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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다이아 Oct 06. 2024

사랑과 상실의 끝에서 11 - 무책임한 공감의 폐혜

미정은 이혼을 선택했던 그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시댁 문제와 석우와의 끝없는 갈등 속에서, 그녀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의 말이 큰 위안이 됐다. 친한 엄마들은 미정의 상황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결정을 지지해줬다.


"너 정말 너무 고생했어. 이혼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런 남편이라면 나라도 참지 않았을 거야."
"네가 어떻게 그걸 다 견뎠니? 이제는 너도 네 삶을 살아야 해."


미정은 그 말들이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둘러싼 문제들 속에서, 마치 그녀가 마땅히 이혼해야 할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말들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말들이 그녀의 삶을 얼마나 큰 혼란 속으로 몰아넣을지.


이혼 서류에 서명한 후, 미정은 갑작스러운 홀가분함을 느꼈다. 이제 시댁의 억압에서 벗어났고, 석우와의 싸움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자유는 결코 영원히 달콤하지 않았다.


후회는 뒤늦게 찾아왔다



이혼 후 첫 달, 미정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직면해야 했다. 경제적 자립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전업주부로 살았기 때문에,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거의 없었다. 이력서를 아무리 여러 곳에 내봐도 돌아오는 답은 "경력 부족"이었다.



"이건 내가 상상했던 게 아니야…"


미정은 통장 잔액이 줄어드는 걸 보며,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석우가 보내주는 양육비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미정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멀어지는 것도 큰 충격이었다. 이혼 전에는 그녀를 응원하고 지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자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정이 더 이상 가정을 지키지 못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이제 그들 역시 자신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미정을 피하는 것이었다.이혼을 부추겼던 그 사람들은 더 이상 책임지지 않았다. 미정의 선택을 부추겼던 무작위적이고 책임 없는 공감들은, 현실 앞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그들은 미정의 상처와 후회를 대신 짊어질 생각이 없었다. 미정은 이혼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무거운 선택인지 이제야 체감했다.


미정은 문득 자신이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이혼을 결정했던 순간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혼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처럼 보였다. 시댁 문제도, 남편과의 싸움도, 한 번의 이혼으로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감정에 휘말려 내려진 결정은 결국 자신을 더 큰 어려움 속으로 빠뜨렸음을 깨달았다.


감정적인 결정의 결과


이혼 후 몇 달이 지났을 때, 미정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동안 발이 아팠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그녀가 지금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공감을 보여주며 이혼을 응원했지만, 정작 현실 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그녀와 함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혼 후의 고통과 어려움을 나눌 수 없었고, 미정은 그 사실이 얼마나 서글픈지 깨달았다. 그들은 각자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거리를 두었다. 그제서야 미정은 그들의 공감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알았다.



감정에 휘둘리던 그녀는 그 순간의 지지와 위로만을 믿고 이혼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 선택이 얼마나 무모하고 성급했는지 후회하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폭발할 때는 모든 게 흑백처럼 명확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결정이 가져다준 현실은 회색빛이었다.


"내가 그때 차분하게 생각했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더라면…"


미정은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는 친구들의 말이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순간적인 감정에 불과했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미정의 삶을 책임지지 않았다. 이혼 후의 고통과 불확실성은 오로지 미정의 몫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미정은 늘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엄마로서 그녀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밤이 되면 혼자 남은 집안에서 미정은 자주 눈물을 흘렸다. 이혼 후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그때 내린 결정이 그녀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더 깊은 고독과 어려움 속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제 그녀는 알았다. 감정에 휩쓸려 내린 결정은 결국 스스로를 더 힘든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단지 남편과의 갈등이 괴로웠다는 이유만으로,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선택한 이혼은 지금 그녀의 삶을 더 큰 혼란 속에 던져놓았다.


미정은 자신을 위한 삶을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순간적인 감정에 의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신중하게, 그리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무책임한 공감과 위로는 순간적인 안도감을 줄지 몰랐지만, 그것이 그녀의 삶을 구원해주지는 않았다.


이제 미정은 서서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 했다.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지고,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후회는 이미 충분히 했어. 이제는 다시 내 삶을 바로잡아야 해."




미정은 스스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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