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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황 Apr 21. 2023

사랑과 창의성

스마트폰 고장 사건


은아! 엄마는 오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 자동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오고 있는데 앞 차가 갑자기 멈추지 않겠어. 앞 차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 그랬더니 아주 요란하게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구나. 지도 맵을 켜고 옆자리에 나와 같은 방향으로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이 그만 관성의 법칙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지. 의자와 컵 홀더 사이로 떨어져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았어. '눈앞이 하얘지다'라는 표현을 알고 있니?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방전 일보 직전인 스마트폰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정말 눈앞이 하얘졌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 당장 너의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 된 거야. 급한 대로 애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지. 내가 원하는 모델은 무려 95만 원부터 시작하더구나. 95만 원! 사고 말고의 문제보다 더 급한 것은 통화를 하고 앱을 켜서 뭔가를 봐야 하는데 그게 당장 어렵다는 것이었지. 이게 불가능하면? 아, 언제 사러 가는 거지?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어. 할 수 있는 게 뭐겠어? 스마트폰을 자꾸 껐다 켰다 하는 일밖에 없잖아. 켜면 꺼지기를 반복하는 액정을 보면서 아까 떨어진 충격이 그렇게 큰 것인가를 생각했지.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톡톡 책상에 두드리고 있었어.


중독. 인간이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하는 어떤 과정을 일컬어.(앤 윌슨 셰프, <<중독사회>>, 47쪽) 중독에 빠지면 우리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쉽게 해도 된다고 합리화하고 해야 하는 일을 쉽게 뒤로 미루지. 그러면서도 우리가 좀체 포기하려 들지 않는 어떤 것(48쪽)이야. 중독은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소중한 관계나 환경을 소홀히 하도록 만들어. 소중한 사람의 감정에도, 환경의 변화에도 무뎌지게 되지. 우리가 공들여 쌓았던 호감과 상대에게 베풀었던 정성 등이 무너지고 그에게 거짓말을 하게 돼. 그런데도 중독은 중독의 과정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자괴감, 자책감, 무력감, 의존감 등이 자신을 갉아먹어도 자신을 방치하게 되지.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에 중독되어 있을까? 술, 담배, 커피,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지. 그런데 이런 중독도 있어. 공부 중독(오히려 중독되어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칭찬받고 모범생이라고 주변에서 본받으라며 너를 떠받들 거야.), 일 중독(일에 열정이 있다고 하면서 아주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될 거야.), 종교 중독, 돈 모으기 중독(59쪽) 등이 여기에 해당하겠지.


나도 스마트폰 중독자 중 한 사람이야. 갑자기 유튜브의 릴스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면 너를 바라보며 너의 실뜨기를 함께 응원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지. 넌 늘 나를 불러. 나는 흥미롭긴 하지만 네가 하는 놀이보다 중요하지 않은 릴스를 보려고 너를 방치해. 그러면 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나를 보고 나에게 대답을 해달라고. 그러면 나는 조용히 해달라고 엄하게 굴어. 사실은 널 챙기지 않은 나의 행동에 문제가 많은데 말이야. 참지 못한 너는 내게 달려와서 내가 보고 있는 유튜브 릴스-한 여자 아이돌이 허리 털기를 빨리하며 팔을 올리는 동작-를 함께 보자며 화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해. 그러면 나는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빨리 화면을 은행 앱으로 바꾸지. 급하게 이체할 건이 있었던 것처럼, 혹은 납부해야 할 세금이 있어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거짓말이지. 그리고 너도 모르지 않았을 거야.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그건 같이 유튜브를 보기 싫어서라고 너도 생각하겠지. 중독은 이렇게 거짓말까지 하게 만들어. 이뿐만이 아냐. 할 일을 미뤄놓고 기껏해야 아이돌이 팔을 흔드는 동작을 보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에 결국엔 네가 잘 때 즈음에는 매우 바빠질 수밖에 없어. 중요한 일을 대충대충 해버리지. 예를 들면 양말을 둥글넓적하게 개어 놓기, 수건을 풀리지 않게 묶어서 수납하기, 발에 걸리는 의자를 치우기 등은 사소해 보이지만 집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야. 릴스 보는 데에 시간을 다 써버렸으니 양말은 빨래통에서 짝을 맞춰서 신게 되고, 수건은 빨아야 할 것과 빤 것이 섞이게 놔두지. 누군가 부엌으로 걸어가다가 뒤로 우아하게 뻗은 의자 다리에 발가락이 부딪혀 몸을 웅크리기도 해. 중독은 이렇게 우리 집을 혼란에 휩싸이게(140쪽) 만들어.


