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잌쿤 Jun 11. 2018

아직 끝나지 않았다(2017)

그래도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 브런치 무비패스 참여 작품입니다(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프랑스 영화에 또 속았다. 아니, 그런데 엄밀히 생각해보면 프랑스 영화는 한 번도 나를 속인 적이 없다. 항상 프랑스 영화는 그 스타일 그대로를 고수했을 뿐, 헐리우드의 자극적인 연출에 길들여진 내가 멋대로 기대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관객을 좌석에 못박아버릴 영화'라는니 '숨막히는 서스펜스'라느니 하는 자극적인 문구를 들이댔던 영화의 카피를 보면, 기존의 프랑스 영화 스타일이 아닌 빠르고 동적인 전개를 기대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아닌가? 아니라면 내 잘못 맞다.


드물게도 한국과 같이 아직 자국 영화의 파워가 가장 강한 영화 시장인 프랑스는 자국 영화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한 나라이다. 또한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와 상업적인 전개를 지향하는 한국 영화와는 달리 누가 봐도 프랑스 영화인 듯한 독특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고, 또 지켜내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크린 쿼터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한국과는 달리 스크린 쿼터제가 없이도 충분히 자국 영화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프랑스 영화는 정적이다. 느릿느릿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시 스릴러 물인데도 의도적으로 긴박감있는 연출을 사용하지 않는다. 호러/스릴러 영화에는 당연한 듯이 사용되는, 흔들리는 카메라 워크조차 없다. 수많은 영화적 기법 중 연출자의 개입이 두드러지는 것은 최소화한다. 나쁘게 말하면 상업성이 없고 지루하다.


그러나 좋게 말하면 심각하게 리얼하다. 정말로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정말로 리얼하게 연기해낸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해 숨을 헐떡이며 쫓고 쫓기는 극적인 연출에서 지향하는 바도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듯한 '리얼함'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서의 거의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배우들의 감정 연기는 또다른 리얼함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배신감은, 사실 다르게 말하면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배신감이기도 하다. 영화 도입부 부부가 서로 다른 의견을 피력하며 갈등을 일으킬 때는 두 사람 사이의 진실게임이 좀 더 치밀하게 이어질 줄 알았다. 시종일관 퉁명스럽고 짜증만 내는 아들과 딸에게는 뭔가 비밀이 있을 줄 알았다. 스릴러 영화의 고전 '샤이닝'을 연상케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래도 뭔가 극적인 공포스러움이 좀 더 있을 줄 알았다. 모든 기대는 단 10분을 넘기지 않고 무너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기대한 것은 모두 '영화적 연출'에 대한 기대이며 상업성을 중시하는 자극적 작품에의 기대일 뿐이다. 어찌보면 너무 비현실적인 영화들만 만들어낸 헐리우드가 내 '상식적인' 사고를 배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Jusqu'a La Garde , Custody , 2017


매거진의 이전글 트립 투 스페인(201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