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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May 05. 2023

나는 9월 한 달간 무얼 했나?

창업일기 #12 - 2019년 10월 04일

– 변명 –

9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생각했다. “오늘은 진짜 뭐라도 쓰고 자야 하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글을 한 편도 쓰지 못한 이유가 단지 피곤함 때문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머리가 방전됐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머리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풀로 가동하고 나면 두뇌가 주변의 모든 글자 읽기를 거부한다. 글쓰기는 사실 쓰는 시간보다 읽고 고치는 시간이 더 고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퇴근 후엔 도무지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퇴근이라 해봐야 의자에서 일어나서 모니터 끄고 뒤로 세 걸음 걸어가 침대에 벌러덩 눕는 것뿐이지만) 


– 뭐했길래 –

그렇다고 내가 9월 한 달간 어떤 대단한 걸 이룬 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을 뿐이다.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됐다는 것이, 창업 아이템이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여전히 어딜 가나 털리고 또 털렸다. 그럼 나는 돌아와서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고, 다른데 가서 또 털렸다. 한 심사위원은 내게 타겟 고객 설정부터 전부 잘못됐으니 다시 시작하라고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이상하리만치 내게 화가 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9월 한 달간 무엇에 가장 집중했나.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팀 빌딩’에 노력을 기울였다. 개발 팀원들과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고 새로운 팀원이 생겼다. 바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마케터! 일이 잘 풀리려다 보니 굳이 찾지도 않았는데 유능한 마케터가 영입됐다. 이야기인 즉 이렇다. 하루는 군대 동기가 곧 퇴사를 하니 술이나 한잔 하자며 동기들을 모았다. 그래봐야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 전부다. 동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케팅 회사에서 6년이나 일한 팀장이었으며, 새로운 마케팅 기술(그로스해킹)을 공부하려고 퇴사했다는 것이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영업을 시작했다. “나랑 재밌는 일 한번 안 해볼래?”

 

– 결론 –

어떤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그리고 그 벽은 내가 부수던 넘어가던, 어쨌든 지나가야만 하는 벽이다. 이 벽을 넘지 않고선 어떤 교육을 듣거나 상담을 받아도 전혀 배우는 바가 없다. 이 벽은 바로 ‘실행’이다. 당장 내 눈앞엔 실행만이 남았다. 빠르게 실행을 해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거대한 빽도 생겼고(한국관광공사), 사업자금도 마련 됐고 든든한 팀도 꾸려졌으니 이제 정말 앞으로 걸어가는 일만 남았다. 우리 팀은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최고의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다 같이 폭풍 성장해서 강연하고 다니는 날을 꿈꾸며 다음 걸음을 뗀다. 


– 번외 –

어느 날 친한 동생이 내게 물었다. “형, 도대체 책은 언제 나오는 거예요?”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요즘 창업 한다 정신 팔려서 쓰던 책은 신경도 못쓰고 있다고, 여전히 초고만 완성된 상태로 있다고 말이다. 그러자 동생이 내게 강력한 돌직구를 날렸다. “형, 그럼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은 뭐가 되요.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죠. 책으로 나오면 꼭 읽고 싶었는데 좀 서운해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 동생 표정을 생각하면 왼쪽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솔직히 나는 내심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다. 몇 달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글만 쓰던 그 시간이 정말이지 끔찍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건 정말 완벽하게 나와야 한다는 강박감. 책으로 나올 글이라 생각하니 읽으면 읽을수록 쓰레기 같아서 그냥 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중국 편을 다 고치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면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또 다시 처음부터 중국 편을 고쳤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자니 몇 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작업과 멀어지게 되었고,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책을 낼 생각이다. 다행인 건 동생의 돌직구로 인해 부담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몇 백 권을 다 팔 수 있는 훌륭한 책을 만들어야 해!’였던 마음의 짐이 지금은 ‘그래 어떻게든 내볼 테니까 너나 읽어라’가 됐다.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준 동생의 돌직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10월 5일 토요일, 그 친한 동생이 결혼을 한다. 그리고 내가 사회를 본다. 돌직구가 고맙긴 하다만 내 마음을 후벼 판 그 XX의 표정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사회를 봐야겠다. 구르면서 퇴장하라고 시킬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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