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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 마케팅과 유니폼

사람의 뇌가 유니폼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

그냥 무의식적으로 뭔가 기억날 때가 있다. 내가 특별히 열심히 외운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뭔가 기억나고 자동으로 여러 이미지가 뇌리를 스친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거나 좋아하는 음식에 손이 간다. 이런 무의식적인 행동이 의사 결정의 95%를 결정한다는 제럴드 잘트먼 교수의 이론은 오늘날 뉴로 마케팅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뉴로 마케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우리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끌리는 것이다."


기존의 경제학, 경영학에서는 소비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한다고 결론을 내리지만, 뉴로 마케팅의 관점에서 소비자는 절대로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한다. 의사 결정의 시늉을 할 뿐, 뇌에서 반응하는 대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그러한 뉴로 마케팅과 소비 심리에 대해 서술한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같은 책들이 최근에 각광받는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의 저자가 독일의 경제학자인 한스-게오르그 호이젤이다. 참 쓸데없게도, 여기서 나의 해마가 작동한다. 저자의 이름을 보더니, 엉뚱하게도 독일의 대표 명문 축구 구단인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 수비수, 한스-게오르그 슈바르첸벡이 떠올랐다. 독일 축구의 '카이저'라고 불리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평생 파트너로도 유명하며 평생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뛰었던 슈바르첸벡을 기억하면서, 바이에른 뮌헨과 같은 명문 축구 구단들의 유니폼에 대해 문득 생각하게 됐다. 우리도 무의식적으로 유니폼에 반응해오고 있지 않았을까.


바이에른 뮌헨의 'Die Roten' 


1900년에 창단한 바이에른 뮌헨의 애칭은 Die Roten, 즉 빨간색이다. 기본 색깔이 빨간색이고 여기에 흰색이나 파란색 무늬가 곁들여지는 정도다. 1963년 독일 분데스리가 창립 이후, 바이에른 뮌헨은 빨간색 유니폼과 함께 정규리그 우승 29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5회, DFB 포칼 우승 20회 등을 기록하며 독일 축구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해 왔다. 


독일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골키퍼, 수비수가 모두 바이에른 뮌헨에


그러한 위용 덕인지, 우리는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단어를 보거나 떠올리면 본능적으로 빨간 유니폼을 연상하게 된다. 우리의 뇌는 무의식 속에서 뮌헨과 빨간색의 이미지를 연결한다. 이 팀이 어느 날 갑자기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나오면 어색해 미칠 것만 같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나와야 기분이 편안하다. 동시에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글자에서 어떤 위압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디자인이 내 마음에 쏙 드는 스마트폰이 나를 홀리는 것처럼.


우리의 뇌 속에는 해마라는 부분이 있다. 해마는 사람의 기억과 연상을 담당하는 중요한 곳이다. 해마는 의식적 학습에 의한 기억을 돕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결합시키기도 한다. 이는 사람이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성적인 논리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알파벳과 색깔 사이에 논리적 상관관계는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자에서 왠지 모르게 내가 칠해야만 할 것 같은 색깔이 보인다.


물론 이것은 선입견의 효과일 수도 있다. TV나 모바일 영상 속에서 빨간 유니폼을 입은 바이에른 뮌헨을 계속 보았기 때문에 생기는 결합 현상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눈의 인식, 뇌의 움직임 속에서 합리적 의사 결정은 없다. Die Roten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도출하는 마법의 알고리즘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우리는 끌릴 뿐이다. 지난 50년 동안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빨간색 유니폼 속 글자 및 패치의 위치다. 기업이나 구단이 광고하고자 하는 브랜드, 문구가 유니폼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광고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여기서도 뇌의 반응을 활용한 뉴로 마케팅이 적용되는데, 아래 2017년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보면 감이 잡힐 것이다.


메인 스폰서인 아디다스는 기업의 엠블럼을 선수의 오른쪽 가슴 쪽에 위치시켰다. 이는 사람의 눈이 숫자나 텍스트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습관을 활용했다. 시청자나 소비자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왼쪽인 선수의 오른쪽 가슴 부위가 가장 많은 노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왼쪽 자릿수 효과 (Left digit effect)를 아디다스가 적용한 것이다.



