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평단의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는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개봉 당시의 적잖은 이슈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흥행 성적으로 기억에서 멀어졌던 '마더!'는 넷플릭스 목록을 뒤적이던 내게 다시 한번 개봉 당시의 호기심을 상기시켰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접한 '마더!'는 한정된 공간만을 활용한 영화치고는 길다고 할 수 있는 2시간 동안, 너무 급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도록 긴장감의 높이를 훌륭하게 조절한 수작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영화는 마치 1인칭 시점을 표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러닝타임의 모든 쇼트에 제니퍼 로렌스를 배치하고 있고, 상당 부분을 그녀의 뒤에 바짝 다가선 시점으로 진행되는 롱테이크 샷에 할애하고 있다. 마치 집 안을 미궁처럼 보이게 하려는 듯 빠르게 회전하는 카메라 워크와, 그 가운데 언뜻 보이는 제니퍼 로렌스의 감정 변화 연기가 압권이다.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카메라는 거의 그녀를 놓치는 법이 없기에, 관객이 그녀가 아닌 다른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게 영화는 2시간 내내 과도하다 싶을 만큼 관객의 주의를 그녀(이름이 없다)에게 집중시킨다.
전형적인 스릴러라고 하기엔 뭔가 설명되지 않는 의문투성이의 전반부가 지나고, 영화의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되는 장례식 장면이 지나면서 관객의 혼란 또한 절정에 달한다. 영화의 호흡이 그리 빠르지 않기에 천천히 장면들을 음미하며 나름의 해석을 할 시간은 충분하지만, 이 작품이 불친절한 것은 영화의 호흡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난해한 코드들로 씬들을 연결하는 감독의 사악함(?) 때문이다.
세상에 내릴 '말씀'을 창조하기 위해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남편과 그를 위해 헌신적으로 집을 만들어가는 여자, 두 사람의 터전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남편의 환영 속에서 하루 신세를 진 그는 갈비뼈의 상처를 드러낸 뒤 다음날 여자와 함께 나타난다. 여자는 비상식적으로 무례하고 제멋대로이며 결국 남편이 엄격히 금했던 집안의 금기를 깨뜨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남의 집에서 정사를 벌인 부부는 이번에는 두 아들과 함께 나타난다. 형은 동생과의 말다툼 끝에 머리를 내리쳐 죽게 만들고, 집에는 이를 계기로 급격히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대책 없이 집을 파괴하는 사람들에 질린 아내는 남편에게 간청하여 사람들을 전부 내보낸다. 시간이 지나고 남편은 '말씀'을 완성하여 세상에 전파하고, 이를 본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전보다도 더욱, 열정적이고 파괴적으로 돌변하여 결국 남편과 아내의 하나뿐인 아들마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초반에는 공포스러운 집이나 불친절한 방문객, 의도를 알 수 없는 남편의 변화와 같은 기존의 호러영화 소재들을 두서없는 세련됨만 섞어서 짜깁기한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중반이 지나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납득할 수 없는 용서를 말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조금씩 그 실체가 느껴지더니 결국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결말부의 대사에 이르러서야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까지 있었던 복선들이 연결되는 순간, 겨우 '마더'라는 제목의 의미에 나름의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그냥 기독교 코드가 섞인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종교적인 상징들이 극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었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염없는 세월 동안 기독교는 끊임없이 동일한 콘텐츠를 두고 해석을 달리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파생시켰지만, 그들의 신을 일컫는 'Father'라는 단어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Father'가 있다면 응당 'Mother'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거늘, 성경은 어찌 어머니의 존재를 이리도 배척하고 있단 말인가? 만일 여호와인 '아버지'에 상응하는 '어머니'가 있었다면, 이 영화는 바로 그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창조와 인간의 행위에 대한 고찰인 것 같다.
창세기에서는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고 신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할 때 '우리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성경이 유일신 사상을 담고 있음에도 여기서 말하는 형상의 주체가 복수인 것은 성삼위일체 또는 천지보다 먼저 창조된 천사들 등의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남녀가 합하여 생명이 잉태되듯 신과 신을 보필하는 어떠한 존재가 합하여 그들의 형상에 따른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문구임에는 분명하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제니퍼 로렌스(이하 '마더')는 신을 보필하는 천사 또는 대자연 등 무엇으로든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의 신분으로서 '인간을 질투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천사들이란 인간을 질투하는 존재들이다. 자신들보다 거룩함에 있어 한참 떨어지는 존재들인 주제에 감히 신으로부터 자유의지를 선물 받고 무한한 신의 사랑을 누리는 축복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마더'는 끊임없이 집을 수리할 뿐 집 밖을 나가지 못하지만, 외지에서 나타난 인간들은 그녀의 집을 마음대로 파괴하기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신은 언제나 그들을 포용하고 사랑으로만 대하며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죽였음에도 용서해야만 한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신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영화는 종반부 다시 한번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마무리된다. 오히려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야말로 비정상적이고 무모하다.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더'의 존재를 통해 영화는 인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조건 없이 태어나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얻었음에도 그에 대한 감사나 절제는 할 줄 모르고 더욱 욕심만을 주장하며 집의 공동 주인인 '마더'를 괴롭히는 존재. 영화는 신을 숭배하고 추앙한다고 말은 하지만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마더'를 오히려 해치려 들고 그의 아들까지 삼켜버린 존재들이 관객들에게 발암을 일으키는 비정상적 존재들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바로 그 자체임을 조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