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보고 카카두 국립공원 옐로우 워터 크루즈
우리는 안방방 암각화 갤러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옐로우 워터 늪지대에서 도착했다. 호수 전체가 석양에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옐로우 워터(Yellow Water)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옐로우 워터는 엘리게이트 강 하구 부분에 형성된 거대한 자연 습지로 각종 파충류와 곤충류, 조류, 악어 등 포유류 등 온갖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천국이다.
"카카두에 서식하는 짠물 악어는 4~7m의 크기로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켜요. 녀석들은 아주 교활해서 사람들이 2~3m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전혀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가 결정적일 때 갑자기 시속 65km로 달려들어 먹이를 집어삼키지요. 이곳은 범람 지역이라 악어들이 육지에도 잠입을 하여 먹이를 노리고 있어서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니 각별히 조심을 해야 합니다."
"아이고머니나!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요. 무서워서 보트를 타겠어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순 없지 않소.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조심을 하면 괜찮을 거요."
마이클은 카카두 국립공원에서는 악어를 각별히 조심하라고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다. 카카두 국립공원에는 약 10,000마리가 넘는 악어가 서식을 하고 있는데 언제 어디서 악어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는 보트 밖으로 손이나 다리를 내밀지 말 것, 사진을 찍을 때에도 방심을 하지 말 것, 구명조끼 사용법 등 주의사항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이클이 토해내는 악어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함께한 일행들도 악어가 득실거리는 옐로우 워터에서 악어 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며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스릴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흥분 속에서 보트를 탔다. 바닥이 알루미늄으로 된 보트는 양쪽에 쇠로 만든 망사가 쳐져 있었다. 악어가 튀어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어쨌든 옐로우 워터 늪지대 크루즈는 그야말로 열대우림지역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보트를 타고 늪지대를 지나가는 동안 수많은 희귀 새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늪지대의 수풀 속을 미끄러져 나가는 보트에서 바라보는 옐로우 워터는 너무나 평화스러웠다. 우리는 악어에 대한 우려를 곧 잊어버리고 늪지대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아 바람도 불지 않고 호수는 잔잔했다. 호수 위에는 연꽃들이 만발해 있어서 마치 늪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비밀의 화원을 돌아보는 느낌이 들었다.
호수와 늪 속에는 온갖 크고 작은 새와 곤충, 파충류들이 먹이사슬을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서식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빨간 새가 연꽃잎을 질겅질겅 밟으며 먹이를 쪼아 먹었다. 호수와 늪은 겉으로는 평화스럽게 보이지만 약육강식의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약육강식이 치열하면서도 온갖 생명이 숨 쉬는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생존하는 생명들이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아무리 먹이를 주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집에 있는 고양이나 개들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주더라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지 않는다. 한 끼 잘 먹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동물들은 참으로 위대하다.
티베트 라마승 나가르쥬나의 말이 떠올랐다. "그대가 언제나 만족해 있다면 그때는 설령 그대가 가진 모든 것을 도둑맞는다 해도 스스로를 가장 부자로 여기리라.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른다면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그대는 돈의 노예일 뿐이다" 그러니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은 동물에 비해서 참 불상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처럼 한 끼의 배부름에 만족을 느끼고 행복해한다면 전 인류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늪 속에는 고사목이 듬성듬성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가 하면 새로운 나무와 수많은 수풀들이 고개를 내밀며 자라나고 있었다. 고사목은 늪에 쓰러져 거름을 되고, 그 거름을 먹고 수풀이 자라나 플랑크톤이 발생하고, 거기에서 크고 작은 어류와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먹이사슬을 형성하며 서식을 한다. 인간이 건드리지 않는 자연은 이렇게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무리 없이 잘 생존을 하고 있다.
가끔 물속에서 잠수를 타고 있는 야생 악어들은 만나기도 했다. 녀석들은 침묵 속에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먹이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은 통나무처럼 보이는 검은 등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물속에 잠겨 있는 덩치가 솟아오르면 몸무게가 수백 킬로그램은 되어 보였다. 허지만 마이클이 겁을 주었던 만큼 악어들이 그리 많이 눈에 띠지를 않았다. 호수가 너무 잠잠하여 모두들 낮잠을 자러 갔을까?
나는 겁에 질려 긴장을 하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고 안심을 시켰다. 수백 킬로그램의 악어가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묘기를 기대해 보기도 했지만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에 나오는 스릴만점의 불상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80년대에 크게 흥행을 했던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Crocodile Dundee)는 카카두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촬영한 호주판 타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뉴욕 뉴스데이 여기자 수 찰톤(린다 코즐로스키)가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악어에 물렸다가 기적 같이 살아난 한 남자의 스토리에 흥미를 느껴 호주로 취재를 떠난다. 그녀가 찾아 나선 유명한 악어 사냥꾼 믹 크로커다일 던디(폴 호간)는 마초적인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술집에서 박제된 악어를 짊어지고 등장한다. 수는 악어를 만나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는 강가를 직접 취재하기 위해 던디와 함께 정글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때부터 수는 도시 생활에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갖가지 해프닝이 일어나고, 투박하지만 순수한 던디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수는 취재를 연장하기 위하여 던디를 뉴욕으로 함께 갈 것을 제안하게 되고 던디는 이를 수락하여 수를 따라 뉴욕으로 간다. 평생 고향을 처음 떠나 대도시 뉴욕으로 간 던디는 호주 정글에서 수가 그랬던 것처럼 매춘녀, 칼 든 강도, 식당과 술집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온갖 해프닝을 일으킨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곳에 도착하여 적응을 하는 동안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어나가기 마련이다. 이 호주판 타잔 던디와 제인 수에 출연했던 두 배우는 영화를 찍다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된다. 카카두 국립공원의 악어를 소재로 한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흥미만점의 영화다.
우리가 옐로우 워터 크루즈를 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악어들이 잠잠했다. 안내원도 이렇게 악어를 보기가 힘든 날은 드물다고 했다. 여행자들은 카메라와 비디오를 들이대고 악어가 나타나기를 고대했지만 악어들은 모두 낮잠을 자러 가버렸는지 단 한차례만 보았을 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 역시 악어가 튀어 오르기만을 은근히 기대하며 잔뜩 긴장을 하면서 비디오를 들이대고 있었지만 허사였다.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인 줄도 모른다.
그렇게 튀어 오르는 악어를 보기 위해서는 다윈 근처에 있는 애들레이드 강 ‘점핑 크로커다일 투어’를 해보라고 안내인이 귀띔을 해주었다. 애들레이드 강에는 1평방 킬로미터당 네 마리의 악어가 서식을 한다고 한다. 이 강은 가까운 곳에서 악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허용된 유일한 곳으로 점핑 크로커다일 크루즈라는 배를 타고 가면 점핑 악어를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악어는 먹이가 자신이 머리 위에 매달려 있을 때 어마어마한 힘(특히 배가 고플 때)을 이용해 몸을 들어 올려 물 밖으로 점프를 하며 솟구쳐 오른다고 한다. 아이고, 안 보고 말지.
카카두 국립공원을 비롯해서 호주에서 서식하는 악어는 호주 대륙에서 최강의 포식자이다. 큰 수놈은 몸무게가 자그마치 1,000킬로그램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악어의 수명은 사람과 비슷해서 보통 70년을 살아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