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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Dec 13. 2024

피곤함을 무릅쓴 하루

(2024.12.13.)

오늘은 무척 피곤했다. 지난주 서울 집회에 참여하고 내려온 후유증인지, 이번 주 두 번의 야근을 한 탓인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탓인지, 몸이 무거웠다. 오랜만에 잠자리에서 5분만을 외쳤다. 얼마 전 눈에 띈 신문 기사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일본 교사의 고단한 열정 페이'.  일본 공립 초등학교 교사들의 시간외 근무시간이 평균 45시간이 넘는단다. 중고등은 더 심하다는데... 과로사의 기준이 80시간이라고 하니 평균 45시간은 거의 과로 수준으로 도달하는 지점에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시간외 근무수당이 제한돼 있다는 거다. 교사에 대한 일본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하지 알 수 있다. 사실 유럽과 미주지역에서도 교사들을 제대로 대우하는 나라는 정말 드물다. 북유럽을 빼고 말이다.


사실 난 칼퇴근주의자였다. 그러다 이곳 혁신학교라 불리는 곳에 와서 야근이 잦아지고 올해는 평균 20시간을 넘기는 것 같다. 해야 할 일, 좋은 학교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야근이 어쩌면 지나친 과노동에 기반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오래 전부터 혁신학교에 대한 문제로 지적되기도 하고 고쳐 나가고 있지만, 우리 학교 같은 작은 학교에서는 불가피한 경우가 잦고 많다. 그래서 교사들이 더 오지 않으려 하는 학교가 돼 가고 있는 줄도 모른채. 언제까지 우리 학교가 교사의 희생과 헌신으로 버텨 나갈 수 있을까. 시스템 보완과 합리적인 교사의 노동이 이뤄지는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이 난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 논의할 시기라고 본다. 그러나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로 와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아이들의 일기를 보고 첫 수업은 시작했다. <쿵푸 아니고 똥푸> 온작품 읽기. 주인공 탄이의 편식 없는 식사와 똥푸맨의 등장, 그리고 활약 덕분에 탄이와 탄이 엄마는 필리핀으로 10년만에 가게 됐다는 해피 앤딩. 역시나 아이들은 스토리보다는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활약에 더 주목한다. 다문화가 소재로 다뤄졌지만, 관심 밖에 있었다. 함께 이야기 하고 나눴지만, 나누는 것이지 실제 초점과 관심은 똥푸맨의 지렁이 권법. 아이들과 공책을 정리하고는 다음주에 다시 감상을 나누며 이야기 하고 정리하기로 했다. 두 번째 시간은 술래잡기와 림보, 공 이동시키기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역시나 아이들은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기꺼이 몸을 아끼지 않고 달려드는 아이들과 한 시간을 무사히 잘 즐겼다. 그 전에 어제 못한 우드록 판에 문패자국을 새기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오늘은 일기를 쓰지 못한 노*와 썼으나 오늘은 글 컨디션이 안 좋은 준*의 글을 빼고는 우리 반 아이들의 모든 글을 올려 놓는다. 글의 차이가 보이고 삶의 차이, 시선의 차이가 보이지만, 모든 글에 나는 그 아이가 보인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86일째 되는 날이고 헤어질 날을 20일 앞둔 날이었다. 이제 주말이다. 주말에 나는 다시 서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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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아이스커피에 빠진 것처럼 추운 날

제목: 신기한 내 왼쪽 손 | 곽**


신기해! 신기해! 신기해! 신기해! 신기해!


난 왜 왼손잡이일까?

그런데 왜 글씨를 잘 쓸까?


그런데 신기한 건

손금도 일자다.


또 신기한 건 그림도 잘 그린다.

내 왼쪽 손은 신기하다.

내 귀한 왼쪽 손.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펭귄아, 놀러와~ 같이 놀자~~

제목: 배신자 곽** | 이**


쉬는 기간 5분 전에 나는 수*한테 말했다.

"쉬는 시간에 놀거지?"

그러자 수*가 말했다.

"응."

그리고 쉬는 시간에 돌아왔다.

"수*야, 얼른 놀자~ 뭐하고 있어?"

"예*야. 미안해~ 나 밖에서 상*이랑 하*이랑 놀게."

