장이 아닐까요? p.94
/ 어쩌면 우리의 글쓰기도 이와 같아야 할지 모릅니다. 귀담아듣고, 오랫동안 바라보고, 새롭게 발견하는 것. 글쓰기란 그런 일이고 노력이고 태도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몰랐던 곳, 새로운 지점, 깊은 통찰에 이르게 됩니다. (...) 따라서 우리의 일기는 일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무엇에 관한' 일기여야만 해요. 초점이 맞춰진 일기, 시선이 담긴 일기, 방향이 있는 일기를 써야 합니다. p.176
/ 우리는 애도의 주체이자 최종적으로는 모두 애도의 대상이다. 예외는 없다. p.177
/ 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도는 오직 느린 속도로만 가능하죠. '천천히' 보아야 해요. 망각이 제트기라면 애도는 도보 여행입니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다가 차라리 주저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p.192
/ '뜯어 먹기 힘들지만, 맛은 풍부한' 인생 그 자체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이 단계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행운도 불운도 쾌락도 고통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니까 '좋다, 싫다'가 아니라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냥 사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