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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황 Apr 18. 2023

사랑과 창의성

어른다움

오늘은 네가 태권도 학원에서 영화를 보는 날이지. 너는 며칠 전부터 그 행사를 가고 싶으니 꼭 신청해 달라고 부탁했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도 마다할 일이 아니지. 신청을 마친 후부터 너는 영화를 보며 먹을 간식을 생각하고, 중간에 마실 음료수도 생각하고, 그곳에 온 친구들과 무엇을 나눠먹을지 계속 고민했지. 결혼하기 전에는 "요즘 애들은 친구 만나려면 학원 가야 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개탄하곤 했어. 아니 어디든 지천에서 뛰노는 애들을 볼 수 있을 텐데 굳이 학원을 가야 한다고? "애들 친구 만들어주려면 엄마도 뛰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니, 친구는 저가 만드는 거지, 그걸 부모가 간섭해?"라고 비판을 많이 했지. 결혼하고 너를 낳으니 현실이 보이더구나.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노출하는 미디어가 지배하는 듯하고, 모두에게 개방된 놀이터는 부모에게 안전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적절히 울타리도 쳐져 있고, 프로그램도 제공되며 무엇보다 핵가족 시대에 부모가 귀가할 때까지 안전을 책임져 주는 학원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만 했을 적에 엄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가 기다리고 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지. 지금 엄마와 아빠가 일하는 것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어. 너는 지금 집에 오면 오롯이 혼자 지내야만 하기에, 엄마는 너를 놀이터로 마음대로 내보낼 수 없지. 태권도 학원은 여러 모로 부모에게 안전감을 주는 놀이터인 거야.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이 서로의 집에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부모끼리 친해서 안전감을 느껴야 친구들끼리 왕래하기도 편하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단다. 모든 부모는 사실, 자식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거야.


오늘 아침, 너의 설렘은 절정에 달한 것처럼 보였어. 아침 일곱 시에 깨어나 밥을 빨리 달라고 조르더니 빵을 초콜릿 잼에 후닥닥 발라 먹고 나서는, 완이가 밥을 다 먹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자꾸 일어나고 싶어 했어. 그만 앉아 있으라고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너는 밥을 혼자 먹을 수도 있는 동생을 생각하지는 않았지. 그럴 수 있다고 여겼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동생이 밥을 혼자 먹게 되니, 좀 힘들어도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면 여덟 살 어린이는 아니니까. 그런데 나도 세수를 못하고 부스스한 상태, 동생은 밥을 먹고 있는 상태인데 혼자 옷을 입고 네가 짜증을 내고 있으니 나도 이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어. 이곳은 건물과 상가의 특징이 거의 없는 신도시, 횡단보도 네 개를 거쳐야 태권도장으로 갈 수 있는 곳, 사방이 소설 속 무진처럼 안개로 둘러싸인 이 시간, 너는 도대체 왜 혼자 가겠다는 걸까. 정말 혼자 길을 나서게 되면 '늑대'같은 사람들이 혹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왜 자꾸 눈물을 흘리는 걸까. 기다리는 동안 수학 문제를 몇 개 풀 수도 있는데 일부러 만화책만 들고 있는 걸까. 그래. 내 인내심은 한계를 초과하고 있었어. 부스스함을 가리기 위해 머리를 빗고 옷을 오랜만에 다른 것으로 입어 보아도 지난밤 완이의 기침이 이어져 한숨도 못 잔 나는 너무나 피곤해 보였어. 완이는 나가기 싫어했지. 너는 계속 발을 동동거리지. 나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점점 잊고 나의 불편함에 몰입하게 되었단다.


