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황 Apr 27. 2023

사랑과 창의성

성적과 인성의 상관 관계?


어제부터 흥미로운 뉴스가 인터넷 포털 상위에 계속 떠 있어. 정0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의 아들이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지. 그로부터 언어 폭력을 당한 학우 두 명이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고 해. 상황이 이 지경이었는데도 후보자의 아들은 강제전학 조치에 적법하게 항의하고 진술서 코치를 받아 범죄를 축소까지 했다는구나. 결론은? 수능 준비를 열심히 한 정0신 씨의 아들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합격해서 잘 다니고 있다는 거지. 이 뉴스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인과응보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개탄했지. 아니, 정확히는 끔찍한 학교폭력 가해자가 생활기록부에 아무 증거도 남기지 않고, 피해자에게 정당한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거지. 더 어이없다고 여기는 것은 그런 자가 무려 우리나라 최고 학부인 서울대학교, 그것도 깊은 사색과 성찰을 요구하며 일상의 부정직함에 항의할 법한 철학과에서 수학 중이라는 사실이지. 그러면서 이렇게 될 때까지 학교는 무엇을 한 것이냐. 어떻게 저런 자가 우리나라 명실공히 최고 학부를 가도록 방조했느냐는 식의 사설이 또 돌고 있어. 지칠 때도 됐지만 나는 이런 식의 귀결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검사가 수사지휘권을 사적인 일에 남용할 수 있는 상황, 예비 범죄자에 가까운 인성이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입시제도의 문제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인데 손가락은 여전히 학교만을 향해 있다는 거야. 이게 정말 사태를 파악하는 방식인지 의아해.



우리나라의 검사 수사권 독점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야. 우리나라의 검찰은 수사권을 독점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동원해 없는 사건도 만들어 내는 일들을 역사 속에서 여러 번 반복했어. 다 열거할 수 없으니 무죄라고 밝혀진 것만 말해둘게. 1964년과 1974년 2차례에 걸쳐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한에 투입된 지하 조직'을 처단한 사건이 있어. 1974년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 유지를 목적으로 발동한 계엄 체제인 유신 체제에 반발하는 지식인들을 대거 숙청하려던 것이 목적이었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고 말할 자유를 수호하려 했던 사람들이지. 그 사람들 대부분을 수감시켰다가 풀어줬지만, 평범한 시민 8명은 충분한 증거조차 없이, 유족이 알 틈도 주지 않고 기습적으로 형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을 시켜 버려. 국제적으로도 이 사건이 알려져 국제법학자협회는 '국제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4월 9일을 정했지. 옛날 이야기가 아냐. 이런 사건은 또 반복돼. 불과 10년 전 평범한 공무원을 남파 공작원으로 몰았던 사건도 최근에서야 무죄 판결이 났단다. 이밖에도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성폭력 피해자 신원 노출 사건, 증거가 다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혐의를 찾을 수 없다며 제 식구인 검사의 비리를 감쌌던 99만원 회식 사건 등. 자신이 수사, 구속, 기소를 멋대로 할 수 있는 검사의 권력이 이렇게 막강하니, 아들의 학교폭력에도 자신의 힘을 써서 아들을 구원할 수 있었지.



