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브 Dec 06. 2019

싸지르는 글쓰기

우선 쓴다.

<고독이라는 무기>에서 작가 에노모토 히로아키는 말한다.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 사진 등의 형태로 온라인에 본인의 의견, 생각을 드러내는 행위를 자제하라. 그 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본인을 단련하라.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책을 읽었을 때 느낀 바를 정리한 내용이다.)


나는 매우 미숙한 글쓰기 실력을 갖고 있다. 허나 문득문득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나아가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에 글을 공유하고 타인들과 의견을 주고받길 즐긴다. 부끄럽지만 퇴고도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가 보기에는 '글도 아닌 글'을 싸지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가 이 행동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고 소수의 누군가는 공감까지 느껴준다.(매우 감사하게도)


나의 글쓰기 실력에 대한 부정적 판단이 '더닝 크루거 효과'에 의한 일종의 겸손함의 표출이길 바란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어? 나 글 좀 쓰는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내 글쓰기 실력은 아직 저 바닥인 것이다. 무지에 의해 스스로를 오해하고 있는 지경은 아니니 다행이려나.


에노모토 히로아키의 바람대로 나는 어딘가로 이동 중에 최대한 스마트폰을 보지 않으려 한다. 하루 종일 노트북, TV, 스마트폰에 지친 눈을 쉬게 해주고 싶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니 왠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멍하게 마주하거나 오늘의 일정을 되짚어 보거나 며칠 전 친구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생각할 거리들을 떠올려 본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생각이 어딘가로 뻗어나간다. 그때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 앱을 실행시킨다. 한 두 개의 단어부터 열몇 줄의 문장까지 메모 앱에는 누군가가 보면 '헛소리'로 느껴질 글자들이 차곡차곡 채워진다. 그러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동안 지껄여놓은 헛소리들을 다시 읽어본다. 그중 가장 끌리는 꼭지 하나를 선택해 핸드폰 상에서 살을 좀 덧붙이고 노트북을 켜 브런치로 이동해 다듬기를 시작한다.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균 두 번 정도 읽어본 후 바로 '발행' 버튼을 누른다. 아니 눌러버린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언젠가 글을 쓰는 짓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날이 올까?' 노력은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잠이 들고 다음 날 출근길에서 다시 메모 앱을 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