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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잌쿤 Sep 17. 2018

명당(2018)

긴박하지만 궁금하지 않은 또 하나의 전형

※ 브런치 무비패스 참여 작품입니다(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는 시대상의 결집이다. 영화는 대중문화이기 때문에, 동시대의 대중들이 원하는 것들을 반영하여 만들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한편으로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대중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감독의 예술적 가치관을 반영하여 만들어지기도 한다. 흥행과 비평, 두 가지는 어느 것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많은 영화 작품들이 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최근에 나라가 혼란하고 경기가 어렵다 말이 많은데 이에 따라 대중문화에서도 세상에 대한 냉소와 비판이 담긴 콘텐츠들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사회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재벌에 대해, 기업에 대해, 정치권력에 대해, 기타 수많은 상류층들에 대한 반감은 이미 영화계에서 권력에 대한 안티테제로 자리 잡았다. 대공황과 세계 대전을 치르며 격변의 시기를 겪은 미국에서 1950~60년대 서부영화가 대세를 차지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며, 같은 시기 시종일관 미국 만세를 외치던 슈퍼 히어로 작품들이 오늘날 점점 더 다양한 철학적 질문들을 담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도 오늘날의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소위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 이야기는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에 좋은 테마이다. 이 부류의 작품들이 특별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이것이 '실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일종의 분노와 좌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나마 권력자들의 더러운 뒷모습과 잔혹한 실체, 처절한 몰락을 간접 경험하며 대중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특히 대중들의 희열을 자극하는 것은 권력자들이 가진 권력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보이는 권력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착이 스스로를 몰락시키는 상황에서 온다. 끝없는 탐욕으로 권력에 집착하며 무자비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분명한 선악을 구분 짓게 하고, 결국 그들의 욕심이 스스로의 형벌이 되어 악을 처단하는 모습에서 관객은 두 가지 희열을 느낀다. 하나는 권력을 가진 '악'이 몰락하는 과정이며 또 하나는 그 권력을 몰락시키는 것이 더 큰 권력이나 힘이 아닌 '정의로운 어떤 것'에서 온다는 점이다.


'명당' 역시 그렇다. 사극의 형태를 띠고 스릴러와 같은 긴박감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이미 많은 작품들을 거쳐온 반 권력적 플롯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얽힌 사람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서 명당이란 '반지의 제왕'에서의 반지와 같이 곧 권력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고작 묏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친구를 배신하며 심지어는 존속살인을 행하기도 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묏자리가 아니라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는 영험한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곧 명당이란 그것에 수반되는 권력과 그 의미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명당'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매우 신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박재상을 제외한 주요 인물들은 모두 권력욕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이 골자다.


다만 문제는 그 안에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예측하기 힘든 전개는 거의 없었고, 위기와 상황 모면의 반복적인 전개가 고전적인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 내 갈등의 긴장감이 극으로 치닫는 흥선군의 배신 장면은 기대만큼 극적이지 못했고 이미 사전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에 있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것처럼 관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고종이 '천자'인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 사실이나 2대에 가서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 정도의 후일담만이 역사적 진실일 뿐,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픽션이지만 설득력이 부족하고 억지 설정을 끌어와 이야기의 매끄러운 결말을 해친 꼴이 되었다. 아무쪼록 영화의 작품성보다 시대의 트렌드에 편승하여 흥행을 노리는 '양산형 시대 비판 영화'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이제는 좀 지칠 때도 된 것 같다.


명당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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