또 하나의 문제는 대입 제도야. 이 학생은 자신이 수시(학생기록부 종합 전형, 교과우수자 전형, 논술 전형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주로 학생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특기사항, 행동발달사항 등을 정량화하여 대학 진학 점수로 활용하는 전형을 일컫는다.)로 대학을 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 학생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좋은 머리, 유복한 집안 환경 등을 최대한 활용하여 정시(교과 성적과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백분위 혹은 표준 점수를 정량화하여 혼합하는데, 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점수가 당락에 결정적 작용을 한다.)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합격한 거야. 사실 문제는 없지. 정시로 우리나라 최고 학부의 철학과에 합격했잖아. 약올라할 너의 표정이 보이는구나. 엄마, 그래도 학교에서 안전 장치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 그래서 수시라는 제도가 1990년대 후반 생겨나게 됐어. 시험 성적만 중시하면 성적은 뛰어나지만 사회에 공헌할 의지가 없고 사욕만 채울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걱정이 주효했어. 그래서 학생의 3년 성장기를 충실하게 세부능력특기사항에 반영해서 작성하고, 한 학생을 오래 지켜본 담임교사가 쓴 행동발달사항을 유심히 보고 입학사정관이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수시 제도가 생겨났어. 줄임말로 학종이라고 하는 것도 수시의 일부야. 너도 알다시피, 수시 자체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을 많이 하고 있지? 이거야말로 금수저가 금수저를 물려주는 전형이다. 점수로 대학 가는 것이 공평하다. 학생부도 문제 많다면서. 심지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일부 명문대학교 학생들은 수시로 입학한 학생들을 '수시충'이라며 경멸하고 있지. 다양한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학생을 선발하고자 수시에는 다양한 전형이 존재해. 농어촌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학생 등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업 수준을 성취하면 해당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왔던 거지. 이렇게 선발된 학생들이 '수시충'이야. 이처럼 수시가 '공정하지 않고', '수능 점수만큼 정확하지 않아서' 불신할 수밖에 없다면서 수시 전형 응시자들을 혐오하는 학생들이 많아. 학교폭력 가해자가 정시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명실상부 최고의 학부에 입학한 사태에 화는 내면서 말이야.



여기까지 쓰고 나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정말 암울한 것 같아 한숨이 나오는구나. 한 시간을 멈추고 있었어. 이 마지막 문단을 어찌 끝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느라고 말이야. 난 결국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지 우리가 자문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나라의 경제적 자원과 정치적 자원이 너무 한 곳으로 쏠려 있지 않은가. 정치적 평등이 말로 외치는 구호에만 그치지는 않는가를 점검하는 것이 이런 비극을 차차 막을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수사, 구속, 기소를 모두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나라가 어떻게 민주정을 지지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어. 그리고 그 청이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면 어떻게 3권이 제대로 분립하고 있다 할 수 있겠어. 모두가 평등하다고는 하는데 장애인이 선거일에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수동 리프트를 조작해야 한다면, 의미를 해독하기 어려워하는 노인이 공보물을 제대로 읽을 수 없어 자신의 뜻과 다른 한 표를 행사할 수밖에 없다면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면 어떻게 정치적으로 평등한 사회라고 우리 사회에 대해 자부할 수 있겠어.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 정의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권력의 감시가 두렵다면 이는 민주정이라고 할 수 없을 거야. 말뿐인 민주주의 속에서 독점적 권력은 존립의 명분을 쌓아가. 독점적 권력은 다양성을 두려워하지. 다양성이 억압되고 몇 개 안 되는 기준으로 성공이나 행복이 결정된다는 개인의 의견이 쌓이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10대 때, 한참 어리고 미숙할 때 우리가 받았던 점수에 불과한 성적표뿐인 거야. 학교폭력도 결국 개인의 다양한 빛깔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름에 서로 적응하지 못할 때 마음대로 굴어도 되는 권력을 지닌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가하는 것 아니겠니. 민주주의에서 피어나는 다양성, 그것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자세만이 학교 폭력, 검사의 독점적 권력, 명문대학의 '간판 프리미엄'을 해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 그래야 네가 그리고 싶은 만화를 마음껏 학교에서 그릴 때 그것을 함께 즐겨줄 친구들과 10대를 즐겁게 보낼 거야. 네가 생각하는 정치적 견해를 두려움없이 지면에 발표하는 시민의 삶을 누릴 때 너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거야. 대학 간판과 상관 없이 네가 쌓아온 경험치와 그것으로부터 얻게 된 능력으로 경제적 독립을 할 때 사회에 네 능력을 기여하고 지금 이곳을 발전시키는 멋진 어른이 되겠지. 이런 사회를 꿈꾸며 많은 사람들이 목숨까지 내놓았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그것을 배운 사람들이 '철학과에 학폭 가해자가 합격하다니!'라며 방관자처럼 한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작가의 이전글 사랑과 창의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