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가 하늘까지 뻗어 있었다. 우주의 축인 그 나무는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에 이르기까지 삼세계(三世界)를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뿌리는 지하 깊숙이 박혀 있었고 가지들은 천상에 닿아 있었다.
땅속에서 길어 오른 물은 수액이 되고, 태양은 잎과 꽃, 그리고 열매를 생겨나게 했다. 이 나무를 통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나무는 구름을 모아 엄청난 비를 내리게 하였다. 곧게 뻗은 나무는 천상과 지하의 심연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고, 이로써 우주는 영원히 재생될 수 있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나무는 수많은 생명체를 보호했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었다.
또한 나무들의 영혼은 인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깨달음을 안겨주어 왔다. 불타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각을 얻었고, 사라나무(沙羅樹) 아래에서 열반에 들었다. 홍해의 바닷물을 가르고 이스라엘 민족을 파라오의 군대로부터 구해낸 모세의 신비한 지팡이도 레바논산 삼나무인 '낙원의 나무'이다. 많은 성자들이 나무가 우거진 총림에서 진리를 얻었고, 먼 옛날부터 샤먼과 예언자들은 신성한 숲과 성목 나무 아래 성소를 차리고 기도를 하며 신의 계시를 얻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숲과 나무를 바라보자. 숲은 자원의 보고로써 목재는 물론, 펄프, 의약품 등 수많은 경제적 기능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인간이 단 몇 분 동안만 마시지 않아도 생명이 끊어지고 마는 산소를 생산하는가 하면, 스펀지처럼 빗물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흘려보내는 거대한 녹색 댐 역할을 수행한다. 천연의 공기정화기와 소음을 막아주는 방음벽이 되어주고, 피톤치드 같은 인체에 이로운 향기를 뿜어내며, 인류의 문화를 꽃피게 하는 문화의 산실 역할을 한다. 숲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주의 공간에서 무수한 혜택을 제공하는 나무들에게도 과연 '영혼'이 있을까?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에 의하면 '야생'이란 '숲'을 뜻하는 실바(silva)에서 유래하므로 나무들은 기억능력과 함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입증한 사람들이 있다. 인도의 식물학자 자가다스 찬드라 보스(Jagadish Chandra bose, 1858~1937)는 1900년부터 30년 동안 실험을 통해서 식물들에도 어떤 특정한 기억 능력이 동반된 '감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러한 기억 능력은 영혼을 가진 정신 현상의 기본 요소로서 식물들에도 '신경조직'과 동일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후에 미국과 소련의 학자들에 의해 확인되고 보완되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식물은 바닷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식물의 유기체는 동물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며, 동물세포는 식물의 세포가 변형되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모든 세포는 각자의 자율성을 가지고 균형과 방어를 조절하는 고유한 체계, 즉 잠재적인 정신 현상의 원리 자체를 가지고 있는데, 식물들 역시 기억 형식을 만들어내는 반사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나무들도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만족, 두려움을 느끼며 기억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를 우리는 동심원을 그리는 성장의 여러 층인 '나이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무를 베었을 때 우리는 나이테를 통해서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나무가 기후 조건과 성장의 환경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적당히 비가 오고 햇빛을 충분히 받은 해에는 나이테가 넓고, 추위와 가뭄이 심한 해에는 나이테 간격이 좁다.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나무들의 기억과 반응으로 몇천 년 전의 기후도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나무들은 벼락에 맞았을 때, 숲 속에 불이 나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병충해와 질병에 걸렸을 때 등의 사건들을 자신의 나이테 안에 낱낱이 기록한다. 나이테는 나무의 모든 성장 기록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나무에도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구촌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거대한 나무들로 우거진 오래된 숲 속을 산책하거나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곤 했다.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찌르는 레드우드(세쿼이아 나무) 숲, 아마존의 열대 밀림, 인도 마날리의 삼나무 숲, 독일 흑림, 호주 블루마운틴의 유칼립투스 숲, 북유럽의 자작나무 숲, 태즈메이니아의 천연 숲 등. 태고가 숨 쉬는 원시림에 머물다 보면 나무들의 영혼과 저절로 하나가 되어 간다.
외국의 숲들은 대부분 평지에 있다. 우리나라도 광릉 숲이나 남이섬의 숲,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은 평지에 있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숲이다. 홀로 이런 숲길을 걸어보거나 나무 밑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보라. 당신은 저절로 나무들의 영혼과 나무들이 주는 혜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숲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공휴일보다는 평일 하루쯤 휴가를 내어서 아침 일찍 가는 것이 좋다. 꼭 이런 장소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이면 족하다. 떠들고, 먹고, 마시고, 놀러 가는 숲이 아니라 조용히 산책하고 명상을 하면서 나무들의 영혼을 느껴보는 그런 시간이어야 한다. 이제 당신과 함께 숲과 나무들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