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3.)
아이들과 헤어질 날이 이제 열흘 밖에 남지 않았는데, 오늘도 아이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읽고 시를 따라 쓰는 일상을 반복했다. 물론 아이들이 제출한 일기도 보면서...이제 일기 쓰기도 어느덧 익숙해져 갔다. 조금 더 마음을 쓰면 재밌고 읽을 만한데, 조금만 게으름을 핀 것 같으면 그렇지 못하다. 뭐 이렇게 글은 쓰고 또 쓰는 거니까. 어른인들 만날 좋은 글, 정성스런 글을 쓰겠나. 지금 오늘 일기를 쓰는 나도 마찬가진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맨 처음 글쓰끼> 마지막 편을 꺼내들었다.
오늘의 주제어는 '춥다'. 추운 것에 얽힌 자기 삶을 이야기 하고 글로 쓰는 것.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리고는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이원수 시인의 '겨울 물오리'를 암송하게 했다. 오늘 이 시를 백창우씨가 곡을 붙인 '겨울물오리'를 부르게 할 목적이었다. 역시나 나중에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것을 들려주니 흥미로워하고 재밌어 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들. 난 우리 반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걸 한 학기가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또 부르고 또 부르던 아이들은 이것을 공연할 때도 하자고 한다. 정말 못 말리는 아이들이다.
중간놀이 시간에는 26일에 있을 마무리 잔치 때 그동안 아이들이 배우고 익힌 학습자료와 결과물을 담는 상자를 조립했다. 일찌감치 사 놓고 오늘에야 풀어 조립하는데, 마침 도우미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함께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선생님, 이 상자는 뭐하신 거예요?"
"네, 몇 년 전부터 담임을 맡은 아이들의 학습결과물을 이렇게 상자에 담아 기념으로 선물로 주곤했네요."
"아, 그렇구나. 정말 좋겠어요. 매번 아이들 학교에서 했던 거 가지고 오면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 와서 구겨지고 그래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하면 정말 좋겠어요."
일 년을 지나면 아이들에게서 수많은 학습결과물들이 남겨진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걸 그냥 가볍게 버리곤 했다. 수업시간이나 그 밖의 활동을 할 때는 정성껏 했던 것을 순식간에 버리는 것이다. 배우고 익힌 과정이 그렇게 소비되는 게 안타까워 몇 년 전부터 나는 상자를 준비해 그곳에 곱게 곱게 담아 그 해 학년의 기념물이자 선물로 아이들에게 건넨다. 그렇게 챙겨 가는 아이들도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고 지금까지도 고이고이 집에 간직하고 있다는 아이도 적지 않다. 그해 그 아이의 거의 모든 기록이 담긴 상자. 자신의 추억과 기록을 간직한다는 것은 가볍게 볼만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오늘 나머지 시간은 온작품 <쿵푸 아니고 똥푸>로 마루(무대) 팝업을 완성 시키는 시간으로 보냈다. 책등팝업을 옆으로 돌리면 마루가 되고 그 위에 등장인물을 그리고 오려 뒤에 사각형 종이스프링을 붙여 열고 닫으면 일종의 팝업이 되는 북아트 방식의 하나다. 아이들은 저마다 재밌게 오리고 붙이고 쓰면서 읽은 책을 다르게 즐겨 보았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과 해 보는 마지막 작품은 끝이 났다. 이제 내일부터는 26일에 입학한지 300일 잔치를 할 공연을 차례로 준비하고 초대장 만들 것이다. 통합교과 '이야기'의 주요 활동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94일째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