난 '속상+화'이였다. 속상과 화가 나타난 건 오랜만이었다. '히힝'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우린 여기 있는 친구들보다 먼저 친구였는데...너무 해~

'배신자 곽**'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너무나 추운 날

제목: 힘들었던 날 | 조**


나는 집에 왔을 때 수아가 불렀다. 그래서 안아줬는데 수아가 내 목이랑 내 코를 꼬집었다. 그래서 너무 아팠다. 그래서 엄마가 내려노라고 했다. 그래서 내려 노았더니 승*가 또 울었다. 그래서 엄마가 돌봤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드디어 쉬는 구나. 휴~~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잠바를 4게 입어야 하는 날

제목: 차가 밀린 날 | 강**


오늘은 알람이 울려도 안 일어났다. 왜냐하면 엄마가 데려다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이랑 사과 주스를 먹고 딩굴딩굴을 봤다. 근데 되게 늦었었다. 그래서 양치랑 세수하고 수건으로 얼굴 딱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차를 탔다. 너무 밀렸다. 2학년 때는 안 밀렸으면 좋겠다.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만히 추운 날

제목: 엄마 늑게 온 날 | 천**


나는 오늘 엄마가 늑게 온다. 엄마는 우리 잘 떼 온다. 형아랑 나는 늑게 잔다. 그래서 좋다. 왜냐하면 나는 만히 노는 게 좋다. 엄마는 왔다가 안 오고 집배 안 혼다.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손이 꽁꽁 어른 날씨

제목: 치킨 | 유**


나는 치킨을 먹으러 갔다.

"와 치킨이다"

나는 치킨을 참 좋아한다. 나는 후라이드 치킨을 좋아한다. 맵기도 하지만 정말 맛있다. 나는 이모랑 엄마랑 먹었다. 나는 삼일 만에 엄마를 만나서 너무 반갑다. 엄마를 봐서 너무 반갑다.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얼어 안 죽을 거 같은 날

제목: 이상한 수업 | 전**


나는 시간표를 봤다. 근데 3,4교시가 이야기 어떤 거였다. 수업이 바뀌어서 ' 어떻게 수업이 겨울대장 노래만 바뀌었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 수업이 바뀌었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울 정도로 생각이 난다. 내일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선생님이 대답해 주실 거다.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구름 친구들이 운동한 날

제목: 장난쳐서 엄마한테 혼나고 싶은 날 | 송**


왜 엄마한테 혼나고 싶은 줄 알아. 내가 너무 안 혼나서 그래. 일기를 쓰면서 엄마한테 "메~~롱"하면서 장난쳤다. 엄마가 "하*이 그만해." 엄청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계속 멈추지 못하고 메롱메롱 하고 도망가고 엄마가 오라고 하면 거실 바닥에 누워서 헤엄치고 또 엄마가 부르면 소파에 누워서 자는 척 했다. 엄마가 도레미파솔라시도! 엄청 큰 소리로 "자꾸 그러면 골라담아 착착착에 놓고 온다~"하면서 말했다. 엄마가 화내는 걸 성공했다. '나이스!'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스케이트장처럼 바닥이 얼 것 같은 날

제목: 윤*이의 한글 공부 | 한**


난 오늘 밤에 (동생) 윤*이한테 한글공부를 가르쳐줬다. 어떻게 가르쳐줬냐면 한글 카드로 가르쳐 줬다. 한글 카드를 자음과 모음 카드는 없고 가,나,다,라 같은 게 있다. 그런데 받침은 없다. 윤*이는 한글을 좀 안다. 뭐를 아냐면 나무, 새, 꽃, 벌, 거미, 나비를 안다. 아직 5살이라서 잘 모른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알 것이다. 오늘 내가 가르친 낱말은 파리와 소리와 오리와 수박과 수리다. 수리는 독수리 같은 무서운 새를 말한다. 맨 처음에는 한글 카드로 파리를 만들었다. 그 다음은 소리, 그 다음은 오리를 만들었다. 그 다음은 내가 윤*이한테 한글 카드를 잘 보고 노트에다 따라 쓰라고 했다.

그래서 윤*이가 따라 썼다. 그런데 윤*이가 파리를 이렇게 썼다. <파(피읍을 가로로 눕힌 상태)리> 정말 이상하다. 순서도 다 틀렸다. 순서도 다 틀렸다. 하지만 윤*이는 잘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와 소리와 오리를 쓰다가 윤*이가 수박을 쓰고 싶다고 해서 수박을 쓰게 해줬더니 수박을 썼다. 그런데 쓰다가 윤*이가 수박을 수리로 썼다. 그때 나는 틀렸다고 말할려다가 독수리가 생각났다. 그래서 수리를 계속 쓰라고 했다. 한쪽을 다 쓰고 나니까 윤*이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윤*이한테 형아랑 하는 게 좋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윤*이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도 내가 해주기로 했다. '다음은 내가 더 잘 가르쳐 줘야지.'


날짜: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날씨: 잘 모르겠다.

제목: 아픈 강아지 | 김지*


오늘 집에 와서 우리 강아지를 밨다. 우리 강아지가 아파보였다. 왜 아파 보이냐면 우리 강아지 살점이 뜯겨 나갔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엔 강아지 걱정 뿐이었다. 그런데 눈물이 안 흘린다. 그래서 강아지가 멋지고 용감해 보였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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