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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황 May 02. 2023

사랑과 창의성

완벽한 담임 선생님


은아, 너는 2학년이 되어 새 학기를 기대하는구나. 윗도리의 색과 비슷한 머리띠를 골라놓고 연필에 네 이름 스티커를 붙이며 "기대 돼!"를 연발했지. 네 교실용 실내화와 돌봄 교실용 실내화를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아놓고 '2학년 준비 물품 목록'에 동그라미를 치며 나도 그간 없던 설렘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을 느껴. "담임 선생님 성함은 외웠지?"라고 노파심에 물어보자 너는 바로 짜증 섞인 말투로 답해. "외웠다니까." 벌써 커서 내가 한 일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아홉 살의 결기가 느껴져 섭섭하기는 커녕 언제 이렇게 큰 건지 놀랍기만 해. 이 옷 저 옷을 꺼내 놓았다가 다시 잘 걸어놓으라는 내 잔소리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걸 보면 아직도 아기인 것만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네 초등학교 두 번째 담임 선생님이 어떤 분일지, 네가 새로 사귈 친구들은 어떤 아이들일지가 너무 궁금해. 내가 담임 교사를 할 때는 학부모들이 너무 과한 관심을 내게 보이는 것 같다, 결국 집에서의 생활이 학교 생활보다 더 중요한데 학부모들이 집 생활을 개선할 생각은 안 하고 학교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어린 생각을 했어. 학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님의 마음이 정말 이해되는구나. 하루 중에 가장 중요한 시간, 모든 기운이 생동하며 세상이 바삐 돌아가는 시간에 내 자식이 가 있는 학교는 내 자식을 형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곳이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가족을 제외한 유일한 어른인 거고, 그곳에서 만나는 친구와 유대감을 형성하며 자신이 누군가를 알아가지. 부모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을 간섭이라고 받아들였다니 나는 참 어리석었어.



"우리 아들이 만났던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진짜 좋았거든. 한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애들도 너무 예뻐하고 아주 열정적이신 거야. 칭찬도 많이 하시고 정말 좋았어. 그런데 3학년 담임 선생님은 50대 여자 선생님인데 아주 월급 루팡을 하려고 결심하신 거야. 그렇게 알림장에 부정문을 많이 쓰고, 애들하고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하는 게 막 보여. 뭐 복불복이지, 별 수 있나." 나와 가장 친한 윤이 이모 있지? 윤이 이모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마음이 두 번 콕콕 찔리는 거야. 하나는 교사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거리를 두며 대한 적이 없었나, 잔소리를 하며 부정적인 말을 써서 애들 기를 죽인 적이 적지 않았을 텐데 그때 학부모님들이 내 뒷담화를 했을까. 이런 노파심이 있었어. 두 번째는 너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찔리는 거야. 네 담임 선생님은 너를 사랑스럽게 봐주는 분이어야 할 텐데. 너에게 냉담하지 않고 다정하게 말씀해 주는 분이었으면 좋겠는데. 수업 때 이미 가르칠 내용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외 사항으로 두고 모두가 모르는 것처럼 수업을 자세하고 명쾌하게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무엇보다 네가 어떤 학습을 시도할 때 너의 가능성을 믿고 응원해 주시는 것, 그것을 꼭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이런 선생님이면 정말 걱정하지 않고 학교를 보내며 매일 웃을 수 있을 텐데. 어떤 학원을 보낼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너를 위해 내가 무엇을 준비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해 주는 분이었으면 참 좋겠다. 성함 말고는 아무 것도 알 길 없는 너의 담임 선생님에 대해 나는 끝없이 생각하게 되었어.