쓰다 보니 스마트폰 중독자가 딸과의 관계를 소홀하게 다뤘음을 알게 되는구나. 내가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했던 짓들이 너를 방치하는 것이었기에 다시 마음을 잡았어. 스마트폰이 꺼지는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자고. 그래봐야 오는 전화는 남편 것일 뿐인데 남편과 나는 태블릿 PC나 데스크톱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봤어. 마음을 정돈하고 책상 앞에 앉아 너와 완이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지. 아니나 다를까. 너희 둘은 내게 와서 종이 접기를 함께 해달라고 했어. 상어? 색종이가 2장 필요한 고난도 접기라 넘어가자. 거북이? 꼭 중간에 모아 접기 등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니 넘어가자. 너의 원망이 눈으로 전해지는 듯해. "엄마는 종이 접기를 안 해봤어요?" 맞아. 나는 해 본 적이 거의 없어. (지금은 어디서도 잘 찾을 수 없는 종이 인형을 오리고 종이 인형의 어깨에 다양한 옷을 걸치면서 역할 놀이만 지치지 않고 했지.) 찾았다! 고래를 접어보는 거야. 종이접기 책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실금을 바르게 긋고, 분할을 잘해서 세모꼴로 지느러미를 만들었지. 뒤쪽 세모꼴을 작게 접어 꼬리도 만들었어. 완이는 내가 접어준 고래로 바다 놀이를 하고, 너는 해마를 만들어보겠다며 계속 가로선을 접어가며 해마가 서 있는 모양을 제법 구현하더구나. 너와 완이가 하는 것을 나도 함께 하니 귀찮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함께 웃을 수 있었어. 그제야 스마트폰이 때로는 뒷담 화하는 친구처럼 매우 위험한 놈임을 실감할 수 있었지. 너희들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 너희들이 외치는 소리를 막고 싶은 마음, 뭐가 우선순위인지 헷갈리게 되는 정신이 다 이놈 때문인 거야.


자러 가자고 외치며 침대로 들어가는데 너희 둘이 내 옆에서 자겠다고 아우성이야. 은이 너는 나의 등을 꼭 껴안고, 완이는 쭉 뻗은 나의 다리를 끌어안고 엄마는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지. 둘을 어렵게 떼 놓고 침대에 다 같이 누워. 나는 다리를 바닥 쪽으로 내리고 너희 둘을 각각 내 양팔에 뉘어. 매우 불편한 자세지만 마음은 풍요롭구나.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는 이 순간의 사실, 그리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하는 것을 매우 행복해한다는 명백한 느낌이 나를 살게 하는 것 같아. 스마트폰을 보다가 허겁지겁 자러 가자고 하면 너희들이 외쳤거든. "우리도 재미있는 것 보게 해 주세요!" 그러면 나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너희를 몰아 침대로 데리고 들어가야만 했지. 오늘은 그런 작은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워. 자러 가자는 말에 선뜻 따라 들어와서 내 양 볼에 뽀뽀까지 하는 너와 완이가 한없이 사랑스러워. 그러고 보니 중독의 무서운 점이 또 있구나.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쉽게 내다 버린다는 것이지. 스마트폰은 그새 충전이 다 돼서 껌뻑거림을 멈추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어. 그래도 내일부터는 잘 안 보이는 더 깊은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충전시킬까 해. 너희와 밀착돼야 할 수 있는 이 벅찬 일들을 마다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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