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리어 클래스 Nov 13. 2024

친절하게 빛나는 엑상프로방스의 밤

<내게 맞는 일을 하고 싶어> 저자의 배낭여행

라틴어로 물 Aix, 프로방스 지역의 물이 많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는 곳곳에 분수가 있어서 도시에 활력을 제공한다. 식당 앞, 광장 앞, 분수대 근처 모두 활기차서 축제라고 느낄 정도로 일상이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이다. 이런 도시가 친절하기까지 하다니, 다 가졌군. 그들이 베푼 친절함은 기대이상이었다.

카페에 앉아 있는 소녀에게 길을 물었는데 매우 상세하게 알려주고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자기는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고 반가워한다. 고마운 그녀에게 친절을 베풀고 싶었다. 그녀와 늦은 저녁에 잠시 만나서 한국에 대한 그녀의 흥미를 더해줄까? 고민을 하며 서둘러서 호텔을 나갔는데 아쉽게도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 엑상프로방스의 일정이 끝난 시간이 무척 늦은 밤이었기에 약속을 했더라면 원하는 곳들을 가보지 못하고 소녀를 만나야 했을 거다. 막 도착한 시점이어서 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의 매력을 모르니 저녁에 약속을 잡아도 될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는 건 아뜰리에를 만나고, 멋진 맛집 레스토랑의 음식즐기면거리의 풍경을 즐기면서 약속을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친절함을 빛나도록 경험한다.

세잔의 아뜰리에를 가려고 지도를 펼쳐 들고 있으니 길을 지나가던 노신사가 묻는다. 무얼 도와줄까요? 지도를 이리저리 보던 신사는 손짓으로 한 줄로 이어진 길을 가르친다.

" 이 길이에요. "


 길을 한참 걷다가 멈춰서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다비드상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훈남이 어디를 가는지 묻고는 말한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것이 정녕 프랑스란 말인가?

단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에스코트까지 해주다니.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걸었다. 훈남의 에스코트에도 불구하고 세잔의 아틀리에를 예약하지 않아서 입장을 못 한다. 이미 예약이 차서 다음날 오전에도 들어갈 수가 없단다. 오후에 가능하다는데 오후에는 니스Nice로 떠나야 해서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선다.

고개를 떨군 내게 직원은 아뜰리에 앞, 뒤 정원은 무료이니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해 준다! 이게 다 무료라고? 제공하는 서비스가 엄청나다. 세잔의 아뜰리에 정원은 작은 정원이라기보다 반갑게도 한국의 뒷동산 같은 곳이었다.

나는 간혹 일상에 지칠 때, 다른 프레임으로 보는 '놀이'를 한다.

한국의 평범한 길을 걸으면서 '이곳을 외국인 시선으로 보면 어떻게 낯설고 신선할까?'

'이곳이 해외의 어느 나라라면? 어떤 느낌일까?'

이런 가정 하에 일상에 활기를 주는 '낯설게 보기'는 무료한 일상에 즐거움을 준다. 매일 보는 거리, 건물이 이 선글라스를 끼면 그렇게 이뻐 보인다. 그러니 나중에 한국에서 낮은 산을 올라가면 '아, 이곳은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아뜰리에 뒷동산 같은데'라고 추억에 빠져야겠다고 키득키득 거린다. 직원님 감사해요.   

정원 한쪽 공간에서 세잔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고- 무료 맞아? 이런 횡재가- 남다른 세잔의 의지에 감동한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마네와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모네를 지베르니에 방문한 직후에 감동을 받고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수련'만 보느라 '수련'앞에서 1시간 이상을 멍 때리기를 했다. 세잔이 태어나고 말년을 살았던 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에서는 세잔의 도전정신 앞에 숨을 멈춘다.

세잔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엄격한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대를 다닌다. 법대 재학 중에도 화가가 될 생각을 했고, 그를 지지해 주는 에밀 졸라를 만나 법학부를 중퇴하고 그림 공부를 하러 파리에 간다. 당대의 파리의 미술계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줄 곧 낙선을 하고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와 끊임없이 그림을 향한 열정을 키운다. 당뇨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매일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림을 그리다 죽고 싶다'라고 습관처럼 말한 것처럼 폭우가 오던 날에도 그림을 그리다 폐렴으로 삶을 등진다.

