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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Dec 17. 2023

5년간의 짝사랑

이제 그 마침표를 찍어보려고 할 때.

본래,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사실 블로그처럼 오글거리는 글을 쓰지는 못하겠고,

심심하거나 뭔가 생각이 날 때, 감정이 오롯이 설 때 자유롭게 좋아했던 글쓰기를 해 볼 요량이었다.

어쩌다 보니 누가 직장인 아니랄까봐 회사 이야기만 주구장창 쓰고 있는데, 오늘은 이름 모를 타인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서 자유롭게 글을 쓰는 점, 브런치라고 하면 이제 글 잘쓰는 작가들이나 글을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글인 점. 모두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벌써 12월이고, 나라에서 나이를 한 살 더 줄여줬는데도 내년이면 나이가 마흔 둘이다. 이럴수가.

아직 마음만은 뭐든 다 내가 하면 성공할 것 같았던 30대인데, 아프기도 참 자주 아프고 글도, 문장 하나 쓰기도 굉장히 노잼인 시기가 되버린 것이다. ISFJ가 아싸 중에 인싸라고, 그래도 수다 떠는 거 은유표현 하는 거 참 좋아라 하는데 쉬려면 작정하고 누워서 고장난 몸 배터리 충전하기에 바쁜 프로 집돌이가 되버렸다.


사실 고백은 그래서 아직 쌩쌩하고 급찐살도 컨트롤이 되었던 30대 중반에 했어야 했다.

이제사 고백해 보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 몸을 쳐다보면 한숨이 나와서 헬스장에 뛰어가지만 몸이 이전처럼 반응을 안 한다. 너는 운동해라, 나는 저녁에 촉촉한 초코칩을 먹을테니 하는 느낌이랄까.


어쩌다 보니 남들은 결혼도 하고, 연애를 마무리 짓는 시기에 한 사람한테 홀연히 반했고, 그게 벌써 5년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 사람과 접한 시간을 굳이 계산해 보면 햇수로는 5년이지만, 대화는 딱 3일 밤낮 정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맞다. 나는 그 사람의 '고객' 이다.


세살 터울의 그녀는, 나와 초등학교 및 중학교 동문이고 알고 보니 한 동네에서 자랐다.

내가 6학년 때 이미 그녀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어거지로 가져다 붙이는 인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커서는 계속 이 동네에서 자라고 일하다가 얼마 전에야 조금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게 또 먼 거리는 아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연애를 어떤 사람이랑 하고 싶으냐' 라고 물어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집 가까운 사람이요' 였고, 실제로 그래서 대학교 다닐때는 덕성여대 다니는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기왕이면 자취하는 사람이라면 더더 좋았을 것 같았고.

몇 번의 연애를 해 보면서, 거리와 마음이 약간의 함수관계를 가지고 반비례 곡선을 그린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고, 로망 중에 하나가 언제든 편하게 츄리닝 바람으로 만나서 같이 수다도 떨고 친구처럼 한잔 하고, 그러다가 이따금은 같이 차 끌고 멀리 나갔다가 한 동네에서 헤어지고 내일 또 보는 연애였기 때문이었다.

롱디는 글쎄.  이젠 정말 하라고 등 떠밀어도 글쎄이다.



그녀와 나의 위치는 엄격한 '고객' 과 '디자이너' 이고, 그녀는 남들을 예쁘게 가꿔주는 일을 한다.

그래서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사실 이 마음을 나눌 때 마다, 그녀의 직업에 대한 편견을 듣게 되고, 제대로 된 조언이나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다. 나 역시 DM 정도로 그녀와 이따금 아주 짤막한 대화를 하거나 할 때,

서로 이제 00씨 라고 불러도 여러 이유가 충분할 것 같아요. 라고 하여도 여전히 상대는 '고객님' 을 놓지 않길래, 나도 그냥 쌤 또는 실장님이라고 부르고 만다. 둘 다 어린 나이에 서로를 알게 된 건 아니다보니 그정도 비즈니스 매너는 있어야 할 것 같고, 벽 치는 사람 굳이 억지로 벽 허물어서 부담주기도 싫었다.


라고 하지만, 이미 크리스마스 때 선물은 두번이나 줬고 한번은 마음만 받겠다고 하였으며, 짤막한 편지도 줬었고, 얼마 전인가에는 이직한 곳에서 명함 주길래 내 아이돌 굿즈로 가지고 싶으니 싸인이라도 해달라고 해서 싸인도 아닌 그 사람의 이름을 받아오는 만행을 저질렀다.

(놀라운 사실은, 그 굿즈를 받고 그 다음날 내 매출이 400만원 늘었으니 이 정도면 굿즈가 맞아서, 딱 자기 이름 두 글자 쓴 그 명함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가지고 다니는 중이다.)

