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사작 Feb 20. 2022

출간과 출산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대한민국 유통망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수요일 인쇄를 막 마친 책이 바다 건너 제주도에 도착한 것은 금요일 오전! 저자 증정본과 함께 따로 주문한 책의 양이 꽤 되었는 데다가 물류창고로 들어가는 시간, 물 건너 제주로 오는 시간 등을 아무리 조급하게 계산해 봐도 주말은 훨씬 넘겨서 도착하겠거니 했는데 이틀 만에 배송이 된 것이다. (배달의 민족이 그냥 생긴 말은 아닌 듯.)


그토록 기다렸던 첫 책을 손에 든 그 순간, 기쁨, 보람, 감동 등 예견했던 감정보다는 '헐, 이게 뭐지'라는 마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책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손을 거쳐가는 너무나 익숙한 책, 네모나고 종이로 만들어진 책, 한글로 지어진 책, 하루에도 몇백 권씩 새롭게 쏟아지는 흔하디 흔한 책.. 그 책 일 뿐인데.  '내 책'이 세상에 나온 걸 막상 오감으로(맛은 보지 않았지만..) 부딪혀보니 어떤 감정보다 당황스러움이 먼저 찾아온 것이었다.


방 문을 잠그고(왜 잠근 거야? 도대체...) 당황스러운 감정을 진정시키며 물 한 컵을 들이켰다. 그 이후 내 눈에 가득 들어오는 것은 내 앞에 놓인 '내 책'. 그리고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 책이 아닌 책들'. 세상에! 이렇게 자아 중심적이고 유아적인 단순한 분류가 가능하다니! 그리고 마음에 불어오는 이상하고 야릇하고 유치한 감정의 동요는 무엇인가? 나는 이 마음을 찬찬히 뜯어 분석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책...                                            그리고 내 책이 아닌 책들.


나는 아직 아이가 없다. 하지만 아이를 가져본 몇몇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기가 탄생하여 처음 자신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 그저 감동적이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우선 상상해왔던 것보다 신생아는 이쁘지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상상해 왔던 그 존재가 오감으로 다가왔을 때(역시 여기서도 맛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당황스러움이 먼저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다 이게 정말 내가 낳은 내 아이구나. 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대게는 두 가지 마음이 드는데, 첫째는 조금만 더 노력할 걸(? 무엇을? 어떻게?)이라는 마음과 둘째는 이 아이를 위해서 정말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라고 한다.


'조금만 더 노력할 걸'. 이 마음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아기의 건강과 직결되는 태교 같은 걸 조금 더 신경 쓸 걸 이런 마음인 것 같고, 둘째 마음은 아직은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인 것 같다고 내 마음대로 그 이야기를 해석해 본 적이 있다.


'내 책'을 앞에 두고 찾아온 마음이 첫 아이를 처음 안아본 어느 친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쇄가 이미 들어가고 찾아낸 두 개의 오타 그리고 약간 모자란 듯한 책의 분량, 조금 더 농밀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고 구성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그렇게 '조금만 더 노력할 걸'이라는 마음이 '내 책'을 처음으로 손에 쥐어보고 찾아온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아쉽고 멜랑꼴리 한 감정은 그리 오리 가지 않았다. 해냈다는 뿌듯함. 첫 책이라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분명 이 책이 갖고 있는 독특성, 감동, 묵직한 무게가 존재하고 있다는 근자감(?)과 함께 무한한 책임감이 밀려들었다. '팔아야 한다! 팔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앞서 나가는 유통의 힘은 인터넷 서점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요일 인쇄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내 새끼는, 아니 내 책은 예스 24,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에 등록되었다. 그리고 책 제목 아래는 조그맣게 '판매지수'라는 것이 따라붙는데 이를 통해 책이 얼마나 활발하게 팔리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없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영업점 재고 및 위치 확인'을 통해 내 새끼, 아니 아니, 내 책이 지금 서점의 어느 지점에 몇 권이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제주도에는 대형서점이 없기 때문에 내 눈으로 책이 진열된 것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머릿속으로 그 많은 그리고 쟁쟁한 책들 사이에 내 책이 어딘가 자리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 첫 입학식 때 운동장 뒤편에서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 심정이 이랬을까? 수십 명, 수백 명의 아이들 중 딱 한 아이, 내 아이. 저 아이를 잘 길러야 한다. 키워내야 한다. 그때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 그리고 그는 어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기도 중에 나무에서 새들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환상 같은 것을 보았노라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까? 이런 생각과 함께 그 어떤 말도 이제는 아버지에게 소용이 없다는 사실. 그의 귀로는 이제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는 사실. 죽음이란 그냥 이렇게 찾아온다는 사실... 을 나는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화가의 장례식 -최초의 대화- 중>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엔 교보문고가 없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