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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May 25. 2021

가락에 미친 자들은들어와 주세요

가락에 미친 민족


운전대 옆 쪽의 버튼을 눌러 차창을 스윽 올렸다. 클라이맥스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YOU! 비가 오는 거리에~ 혼자 남겨진 채로~ 서 있는 날 생각해봤니~~


감기에 걸려 가라앉은 목소리 때문에 불안정한 고음이지만 흥에 겨운 자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노련한 락커가 된 기분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클라이맥스를 부르고 나면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차창을 내린다.


한국인의 고유한 특성을 묘사하는 표현이야 많고도 많지만, 나는 감히 우리를 가락에 미친 민족(이하 가미족)이라 불러본다. (고급스럽게 ‘아리아의 민족’이라고 칭할까 많이 고민했다.) 기억조차 정확히 나지 않는 대여섯 살 언저리의 나이부터 어른들을 따라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를 잡았다. 노래방 화면에 뜬 3, 2, 1 숫자에 맞추어 정확히 첫 소절에 들어갔다. 감수성이 과다하게 흐르던 십 대 시절에는 슬픈 이별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방구석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때 가사를 통해 경험한 상상 이별은 실제 이별보다 약간 더 애달펐다. 대학시절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는 노래방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듯 노래를 불렀다. 나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노래를 들을 때면 반드시 가사를 확인해야 마음이 안정된다. 60이 넘은 아저씨들의 혼잣말은 저절로 가락을 이룬다. 이를테면 C장조로 이뤄진 ‘내가~ 라이터를 어디에~ 뒀더어라아~’ 같은 것. 대학가를 걷다 보면 카페, 술집 다음으로 자주 보이는 것은 노래방이다. 부끄럼이 많은 가미족들을 위해 코인 노래방이라는 시스템도 발달했다. 원하면 혼자 들어가서 애절함을 용맹하게 떨치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올 수 있다. 블루투스 마이크는 방구석을, 캠핑장을, 엠티 숙소를 노래방으로 변신시켰다.


가미족이 맘 놓고 활개 칠 수 있는 국내를 떠나 타지 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조금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뮤지션을 물으면 괜스레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회피했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좋아’라고 본심을 말하기엔 왠지 음악적 감각이 없다고 시인하는 것 같아 면이 서질 않았다. 언젠가 솔직히 말했다가 잘 모르는 이에게 ‘촌스럽다’는 평을 들은 후론 주눅이 든 모양이다. 음악에 아예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쪽이 차라리 더 쿨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실과 거리가 멀었다. 나는 소찬휘 <tears>와 서문탁의 <사미인곡>을 운전하며 완창 할 수 있으며, 가사를 줄줄 꿰고 있는 노래도 최소 100곡은 될 정도로 진성 가미족이기 때문이다. 결코 음악에 관심이 없는 타입이 아니었다.


기가 죽은 가미족으로 살던 어느 날 한국인 친구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으로 갔다. 나와 집주인 그리고 M은 와인을 거나하게 마셨다. 정확히는 나와 집주인이 술을 거나하게 마시는 동안, 술을 하지 않는 M은 주로 안주를 먹었다. 집주인 친구는 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블루투스 마이크를 들고 나왔다. 바로 그때 우리 셋 안에 잠들어있던 가미족 정신이 동시에 깨어났던 것 같다. 우리는 무려 6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 지오디의 <촛불 하나>를 틀면 그다음 사람이 자연스레 <어머님께>를 찾고 그다음 타자는 스윽 <길>을 부르는 식이었다. 마치 유튜브 알고리즘이 인간화된 것 같았다. 6시간 내내 외국의 가곡은 단 1초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뒤늦게 집에 온 집주인의 프랑스인 남자 친구는 M이 알콜 한 방울조차 털어 넣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자랑스러운 가미족이었다.


살아온 동안 부른 노래를 모두 합치면 얼마 큼의 시간 인지, 얼마 큼의 눈물이고 얼마 큼의 웃음 인지, 그 노래에 얽힌 기억들과 이야기는 얼마나 아련하고 유치하고 정겨운지, 또 나는 가미족의 얼을 품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래를 흥얼거릴지. 세련되고 감각적인 뮤지션은 모를지 언정, 촌스러운 내 등 뒤에는 소찬휘, 박정현, 쿨, 거미, 빅마마와 지오디가 있어 든든하다. 슬픈 날에도 즐거운 날에도 삶에 늘 음악이 있을지니. 그걸로 됐다. 나는 다시 차창을 올리고 쉰 목소리로 락커가 된다.


떠나는 그대여, 울지 말아요. 슬퍼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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