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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Nov 09. 2021

불가해한 세상, 진화하는 연상호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대한 단상


1.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지옥>을 봤습니다. 19일 공개 예정인데, 담당 기자들에겐 어제 오늘 딱 이틀 간 먼저 볼 수 있게 해줬죠. 볼 수 있는 시간을 업무 시간(9 to 6)으로 한정해놔서 몰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만 다행스럽게도 6부작으로 짧은 편이어서 가까스로 다 볼 수 있었습니다.


2.

<지옥>은 꽤나 어둡고 무거운 작품이었습니다. 연상호를 흥행 감독 자리에 올려준 <부산행>이나 <반도>보다는 그가 실사영화를 연출하기 전에 만든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와 더 유사한 분위기였죠. 넷플릭스 구독자 반응이 어떨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일부분 경쾌하며 유머러스하기도 했던 <D.P>나 <오징어 게임>과 달리 시종일관 가라앉아 있어서 앞선 두 작품만큼 대중적인 지지를 얻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3.

전 <지옥>이 참 맘에 들었습니다. 연상호가 진화했다는 걸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에서 확인한 연상호의 능력은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였습니다. <부산행>과 <반도>에서 보여준 건 좀비로 대표되는 이른바 '크리쳐'를 이질감 없이 작품 속에 녹여내는 연출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은 작가로서 연상호, 연출가로서 연상호의 장점이 절묘하게 조합된 작품이라는 거죠. 국내 감독 중 이런 능력을 가진 게 누구냐고 한다면, 연상호 말고는 봉준호밖에 생각이 나지 않네요.


4.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크리쳐가 매우 인상적인 작품입니다만 더 중요한 건 역시 이 작품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면에서 전 이 작품이 '빈티지 연상호'를 좋아하는 관객의 기대감을 충분히 채워줄 거라고 봅니다. 각본은 정교합니다. 반전은 충격적입니다.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작가로서 연상호의 능력을 더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장르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리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OTT는 연상호가 가장 잘 뛰어놀 수 있는 플랫폼으로 보입니다.


5.

<지옥>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 누군가에게 죽음을 예고합니다. 넌 언제 죽는다, 라고 정확한 시간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 시간이 되면 지옥의 사신이라는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 당사자를 죽입니다. 새진리회라는 종교 단체는 이것이 죄 지은 자를 벌하는 신의 계시라고 주장합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죽음이 정말 단죄의 행위인지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새진리회를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6.

<지옥>은 불가해한 세상을 한탄하는 작품입니다. 다양한 작품이 떠오르더군요. <밀양> <곡성> <다크 나이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다우트> 등이 그런 영화이겠지요. 성경의 <욥기>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한 이 세계를 견뎌내기 위해 기어코 의미를 부여하는 자들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감독은 연상호 그리고 나홍진 정도인 것 같습니다.


7.

출연하는 모든 배우의 연기가 뛰어납니다. 양익준 박정민 김도윤의 연기가 특히 좋습니다. 김현주는 연기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그리고 역시 유아인. 참 독보적인 연기였습니다. 저에겐 유아인 최고 연기였다고 봅니다.


할 얘기가 더 있습니다만 그건 앞으로 나올 기사에서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ㅎㅎㅎ


#지옥 #연상호 #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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