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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황 Apr 19. 2023

사랑과 창의성

찌뿌둥한 표정


김밥을 먹고 싶으니 근처의 꼬마김밥 집에 가자고 조르던 너와 완이, 미세먼지가 심해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무척 답답하던 참이었지. 미세먼지를 신경쓰지 않고 집에서 나와 외출을 했어. 세상을 어루만지는 바람은 벌써 그 끝이 부드럽게 뭉툭해져 있더구나. 그러고보니 벚나무에도 조그만 움이 트기 시작해서 우듬지의 모양이 달라져 있었어. 이런 저런 가게를 둘러보며 김밥집까지 갔는데 세상에, 김밥집이 문을 열지 않았지. 김밥집이 문을 닫아 김밥을 사 먹을 수 없으니 옆에 있는 피자집을 가자고 너희들에게 제안했어. 그때부터였을거야. 은이, 너의 표정이 달라졌던 것은. 미간에 어울리지 않는 주름을 만들고 눈과 입은 아랫쪽으로 처지고 묻는 말에 대답 대신 고갯짓만 하는 너를 보면서 집으로 냉정하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열 번은 더 들었어.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너희들이 좋아하는 콰트로 포르마주 피자와 내가 먹을 작은 마르게리타 피자를 시켰지. 그러면 네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어. 아니더구나.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데도 턱을 책상에 괴고 다리로 의자를 탁탁 치거나 발목을 굴리기만 했어. 곧 나는 '자식이 뭔데 밥 사주는 엄마가 눈치를 보고 있냐. 애가 버릇이 없어지는 거 아냐?' 이런 식으로 생각이 화산에서 용암 흘러내리듯 마구 분출하더구나.


불현듯 생각의 저 밑에 묻어놓은 나의 어린 시절과 연락을 끊기 전 부모님을 뵈러 갔던 일까지 연결되어 떠오르기 시작했어. 명치가 콕콕 쑤시고 등이 아파 제대로 가슴을 펼 수 없는 날이었지. 너를 데리고 본가에 가니 아버지와 큰고모가 앉아계시더구나. 너를 기다리시던 아버지와 큰고모는 너와 완이를 크게 환영하시면서 키즈 프로그램을 틀어주셨지. 나는 너희들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어. 아버지께서는 몇 번이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말씀하셨어. "아버지 앞에서 어디 죽을 상을 하고 있어! 아플 거면 집에 가서 아파." 아버지가 불편하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그 감정이 심하지는 않았어.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나니 아버지가 차라리 먼 데 사시거나 내가 먼 데서 살아 이곳을 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얼마나 좋을지를 생각하며 서러워했어. "어디가 안 좋은 거냐? 아프다고? 집에 일단 가서 쉬거라." 이렇게 말씀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에도 나의 무뚝뚝한 표정을 매우 싫어하는 분이었지. 


여자에겐 마땅히 여자다움이 있고, 그 여자다움이란 애교나 웃음처럼 남자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남자의 위신을 높여주고 남자의 마음 그릇에 맞춰 행동할 줄 아는 현명함도 여자다움의 일부이다. 이런 여자다움은 특히 가장을 기쁘게 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가부장은 집안 사람들을 거둬 먹이고 살리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의 권위를 높이고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 딸, 손녀 등의 여성들은 이런 여성다움을 적시적소에 발휘할 지혜 또한 매우 필요하다. 이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거나 그의 아픔, 일상을 보듬는 것은 여성의 특화된 기능이니 이를 탁월히 수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깜짝 놀랐니? 네 (외)할아버지의 평생 일장 연설을 들어보면 매우 많은 경우 이런 말씀을 내게 하셨어. 요지는 남성보다 뛰어나지 않은 여성은 더 많은 노력을 해서 남성보다 더 많은 지혜를 발휘하도록 노력해라. 이는 실생활에 적용해 보면 한 마디로 응축되지. “아버지 눈치 좀 잘 살피고 거슬리지 마라.”


나는 늘 거슬리는 집안의 약자였어. 아버지 기준엔 애교 부족해, 살림 능력 꽝이야, 밥 벌어 먹는 능력 하나 제 스스로 못 갖춰서 밤마다 잠을 못 이루고 불안해하는 약한 사람이야, 성격 불같아, 무엇보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을 몰라. 아버지는 늘 웃지 않고 있는 나를 못마땅해 하셨어. 가만히 있을 뿐인데 욕을 먹을 때가 많았지.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미간에 어울리지 않는 주름을 만들고 눈과 입은 아랫쪽으로 처지고 묻는 말에 대답 대신 고갯짓만 하게 된단다. 너무 무서워서야. 아버지의 바람대로 나는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사람이 되었어. 가족을 간신히 건사할 능력을 갖췄지만 직장에 여성으로서 꽃같이 적응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말았어. 무엇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더이상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불효녀의 낙인까지 얻고 말았단다. 연락을 끊으면서 너에게는 어디서나 꽃같은 역할 할 필요가 없다, 애교 대신 활발히 뛰며 아이의 본성을 발휘하기를 응원하겠다고 결심했지.


그런데 그게 쉽지 않구나. 배운 것이 고작 눈치 보기와 강자에게 굴종하기 때문이었는지 너의 표정에서 나의 결단을 무시하는 표정이 나오는지 지켜보게 돼. “야!”라고 소리질렀더니 네가 대답했지. “지금 저한테 ‘야’라고 하신 거예요?” 그게 얼마나 못마땅했는지 속으로 분통을 터뜨렸지만 나중에는 인정했지. 내가 잘못한 거고, 그것에 대해 반격한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남이든 부모든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부르지 않고 비하하는 태도는 나쁜 거잖아. 너는 쑥쑥 자라면서 개천 앞을 뛰어다니며 깔깔 웃는데 나는 90년대에 갇힌 냉동인간이라는 생각을 했어. 이러면서 또 자책을 하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어찌나 시간이 느리게 가던지…내 곁을 서성이던 네가 현관과 바깥의 경계에 서 있어. 정신을 차려보니 너는 문이 닫혀서 내가 놀랄까봐 무서운데도 그곳에 서 있는 거야. 나를 계속 용서하는 너에게 계속 기회를 얻고 있다, 과거를 잊고 너와 누리는 현재를 감사하자고 생각하게 돼. 지금부터 너의 표정이 내 마음과는 상관없음을 명심해야겠어. 지금 너의 모습은 온전하다고, 사랑하면 할수록 계속 빛나게 될 거라고 습관처럼 되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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