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비다이아 Sep 26. 2024

사랑과 상실의 끝에서 2

모든 게 끝나고 난 뒤

석우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법원을 나서는 순간, 숨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갈등이 반복되던 결혼 생활이 끝났다는 사실에 어떤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내 미정과의 끝없는 싸움, 감정 소모,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지긋지긋한 시댁 문제에서 해방되었다는 생각이 그를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돼."


이제는 더 이상 아내의 불만을 들어줄 필요도 없고, 시댁 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었다. 석우는 오랫동안 그 문제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소진된 상태였다. 미정이 시댁에 대한 불만을 끊임없이 쏟아낼 때마다, 그는 중간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썼지만 끝내는 그 시도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는 그 지점에서 지쳤다.


"이제 좀 편해졌네."


처음에는 이혼을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결혼 생활을 지키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실패했고,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혼하고 나니 예상 밖의 해방감이 그를 찾아왔다. 미정과의 관계에서 느끼던 압박감과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석우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해방감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없는 집을 바라볼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감정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이들. 이혼을 결정할 때는 그저 자신과 아내의 갈등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만 집중했지만, 정작 그 선택의 가장 큰 피해자는 두 아이들이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무슨 죄야."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혼 후에도 그들은 그저 두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들 나름대로 깊은 상처를 품고 있었을까? 석우는 자신이 더 이상 미정과의 싸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고 느꼈지만, 그 자유의 대가가 아이들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그의 집에 올 때면, 석우는 그들의 표정에서 어딘가 모를 불안감과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큰아이인 수현은 어른스럽게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눈빛 속에 가득 찬 불안은 숨길 수 없었다. 작은아이 민재는 가끔 아빠에게 물었다.


"엄마랑 다시 살 수는 없어요?"


석우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그저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안정된 가정일 텐데, 그들의 부모는 그걸 지키지 못했다. 석우는 아이들을 불쌍하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미정과의 갈등에서 벗어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애썼다.


"난 최선을 다했어."


그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결혼 생활 동안 그는 수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은 지쳐버렸다. 시댁과 아내 사이에서 중재하려고 했던 그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는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미정은 끝까지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가 이혼이었다. 이제 그가 더 이상 미정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안도감을 줬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달랐다. 아이들이 주말에 그를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석우는 그들의 표정 속에서 자신이 이혼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선택이 자신에게는 편안함을 가져다줬지만, 아이들에게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석우는 혼자 있는 밤마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미정과 다시 함께 사는 상상을 할 때면, 그는 그 답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가 느끼는 것은 여전히 미정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확신이었다.


"이건 우리 둘의 문제였어.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석우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가 미정과 함께하는 결혼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면, 결국 똑같은 갈등이 반복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 갈등 속에서 자신이 또다시 지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시댁 문제뿐 아니라, 미정과의 끊임없는 감정적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 그는 미정과의 싸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계속해서 미안함이 자라났다. 그들이 겪고 있는 상처를 어루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상처받았어."


석우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는 결코 완전한 해방이 아니었다. 그가 미정과의 관계에서 벗어난 대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상처를 남겼다.


그는 속이 시원해졌지만, 그 시원함 뒤에는 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따라다녔다. 이혼이 자신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과 상실의 끝에서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