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리사 Jun 17. 2024

2. 엄마, 나 결혼하지 말껄 그랬어

구멍가게 40년, 엄마의 일기장

도대체 엄마는 언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



엄마의 일기장이 점점 두꺼워진다.

엄마의 일기장이 점점 무거워진다.


지금 일흔의 엄마가 마흔의 엄마 자신에게 

찾아 갔던 것은 아닐까?

타임 슬랩이라도 한 것처럼 

주옥같은 글을 쏟아내고 그러니 살아 보라고,

조금 더 견뎌 보라고 그 시절 엄마를 

일기장에서 만나 위로한 것일까?

40년 구멍가게, 엄마의 일기장



엄마,

나 마흔이 다 되어서 엄마의 일기장을 

만났어..


엄마의 마흔이 너무 치열해서, 너무 가여워서

나는 그 시절 엄마가 되어 엄마를 바라 봤어..

내 마흔이 엄마의 마흔에 위로를 보내며..


엄마,

엄마처럼 내 일기장도 점점 두꺼워져 가..

내 일기장도 점점 무거워져 가..



결혼하지 말껄 그랬어.


이런 글이 내 일기를 메울 무렵

아빠는 암 투병중셨고, 엄마는 아빠 병수발에 구멍가게 장사에

마음이 쉴 곳 없던 날이었지.


지금 돌이켜 보니,


남편도 나도 아직 철들지 않은 아이를 내면에 안고 살았고

아빠의 인생 책장이 얼마 남지 않을수록

나는 표출하지 않은채 묵혀 둔 서운함과 

한 존재로 그저 보호받고 싶었던 마음을 남편에게 

터트렸더라고..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음을

알아버린..마흔..


아빠가 떠나고 긴 시간 방황하며 

나는 얼마나 내가 엄마 아빠의 삶에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는지 깨달았어.

부모에게서 분리되지 못한 슬픈 눈을 한 아이..


엄마도 그래서 그랬을까?

엄마 안에도 자라지 않은 내면 아이가 살아서

아빠와 그렇게 사는 일이 힘들었을까?



엄마의 삶을 보는 일이 참 힘들었고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썼는데


나도 그냥 참고 또 참는 사람이 되어 점점 마음이

피폐해져 갔어. 급기야는 사라지고 싶다는 목소리를

만나게 되더라..



엄마..

나 그냥

결혼하지 말껄..그랬어..



이런 말, 이제 할 수 있겠어, 이제는 말야.

나 힘든거 들킬까봐 괜찮은 척 살았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아.

나는 이런 말 해도 괜찮으니까. 내 마음 표현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아.


엄마도 그렇게 일기장에 표현했잖아.

안전한 곳에 내 마음을 꺼내 놓고,

그렇게 잠시 숨을 쉬어 봐..



그 시절 엄마처럼..



구멍가게 40년, 엄마의 일기장



작가의 이전글 라라 언니, 이길 끝엔 뭐가 나올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