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생활 1년 9개월 째.
그동안 크고 작은 여러 실패 경험들을 겪었다.
도움 구할 사람 하나 없이 끝없이 발생하는 디버깅 오류로 좌절한 저녁들이 있었다. 논문들을 몇백편 뒤지다 스쳐지나갔던 논문이 내가 결국 찾던 논문임을 아주 뒤늦게 인지하게 된 어떤 밤이 있었다. 겨우 낸 논문이 억셉되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탈함과 함께 다시 내 품에 돌아와 폭 안긴 어떤 낮이 있었다. 교사를 관둔 이후로 내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졸업을 앞둔 지금 이 시기에도 성취라 이름 붙일 만한 것을 뚜렷하게 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조금은 바보같게도 내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건지 언어적으로 명료하게 표현을 못하겠다.
뭐랄까, 교사 때 겪었던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은 그 감정들이 뭐였는지 기억해내야 생각날 정도로 조금 허탈할 만큼 환경을 바꾸는 순간 모두 해소됐다. 근데 그 때의 감정들은 해소됐으나 어쩌면 당연스럽게도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복잡한 감정들이 생겼다. 예를 들면 망해버린 워라밸에 대한 피로함, 자기 발전에 대한 끝없는 압박감, 연구라는 황야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자괴감 같은 것들이다. 이 삶도 이 삶대로 쉽지 않다. 어쩌면 모든 일은 일이 되는 순간 '의무'라는 단어에 휩싸여 맑았던 색깔에 잿빛이 더해질 수 밖에 없는 슬픈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이 글로써 넓은 브런치 공간 상에서 연이 맞닿는 타인을 상상해본다. 약간 미안한 감정이 든다.
아마도 그 타인은 지금의 진로에 어떠한 연유로 불만족하는 부분이 있어, 먼저 '선택'이라는 행위를 한 나라는 타인의 삶의 형태가 궁금해서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가 브런치 글을 처음 올렸을 때의 마음가짐처럼 선택의 결과에는 꽃길만 가득하답니다! 따위의 밝고 명랑한 문체로 말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도 내 인생이 그러길 바랬지ㅠ)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과정은 생각보다 쓴 맛이 (상당히 많이) 난답니다 그렇지만 제 나름대로 (또 다시) 버티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는 구구절절 모먼트가 더 많은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모든 고민들이 결국은 자기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진로를 선택한 뒤로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성격이 이렇게까지 많이 바뀐 사람은 단시간에 처음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쩌면 지금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교사 시절에는 많은 학생들과 과도할 정도로 활발한 의사소통을 해야 해서, '타인에게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에 한마디도 안하는 날이 허다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불필요한 사회라 이 능력은 큰 쓸모가 없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짧게> 표현, 기술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말 한 마디, 단어 하나마다 검열하게 되고 사람이 자연스레 점점 시니컬해졌다. 그러나 어떤 환경에 있든 나는 나였다. 교사라는 직업에서도, 연구원이라는 직업에서도 한 발 떨어져 각 직업에서 필요한 나의 일부분이 아닌, 나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자기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진다.'에서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얄팍했던 내 생각보다 많이 무겁다.
평일에는 밤늦게 퇴근을 한다-를 디폴트로, 한 줄이라도 알아내서 뿌듯한 날과 한 줄도 이룬 게 없어 좌절하는 하루를 번갈아 보낸다. 주말에는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다-를 디폴트로, 커피를 들이키며 해야 할 일을 쳐내다 일요일 밤이 끝나는 하루와, 할 일을 쌓아 둔 채로 회피와 자책을 멀티-테스킹하며 스트레스 받지만 몸은 편한 하루를 번갈아 보낸다. 발전하고 있음을 수치적으로 명료하게 말할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고 가끔은 피로에 찌들고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감자같은 내 모습에 잔뜩 초라해지기도 한다.
감자의 인생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쳐내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지금의 작은 한 걸음이 모이고 모여 나중에는 의미 있는 도약이 되어 있길. 감자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