선생님은 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정의로우며, 일할 때 영업적인 대화의 화법이나 기술에서도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본인 피셜 자기는 이 업종에서 순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그러하기에, DM으로 사진 한 장 같이 찍으면 안된다고 했다가 ' ㅋㅋㅋㅋㅋㅋ 저랑 사진이요?' 저 명함 싸인도 처음  해 보는건데요?' 라는 답을 듣고 이불을 걷어 찬 적이 있다. 펌 예쁘게 한 날이었다. ㅠㅠ



사실 이 정도면 10대 꼬마들도 마음 있는거 알 거라 생각한다. 더구나 나는 마법사 N년차라서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이 굉장히 날것이라서 드라마처럼 두근거리게 못 한다.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방식들밖에는 안되기 쉽상이다. 마법사 N년차면 현자가 된다고 하는데, 나는 현자가 되지는 못하는 모양이고,

나날이 A=A 라는 사는 방식에만 익숙해져 간다.


사실, 그래서 그 많은 만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DM을 이어가고 인스타도 제법 끊는 사람 많은 분이, 여전히 인친으로 유지하는 것 보면 '영업을 대단히 잘 하는' 사람, '인내심이 지극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시술 한 번에 몇십만원짜리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제일 저렴한 시술을 하는 편인데 이렇게 까지 고객유지를 한다고 하면, 사실 나한테는 그 조차 반할 만한 요소이고 존경의 요소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 사람이 마음이 넓고 자기 맡은 일에 프로페셔널 하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분명히 나는 진상 그 이상을 이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하다.

나는 CS 할때, 내 일이 CS가 아닌지라 최선을 다해서 받다가도 뭐 갑자기 사은품을 내놔라 어쩌고 하면 전화 확 끊어버릴 때도 있는데, 그녀는 확실히 사람 대하는 서비스직의 전문가인가 싶다.


예쁘다고 칭찬하거나, 밥먹자고 말도 해 봤지만 그 때 마다 옆길로 새거나 갑자기 답이 끊기는걸 봐서는 이건 누가봐도 실패 각이 바짝 선 서비스이자 영업인데, 또 그 이후 다른 주제 (예를 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UFC 대회나 아이유 이야기) 가 나오면 약간의 대화가 돌고. 나는 인성이 안좋아서 이렇게까지 고객 잡기 못한다.

아 증말로. ㅠㅠ


반면에 두려운 이유는, 어차피 부딪쳐야 알 벽이지만 나처럼 N년차인 그녀의 솔로 생활, 그리고 연애에 별 생각 없어보이는 라이프패턴이 아니더라도 그 정의롭고 지혜로우며 다감한 사람, 집순이같지만 또 활발한 반전의 매력이 있는 헐렁이에게 '고객' 으로 끝나버릴까봐. 아니 정확하게는 '남의 영업활동에 부담을 준 것' 이므로 그곳을 두 번 다시 못가고 못 보게 될까봐이다. 고백을 아니하면 한 달에 한 번은 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은 더 자주 만나고 대화하고 싶고, 친밀해지고 싶은데, 그러자면 아예 못 보게 되는 남남이 되는 건 항상 고백의 딜레마이다.



헤어디자이너라는 직업군에 대해서 오히려 누군가들은 되게 쉬운 사람 대하듯 이야기하는데, 이거 다 어디선가 만든 편견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기에 생기는 선입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 지, 5년이나 묵은 누룽지같은 마음을 어떻게 전하는게 가장 좋을 지, 진솔하게 전한다면 진솔하게가 어떻게인지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주변에 없지.


나누고 물어보고 싶은 건, 

고백은 할 건데, 일단 크리스마스때는 안 할거고 (이미 두 번이나 그 날에 맞춰서 방문해서 선물 공격을 해서, 더 이상은 그건 아닌 것 같다), 적당히 연말 쯤 할건데 어떤 방식으로 해야 가장 부담을 덜 주고 차일 때 차이더라도 정중한 표현이 될 지, 그리고 진솔한 표현이 될 지가 궁금하다.

어차피 지금까지의 추정으로 봐서는 실패 9.9 : 성공 0.1 의 확률 싸움이라면 담백하고 진솔하게 의젓하게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올해 내내 고민하고 있는 N년차 현자에게 부디 고견들을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아. 참고로 남의 영업장에서 일하는 중간에 고백하는 거 말고, 일단은 DM 소통정도는 되니 손편지 정도를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웃고 있는거 다 보인다. 부디 다시 한 번 아이디어 짧은 마법사를 불쌍하게 여겨주시기를 당부드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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