그런데 과연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어떤 학부모가 제 자식을 내게 인사시키며 "이런 담임 선생님이 되어 주실 거죠?"라고 확신하면서 말씀하시면 나는 얼마나 질식감이 들까. 엄마가 읽고 있던 책의 표지에는 '아프로디테'의 정면 얼굴이 사진으로 크게 박혀 있어. 지긋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 석상의 눈이 갑자기 나를 향해 치켜 뜨는 기분이 들었어. "너 이 책을 읽고도, 사십 년 가까이 살아내고도 아직 이런 허상을 품고 있느냐?"라고 일갈하려는 듯한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지 뭐야. 분명 나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거든. 삶의 원칙을 세우는 일에 대해서지.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 그런데 내가 받아들이는 관점을 기준으로 잡으면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어. 하나는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엄마가 요즘 매일 "하루에 한 편씩 일기 쓰기"라고 정한 일 같은 것 말이야. 두 번째는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일, 예를 들면 오늘 아침 소풍을 가기로 했는데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사건이 일어나는 거지. 세 번째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일이 많지. 시험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100점을 맞는다고 장담하기가 어려워.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본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그날 아파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 그렇다면 100점 맞기를 목표로 잡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아니지. 완벽하게 100점을 맞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열심히 공부하면 100점 맞을 확률은 높아지거든. 게다가 100점을 맞지 못해도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지 않겠지.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100점을 맞기 위해 공부하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편이 현명해.(윌리엄 어빈 지음, 이재석 옮김, <<좋은 삶을 위한 안내서>>, 101쪽~103쪽 참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은 어떤 범주에 속할까? 내 생각에는 두 번째에 해당해. 담임 선생님은 학교와 2학년 담당 부장의 필요 등이 맞물려서 2학년부에 속한 선생님이 맡게 되지. 그리고 학업 성취도, 학교 폭력 전력이 있는 학생과 피해자가 함께 있을 가능성, 지나치게 친한 친구들이 모여 있을 가능성, 학교 행사에서 대체로 소외되는 학생이 있을 가능성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 같은 이름이 한 반에 모여 있지 않도록 신경을 쓰기도 하지. 이렇게 반을 나눈 다음 담임 교사는 룰렛 돌리듯이 돌려서 결정하는 편이야. 여기에 너와 나의 의견이 개입될 여지는 없어. 그렇다면 이건 전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을 쓸 필요가 전혀 없지. 그런데 이렇게 결론을 내니 마음이 어쩐지 이상해. 너도 그렇지 않니? 담임 선생님과 너의 관계도 소중한 인간 관계인데 어쩌면 너에게 중요한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사람과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신경쓰는 것이 소용 없다니 허무하잖아. 그러면 한 쪽이 마음대로 굴어도 다른 한 쪽이 그것을 그대로 감당하거나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잖아. 정말 그럴까?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세 번째 가능성을 생각해 봤어. 선생님을 내가 정할 수 없고, 그 선생님의 성향에 내가 무조건 맞출 수 없으니 통제 가능성이 없지만, 그래도 너와 내가 노력해서 관계를 잘 가꿔볼 여지가 있다고 바꿔 생각해 보는 거지. 너와 내가 '좋은 담임 선생님 오기'를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 아니야. 대신 우리가 내면의 목표를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 역시도 그러는 게 어떨까? 담임 선생님께서 이름을 한 번도 불러주지 않은 날이 있어. 그러면 '내게 관심이 전혀 없어!'라며 집에 와서 우리가 속상해하지 않는 거지. 너는 한 번 용기를 내어 "선생님, 오늘 제 이름 좀 불러주세요!"라고 얘기해 본다든가 다음 날 발표 시간에 먼저 손을 들어보는 거야. 나도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예! 담임교사입니다."라고 먼저 살갑게 대해주실 것을 기대하지 않는 거야. 알림장에 "1년 간 은이를 담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충이 생기면 말씀해 주십시오. 집에서 지도해서 보내겠습니다." 이렇게 답문하는 거지.



앞으로 10년 넘게 네가 나이를 먹으면서 하게 되는 도전들을 내가 옆에서 함께 하게 될지도 몰라. 네가 가슴 쿵쾅거림을 느끼고 위축되어 앞으로 나가기 힘들어할 때 내가 그것을 어찌하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하는 순간을 많이 겪을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어. 그리고 네가 살던 기존의 방식을 바꿀 때 '왜 바꿔! 그냥 살아. 그게 편하고 좋아.'라고 외치는 내면의 소리를 괴롭게 물리칠 때 내가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어떤 때인지 네가 바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너와 대화하고 답답하다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어리석은 짓 따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또 생각해. 네가 평정심을 가꾸도록 내가 옆에서 너를 도울 때 나 역시도 평정심을 가지고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어. 올해 너의 담임 선생님, 너의 앞날에 대해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자마자 놀랍게도 평정심의 형태라는 것이 느껴졌어. 보드랍고 가볍지만 쉽게 날아가지 않는 푹신하고 하얀 어떤 것이 마음에 도달한 것 같아.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어떻게 너를 대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알림장에 내가 어떤 말을 써야 할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돼. 나는 너의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노력할 거야. 그분은 자신과 내가 자녀를 교육시키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를지라도 제대로 교육시키겠다는 방향을 함께 공유한 사람들이라고 하셨어. 나는 그 말씀을 잊지 않고 너를 대하고 네 담임 선생님의 방침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거야. 네 첫 돌 생일 때 내가 이런 말을 인사로 했어. "자신의 길을 지켜 뚜벅뚜벅 걸어가면서도 길 위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겠습니다."라고 말이야. 올해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한 작은 행동들을 시작하려 해. 네가 자유로운 시민으로 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행동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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