네가 얼마나 완이와 같이 가기를 싫어하는지, 내가 "우리 둘은 산책하고 있는 거야. 너는 갈 길을 가."라고 달래야 할 정도였지. 내 딴에는 참고 참으며 태권도장에 도착했어. 무려 한 시간 전에. 미리 가지 않으면 영화 보기 전에 할 수 있는 공놀이와 줄넘기 놀이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끌려가는 기분으로 동행했어. 정문에서 너무 당황해하시는 관장님을 보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너무 부끄러웠다. "네가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관장님이 주말에 얼마나 힘드실까."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부끄러움이 아니었단다. "저 관장님이 나를 어떤 엄마로 볼까."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 생각만 가득 찼어. "한 시간 더 자기가 쉬려고 약속하지도 않은 시간에 나타난 무개념 엄마."라고 나를 속으로 비꼬지 않을까. 어떻게 10시에 애를 보내지 못하고 9시에 보낼까,라고 생각하겠지. 그때 딱 관장님이 원망 섞인 목소리를 내시더구나. "처... 청소도 못했어. 10시에 오라니까." 아, 그때 참았어야 하지. 나는 그러지 못하고 "너 잠깐 나 좀 봐."라며 내 울분을 폭발시켰다. 너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어. 나를 똘망똘망 쳐다보는 두 눈, 대답 끝에 종결 어미 한 음절을 한 계단 높게 발음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발음하는 소리, 꿈쩍하지 않는 눈꺼풀... 이해는 하지. 그게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 무서워해서 몸이 얼었다는 것을. 그런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이게 반항을 하네?'라고 번역이 되더구나. 쉴 새 없이 너에게 뭐라 하기 시작했지. "그러게. 내가 10시에 맞춰오자고 하지 않았느냐. 관장님이 청소도 마음대로 못하게 만들고. 이게 뭐라고 하는 건지 아냐. 이게 피해라는 거다." 네 똘똘한 눈에 눈물이 고여 더 반짝거리고, 잠을 못 잔 나는 더욱 쉬어가는 목소리로 너를 몰아붙이고... 관장님이 마음이 너무 불편했을 텐데 나는 그것도 무시했지.


너를 태권도장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세상에 맞을 만한 행동은 없고, 막 혼날 만한 짓도 없다는 것을 늘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게 내 착각이더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엄마로서 나아지는 나를 만끽할 수 없어서 마음속에 새기지도 않은 생각을 혼자 새겼다고 생각하면서 길가에서 소리 지르는 엄마를 우월감에 젖어 내려다보고, 텔레비전 속에서 눈물을 훔치는 부모를 마음대로 평가한 것은 아닐까. 아마 그렇겠지. 너는 빨리 가고 싶었을 것이고, 나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주의를 줬으면 내가 10시까지 너를 기다리게 했어야 했어. 그런데 나는 너의 요구를 못 이기는 척하며 결국 같이 나왔지. 오는 길에 너의 등을 보면서 화를 내고, 결국 내가 따라왔으면서 관장을 당황하게 한 건 너라고 내가 막 몰아붙인 거야. 너는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옳았고, 나는 그것을 돕는 사람이지. 그러면 나는 그것을 돕기 위해 집에서 조금 더 시간을 견뎌내야 했어. 네가 울더라도, 완이가 지쿠터를 타자고 졸라도 나는 참아야 했지. 참지 못해 먼저 신발을 신고 나왔으면서 내가 화난 이유, 관장님이 당황하는 이유, 네가 우는 이유가 전부 너에게 있는 것처럼 나는 어른답지 못하게 너를 몰아붙였어. 10시까지 가도록 돕지 않았던 것, 정말 미안해. 네가 우는 것도 기다리고, 울음을 달래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도록 하는 것도 내 일인데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내 마음을 몹시 무겁게 해.


조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 시간이야. 나는 네가 늘 내 옆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속에서 아까처럼 네가 네 갈 길을 찾아 나아가길 원해. 네가 나에게 등을 보이고 나아간다고 서운해하지 않기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않기로 나는 무한 번 나에게 약속했지. 그런데 잘 되지 않는구나. 경제적으로 본가로부터 독립하고 스스로 집안의 일을 결정하고, 너를 보호하고 있으니 나는 어른이 맞겠지. 그런데 어른다움을 지닌 어른이 맞을까? 스스로 결정한 일에 책임을 지고 누구의 탓도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게 어이없게 사소한 일상에서 이뤄지지 않고 책임은 자식에게 전가하는 일이 생기다니, 오늘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맞겠지. 내 속의 작은 어린아이가 있어서 그게 완전히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변명하는데 변명하는 것처럼 어른다움과 먼 일은 없겠지. 그래서 그 작은 아이를 다그쳐봐. 어른은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아이를 보호하려면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하라고. 너는 확실히 오늘 그 일에 실패한 거라고. 아마 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가까이 오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서 지금 빨리 나가려고 해. 네가 안심하고 내게 안길 때까지 문 곁에서 너를 기다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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