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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잌쿤 Jun 27. 2020

북호텔 / 외젠 다비

드라마틱한 변주가 없는 평범한 삶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한 번쯤은 일어났을 법한 공감이 매우 쉽고 빠르게 다수에게 자리 잡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이야기할 것 같지만 사실은 특별한 이야기가 없고, 독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것 같지만 끝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결국 나는 무엇을 읽은 것인지 모르겠는 공허함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읽었다는 여운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느껴진다면 이미 그 삶은 평범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북호텔'과 같은 낯선 배경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인물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것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아감과 동시에 그 속에 '애환'이라는 이름의 불편함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평범함의 기준에서 조금씩 어긋난 이 삶의 오점들이 전간기 파리의 서민들과 오늘날의 서민들 사이에 동질감을 만들어준다.



20세기 초까지의 유럽은 열강들의 땅따먹기 놀음으로 국가 간 세력 경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며, 이에 따라 국민들의 애국심과 국수주의적 사상이 더할 수 없이 팽배했던 때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산업화의 결과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생산물과 경제 규모, 이로 인해 더 이상 제지할 수 없었던 인권 의식의 증가가 시대적 요구로 다가오던 시점이기도 했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두 가지 의식은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와도 같았던 열강들의 군사적 충돌에 기꺼이 나라를 위한 우국충절을 바칠 원동력을 제공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필연적인 제국시대의 몰락과 그 이후에 일어날 계급투쟁의 빌미로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19세기 말 일찌감치 파리 코뮌 사태를 겪으며 노동 계급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프랑스에서 서민들을 대변하는 문학이 주목을 받았던 것이 단지 우연의 결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빠른 산업화 속도만큼이나 탈산업화도 빨랐던 파리는 이미 19세기부터 산업 시설을 파리 외곽 지역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파리의 발전을 이끌었던 선진 산업 시설들은 이제 '파리 정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공업 시설로 분류되어 파리 중심지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보면, 노동자 계급이 다수를 이룰 수밖에 없는 산업 시설이 파리의 중심지를 이탈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르주아 계급이 다수의 목소리로서 프랑스 중심부의 보수적 성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운하 냄새를 깊숙이 들이마시고선 거리로부터 올라오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그는 밤 속에 잠긴 거리를 한번 내리 훑어본다. 그에게는 북호텔이 그곳의 중심지같이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고선 서서히 되걷기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끝나고 청년 남성 전체의 1/4을 잃어버린 프랑스는 전쟁에 대한 회의감과 피폐해진 국토, 낮아질 대로 낮아진 애국심으로 인해 승리하였으나 승리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1920년 프랑스 공산당이 창당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의 전간기 동안 프랑스는 좌파 세력과 우파 세력의 잦은 정권 교체로 극도의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 혼란이 가중되어 어떠한 목적이나 희망도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인' 서민들과 이들로 가득한 파리의 변두리 지역, 그 중심에 '북호텔'이 있었다.



이 지역을 관통하는 운하 위에는 '배를 잔뜩 불린' 거룻배들의 운치도 있고, 그 밑에는 악취로 가득한 쓰레기들도 있다. 황혼 무렵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반면 그 안에서 서서히 죽어간 이름 모를 누군가도 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낭만과 내일 하루의 식사를 걱정해야 할 노숙인의 애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계층 간의 갈등이 아닌 단지 오만 가지 인간 군상의 표현일 뿐이다. 누구도 필요 이상으로 강요받지 않고, 누구도 필요 이상으로 행복하지 않다. 그냥 그렇게 모였고, 그냥 그렇게 흩어진다.


루이즈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랐다. 3년 간의 호텔 경영은 루이즈가 체념하고 인생을 받아들이도록 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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