게다가 바이에른 뮌헨의 메인 파트너인 도이체 텔레콤의 로고가 유니폼에 새겨진 형태를 보면, 기업의 로고 안에 있는 알파벳 T가 유니폼 줄무늬와 겹쳐 있다. 사람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옷의 줄무늬에 간다는 점을 활용한 셈이다. 디자인의 측면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바이에른 뮌헨의 유니폼에 시선이 가는 순간 도이체 텔레콤의 로고를 자동으로 보게 된다. 게다가 글자의 위치도 소비자의 기준에서 왼쪽이니, 이쯤 되면 안 보는 게 더 어렵다.


또, 유니폼 하의를 보면 구단의 로고와 별이 선수의 오른쪽 다리에 그려져 있다. 별의 개수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횟수를 뜻한다. 상의에도 로고가 부착되어 있지만, 심장 쪽에 그려져 있으므로 자칫 잘못하면 사람의 시선을 비껴갈 수 있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하의에도 로고를 부착했다. 시청자, 혹은 팬들의 눈길이 구단의 자부심에도 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가 되겠다.


빨간색 유니폼, 상의 왼쪽의 아디다스 마크, 상의 중앙부의 도이체 텔레콤 마크, 구단 로고는 이렇게 사람들의 뇌에 강한 인상을 남기며 뇌리에 박힌다. 뇌가 새기는 무의식의 공식이니, 이제는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말만 봐도 뇌가 저절로 반응한다. 이것이 세월과 함께한 뉴로 마케팅의 힘이다.



NBA 유니폼의 뉴로 마케팅


NBA의 유니폼 마케팅에도 유사한 원리가 숨어 있다. 유니폼 상의 중 윗부분에 메인 스폰서의 마크가 붙는다. 시청자들은 TV 화면 속 유니폼을 볼 때 본능적으로 상체 윗부분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명령이 있어서도 아니고, 뇌의 반응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시청자의 시점에서 왼쪽인 선수의 상체 오른쪽에 유니폼 메인 스폰서인 나이키 엠블럼이 붙고 상체 왼쪽에는 NBA 올스타전 메인 스폰서인 기아자동차의 엠블럼이 있다.


올해의 경우, 올스타전을 치르는 양 팀의 유니폼을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나눴다. 화면 상의 빨간색과 파란색이 주는 대비 효과가 시청자들의 뇌를 제대로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하의 오른쪽에 NBA 공식 엠블럼을 작게 새겼다. 상의 중앙에 NBA 엠블럼이 있긴 하지만, 메인 스폰서 엠블럼의 위치로 인해 시청자의 뇌가 상의 중앙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어서 보충했다고 보면 되겠다.




NBA에서는 올스타전이 개최되기 전에 올스타전 유니폼을 사전 공개한다. 그런데 유니폼을 공개할 때, 유명 모델을 섭외해서 입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이는 유명 모델이 옷을 입으면 사람의 뇌가 유니폼 디자인보다 모델의 외모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테니스 슈퍼스타였던 마리아 샤라포바가 나이키의 대표 모델이었을 때, 샤라포바가 입은 나이키 의상의 광고 효과는 기대 이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잠재 소비자들의 눈길이 샤라포바의 외모에 집중되어 샤라포바가 입은 나이키 의류가 튀지 않아서였다.


현재 NBA 유니폼을 판매하는 나이키 매장을 가 보면, 유니폼을 입은 선수의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소비자의 뇌가 유니폼 디자인에 최대한 끌리게 하기 위한 장치다. 소비자의 뇌가 옷에 반응해야, 실제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니폼 뉴로 마케팅의 미래는?


뉴로 마케팅 자체가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보니, 유니폼의 뉴로 마케팅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유니폼 마케팅을 할 때 뇌를 포함한 신체 기관의 반응을 고려한다는 것은 뉴로 마케팅의 길이 열려있다는 증거라고 보면 되겠다. 앞으로의 유니폼의 디자인도 사람의 취향을 지배하는 뇌의 움직임을 더 많이 의식할 것이다. 


향후 우리가 사고 입게 될 유니폼은 스마트 유니폼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시각 효과를 유니폼에 삽입시킬 수도 있고,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여 유니폼 등번호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미군의 군복처럼 유니폼이 하나의 컴퓨터가 되어 사람의 신체적 반응까지도 축적하여 저장 가능하지 않을까. 신체적 반응이 축적된다는 것은 마케팅 데이터의 축적이며, 소비자의 무작위 반응을 따라가는 단서가 된다.


유니폼의 뉴로 마케팅은 결국 데이터의 연결 및 호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달리 얘기하면, 우리의 뇌가 유니폼의 어떤 부분에 강렬하게 반응하는 지를 좀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강렬하게 반응하는 지점이 유니폼의 킬러 컨텐츠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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