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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서가 Apr 18. 2023

문지혁의 오토픽션의 시작

문지혁의 <초급 한국어>를 읽고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0


나는 소설이 꾸며 낸 이야기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소설은 삶을 반영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소설은 삶보다 작지 않고(글자 수도 두 배나 많다) 소설이 삶에 속한 게 아니라 삶이야말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소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우주와 영원히 써 내려가는 거대한 소설의 일부임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p.184


최근에 출간된 작가의 <중급 한국어>를 먼저 읽고서 <초급 한국어>까지 읽어봤다. <초급 한국어>는 이민 작가를 꿈꾸며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문지혁'의 이야기고 <중급 한국어>는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문학에 대해 가르치는 이야기다. 이 책 역시 자전적 요소가 있어서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소소하게 피식거리게 되는 부분은 여전했는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초급 한국어>에서는 문지혁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중급 한국어>에서는 치열하게 지나가는 일상들이 조금 고될지언정 아기자기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걸지도 모르겠다. 이방인으로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쓰러지신 것, 소설가로서의 고민과 방황, 자신에 대한 의문까지 모든 게 좀 쓸쓸했다. <중급 한국어>에서는 문지혁의 문학수업을 함께 들었고 언급되는 다양한 문학을 체크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초급 한국어>에서는 문지혁의 한국어 수업을 함께 듣는다. 뉴욕에서 우리의 언어를, 한국어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타인에게 가르치는 과정에서 '문지혁' 뿐 아니라 읽는 독자도 '한국어'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이 재밌고 새롭다. 난 평생을 한국에서 한국어만 하고 살아온 한국인이지만 외국인에게 우리 말을 얼마나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전혀 없다.  난 지금도 책 읽으면서 자주 사전을 검색한다. 남자친구랑 대화할 때도 "나 얼마 전에 (국어사전, 맞춤법) 찾아봤는데.... 너무 놀랐잖아..." 가 단골 주제다. 서로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고백하며, 그 충격을 함께 나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급 한국어>에서도 느꼈지만 잘 설명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역시 너무 편안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중급 한국어>가 좀 더 생활감이 느껴지고 더 즐겁고 더 웃음 포인트가 많았다. 수업 내용과 일상의 반전있는 티키타가가 아~주 세련됐달까.(작가님이 중급 한국어에서 물결표는 갖다버리랬는데...) 나 역시 두 권의 책을 연속해서 읽으면서 작가에게서 어딘가 모를 반듯함과 선함이 느껴졌는데 이런 말을 쓰기가 조금 신경 쓰인다. 세상에는 다양한 소설이 있다. 실제로 소설을 읽다 보면 정말 다양한 소설이 있다는 걸 느낀다. 소재나 주제가 아무리 비슷해도 전하는 방식은 무척 다르다. 누군가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나는 반드시 있다고 믿으므로 작가가 계속해서 좋은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기꺼이 즐겁게 읽을 거다. 



*

어머니는 살아계시고 여동생은 없다고 한다.


**

오토픽션이란 자전적 이야기에 허구가 가미된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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