한국에서의 자료에서는 찾을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본 영상에서는 그의 병 때문에 세상을 보는 색채가 달라졌고 청색이 많이 들어간 화폭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에게도 영향을 준 강렬한 색채, 형태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 간 그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도 새로움이 가능하지 않을까? 매일 같이 하는 일, 매일의 출근길, 매일의 요리, 매일 하는 놀이도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향해 만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일에 있어서 전문적인 견지를 가지려고 지속적으로 걸어온 하루들이 있었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해왔지만 제대로 된 노력을 했던 걸까? 노력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세잔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겠지.

그럼, 내가 대충대충 어슬렁어슬렁이 아니라 간절하게 찾아야 하는 건 무얼까? 너무 간절하게 살아서 지금은 쉬어가지만 여행 후, 돌아가면 무엇을 향해 간절하게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70일 중에 14일째였던 그날, 간절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다양한 지점. 공간, 사물. 대상, 마음무엇인지 궁금했다. 간절하지 않아도 좋은데. 간절함은 조급함을 만들지도 모르겠는데 '그러해야 한다'를 만들어 내고 '그러해야 한다'는 나를 몰아세우고 나를 몰아붙이면 결국 다치고 상처 입고 깨지는 것은 자신인 것을.


 '간절함'이라는 단어로 설레게 했던 세잔의 정원, 동산 같아서 길을 잃으면 갇힐 것 만 같아서 서둘러서 나온다. 세잔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람들 사이로 비디오 한 컷, 사진들을 찍는다.

빨간 대문. 분홍빛 창틀과 마당, 테라스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들.

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의 중심마을을 향해 걸어가면서 세잔이 준 여운에 잠겼다.

엑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분수가 많았는데 르통도 분수는 실제로 보는 게 훨씬 멋있다. 거리의 모든 것이 작품이다. 창문이 저렇게 생길 수 있지? 예쁜 발코니와 길에 깔린 돌들도 잘 생겼다. 세잔이 파리에서 인정을 받아서 엑상에 돌아온 아니라 고향이 예술적이어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엑상프로방스는 원래 잠시 들려서 보고만 가려다(그랬으면 돈도 아까울 뻔했다. 기차역에서 마을까지 대중교통이 없어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기억이 맞다면 택시비로 편도 3~4만 원 정도를 내야 이동이 가능하다. 멀어서가 아니라 외딴 곳이기 때문에 택시비가 비쌌던 기억이 있다)   유레일 패스 문제로 일정이 꼬여서 하루 코스로 잡았던 건데 가족들과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어서 애타는 마음으로 돌아다닌다.  

엑상, 내 너를 몰랐구나. 계획대되지 않았지만 다 좋았다. 거리도 하늘도 예뻐서 노을이 기대되었다. 배꼽시계와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식사에 노을을 양보했지만 그럴 만큼 좋았던 식사였다.

세 번의 코스요리가 예술 작품처럼 세팅되어서 보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했다. 서빙된 물병부터 남달랐다. 예술적 감각이 담긴 물병이다. (물 먹고 남은 거 싸갔다. 음식값이 48유로, 7만 원이나 하니까.) 야외테라스에 자리한 식탁 위의 꼬마전등에 불이 켜지고 나무가 빛나기 시작한다. 아...... 탄성이 나올 정도로 불을 더 켜주니 밤하늘이 파랗게 빛났다.


이 작품을 먹어야 하다니, 먹어도 되나? 음식 색이 베이지, 보라, 핑크, 빨강 예술인데 선명한 색이 동영상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이다. 한입을 베어무니 눈이 떠지는 맛이다! 프랑스 관광청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네.(프랑스 관관청이 추천하는 식당이다)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케이크까지 나이스 nice!. 찐득한 질감이다. 아주 진한 겉과 속이 모두 초콜릿으로 꽉 채워진 우아한 작품들이 입속으로 들어온다. 배를 채웠으니 눈을 채워야지.


엑상프로방스는 밤에 빛의 도시가 된다. 골목골목에 빛이 가득하다. 마음을 울리는 연주를 하는 소녀가 황금빛 동상처럼 드넓은 광장에 앉아있다. 그녀 주위로 빛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펍에는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한참이다. 축제인가요?라고 물어보게 만들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곳. 늦은 시각인데도 곳곳에 노랗게 빛나던 가로등과 더 푸르게 보이던 밤하늘.

거리와 식당에서 받은 친절이 밤의 따스함으로 전이된 걸까? 마음이 구름에 붕 뜬 마냥 몽글몽글해서 마을의 밤거리를 영상에 담는다. 떨어진 은행잎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을 인스타에 올린다. 모두와 나누고 싶은 포근한 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