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성 Aug 31. 2023

학폭신고, 이대로 괜찮을까

학폭 관련 기사를 보고

https://n.news.naver.com/article/052/0001929538?cds=news_edit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기사에 대해서는 의견을 말하고 싶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경솔하게 가타부타 말을 섞지는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 기사가 편파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가 미칠 파장을 어디까지 생각했을까. 이 기사는 네이버 첫 화면 상단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문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고, 그렇기에 좀 더 신중히 기사를 쓰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사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소문의 진원, 사랑방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기사에는 학폭심의위원회에서 부결된 이야기, 치료비가 천만 원이 들었는데 학폭이 아니라는 것에 억울해하는 피해학생의 아버지 인터뷰 내용,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학생이 행정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라는 내용, 사건 당시의 과격해 보이는 운동장 모습이 실려있다. 피해 학생 진단서와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아이의 진술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유도 기술로 목을 졸랐다는 진술과 함께 무릎 찰과상, 치아 흔들림, 치아색이 변함,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 기억소실이 진단서에 언급이 되어있다. 피해학생의 입장이 기사의 골자를 이룬다.


기사 말미에 가해학생의 입장이 한 문장 언급된다.

'과격했던 것 같기도 한데, 사과하고 싶다고 한다.'

역시나 기사 아래 달리는 댓글 속에서 가해학생은 예비 범죄인으로 몰리고 있었다.

기자는 가해학생 측과도 인터뷰를 진행하여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는 중립적인 보도를 하기 위해 노력해 줄 수는 없었을까.




이 기사로 한 중학생이 무서운 댓글의 몰매를 맞고 있다. 이 아이가 댓글을 보지 않기를 바라본다.


악의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이나 괴롭힘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학교폭력예방과 대책한 법률'이 제정되었을 것이다. 이 기사만 보고는 가해학생이 악의성과 지속성을 갖고 피해학생을 괴롭혔다고는 보이지가 않지만, 내가 그 상황을 본 것이 아니니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확한 진실이 전달되지 않은 기사를 통해 너무 어린 한 아이가 범죄의 싹인 양 취급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온라인 세상이다. 익명이기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무책임하게 말을 던져도 되는 곳.

내 눈에는 운동장에서 승부에 열을 올리고 이기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딱 중학생만큼의 치기와 객기를 부리는 한 남학생이 보일 뿐이다. 한 번의 사건으로 이 아이가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아이가 어리다.




내 아이가 소중하듯 다른 아이도 소중한 존재로 여겨줄 수는 없을까. '내 아이를 다치게 한 너는 빨간 줄 그어 평생 후회하게 할 거야'하는 마음들이 무섭다.

학폭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는 폭력상황이 아니라 친구들 사이의 단발적인 다툼에도 학폭에 신고하며 응징하려는 부모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주변에서 본 상황들은 대개 그러했다.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당장의 상황을 승패와 응징의 대상으로 봐야 할까. 서로의 아이를 성장시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닫힌 아파트 철문만큼이나 내 가족, 내 아이만 보호하려는 관점으로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아이에게 이해와 사과와 화해의 방법을 가르칠 수는 없을까. 아이들은 갈등의 해결 방법을 그렇게 배워갈 것이다.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들이다.


학폭과 관련된 위험한 사건들이 분명 발생하고 있고, 고의적이고 악의적이고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행동은 제발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게 되는 상황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친구 간에 한 번 다투거나 별명을 지어 놀리는 경우에도 학폭으로 신고가 되는 경우들은 좀 신중해야 할 것 같다.

훈계와 교화, 화해보다 처벌이 익숙해지는 상황이 낳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징계와 처벌에 대한 공포를 너무 이른 나이에 겪게 되면, 사람과 사회에 대한 경계와 불신이 더 커지고 사회는 더욱 개인화되어 갈 것 같다. 이해와 포용 그리고 후회와 반성을 통해 깊이 느끼고 생각해 보고 성찰해 보는 과정보다는 단죄, 처벌, 응징이라는 생각의 가장자리까지만 가보게 되지 않을까. 가해학생이 죄와 벌이라는 단어를 너무 빨리 접하고, 피해학생 또한 친구를 단죄하는 행위에 대한 자책감이 조금이라도 들 수도 있지 않을까. 현상적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양쪽 모두 피해자가 되는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교권에서 폭력이 문제가 되는 사건들이 발생하자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그로 인한 사건이 발생하자 교권 회복보호 방안을 마련한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도 2008년 제정된 이래 수차례 개정이 반복되었다. 물론 개선과 발전은 필요하지만, 어쩐지 이런 선발생 후대책 방식이 본질 없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것처럼 보인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교육과 관련된 정책들은 사후약방문 같은 뒤늦은 조치가 아니라 긴 안목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본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한 줄 요약 :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학폭법률 적용이 좀 더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학폭 #기자정신 #우려 #사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