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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고시엔이 한국에 있다면

10대에게 필요한 후회없는 추억

일본 효고현에 위치한 고시엔 야구장에서 열리는 일본 고교 야구 경기를 볼 때면, 어떤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피가 끓을 때가 있다. 그저 야구를 미친 듯이 하고 싶어서, 필드 위에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치고 달리는 고등학생 선수들을 볼 때마다 나의 심장이 요동친다. 고시엔 야구장을 꽉 채운 관중들은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준다.


고시엔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대부분은 프로야구 무대에 가지 않는다. 프로 진출이 사실상 정해진 일부의 엘리트 선수들을 제외하면, 고시엔 무대가 마지막 야구다. 고시엔을 끝으로 야구공을 놓는다는 생각을 있기 때문에, 한 경기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경기에서 패하면 감독부터 선수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눈물 바다가 된다. 반대로 이긴 경기에서는 영혼을 끌어 모아서 환호한다.


특히 여름에 펼쳐지는 고시엔 전국 대회에서는, 지역 대표로 출전한 고등학교 야구부를 위해 해당 지역의 학생들부터 중장년층까지 야구장을 찾아온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준다. 고교 선수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찬사와 박수는 없던 힘도 생기게 하는 아드레날린과도 같으며, 인생에서 어쩌다 한 번 느끼는 짜릿한 자극제다. 이보다 행복한 순간을 인생에서 느낄 기회는 별로 없으리라.


고시엔 무대에서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대회 자체가 학생 선수들의 희로애락이 뒤섞인 소중한 시공간이라는 점이다. 훗날 어른이 되어 그 시절을 반추할 때, 고시엔 야구는 그들 인생을 빛내주는 10대 시절 훈장이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를 진학을 앞둔 초등학교, 중학교 야구부 학생들에게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에 가슴을 뛰게 만드는 광경이 되기도 한다. 



왜 갑자기 고시엔 얘기를 꺼냈냐면, 10대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 그리고 추억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해당 나이 대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10대 시절에 폭풍처럼 지나간 감정들은 사람의 감성과 심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10대 시절이나 고등학생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시간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고시엔 야구 대회는 단순한 야구 대회가 아니다. 청소년들에게, 고등학생들에게 평생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순간이다. 어깨가 아프도록 공을 던져도, 팔다리가 까지도록 슬라이딩을 해도 그저 행복하지 않을까. 미친 듯이 뛰는 모습을 관중 모두가 응원해준다. 후회없이 치고 달리고 난 이후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그것은 끓어오르는 학생들을 위한 효과적인 치료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시엔 무대를 밟는 학생 선수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그들이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를 계속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속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정도로 치열하게 뛰는 것, 그것은 피어나는 청소년기의 자양분이다. 나는 그런 자양분을 딱히 느끼지 못한 10대를 보내서 그런지, 그런 열기가 고프기도 한다.


사실 나의 10대는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고, 눈물과 웃음이 진하게 배었던 시간도 없었다. 하다못해 나중에 술안주처럼 얘기할 만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동창회라는 것도 어색하고, 중-고등학교 졸업 앨범도 딱히 가치를 못 느껴서 그냥 버리고 싶다. 입시 공부를 제외하면 그런 순간을 느끼고 살아온 적이 없어서, 그냥 무미건조하게 지나간 시간일 뿐이다.


지금의 10대들도 왠지 불행해 보인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도, 커져만 가는 학업 스트레스 속에서 우울함이 커져가는 이유도, 결국은 귀한 추억을 쌓고 나누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걱정일랑 제쳐두고 같이 모여서 미친듯이 웃고 울고 떠드는 시간, 그 때 아니면 갖기 힘들다. 정서적 위안과 쾌감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10대들에게 그런 행복과 위안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에는 또다른 고시엔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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