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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SeJin 코리아세진 Jan 01. 2020

2020년을 열어젖히며

2019년의 회상

“2019년,  나의 무게를 꿋꿋이 견뎌내며 무너지지만 말자. 

늘 그래왔듯이...  음악은 계속 흐르고, 나도 멈춤없이 흘러갈테지.


나는 다시 일어선다.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가야 한다. 


빨리보다 멀리, 

따로 또 같이,

머무름없이 흐르자.


하늘은 바람을 피하지 않고, 바다는 파도를 겁내지 않는다.“ 


- “2018년을 여미며” 중



 2018년 아빠를 다른 세상으로 잘 넘겨드리고 난 뒤, 가을의 찬바람과 함께 깊은 우울감이 찾아왔었다. 급성장하는 회사의 바쁜 일정 덕분에 시간이야 빠르게 흘렀지만, 마음은 갈팡질팡 오갈 곳을 모른 채 방황했다. 모든 만남과 모임을 피한 채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2019년 1월 1일, 건명원 동지들의 손 내밈에 용기를 얻어 청계산 자락에 올랐다. 떠오르는 새 해를 보며 눈앞이 흐려졌다. 치유의 그 무엇이었던 걸까? 마주 앉은 최진석 선생님은 본래의 빛을 잃은 내 눈빛을 단번에 알아차린 듯 작은 조언을 해주셨다. 


 회사는 논현에서 여의도로 전장을 옮겨 전선을 확장하고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객감동팀과 컬처팀을 함께 리딩하며 서비스 성장에 보탬이 되기 위해 발버둥쳤다. 회사일과는 별도로 두 번째 책,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와 관련된 강연이 점점 늘어났다. 

 독립책방의 대표주자인 최인아책방을 시작으로 한 해 동안 서울, 인천, 여주, 충청남북도, 광주, 부산 등지에서 일반인, 기업인, 선생님, 대학생, 중고등학생, 군인, 사관생도 등 약 2,000여명을 만났다. 한일관계, 일본/한국역사, 한국의 교육, 진로탐색, 나를 지키며 일하기 등 주제를 조금씩 달리하며 더욱 공부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덕불고 필유린(뜻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동지가 있다)’에 공감하는 구글러 SH(황성현 전 카카오부사장)와의 인연은 내가 가진 관점의 지평선을 넓혀주었다. 그리고 눈 앞에서 두 손으로 겪었던 “삶과 죽음”의 진짜 모습은 나의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들을 던지게 해주었고, 더 다양한 세상을 탐구하고픈 일종의 '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2년 정도 함께한 뱅크샐러드와의 작별을 결심하는 것은 9년 넘게 몸담았던 군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다운로드 기준 1만 명이 안 되었던 때부터 500만 명에 다다를 때까지... 말 그대로 “전우”들과 함께 해온 추억들과 태훈 형을 비롯한 훌륭한 팀원들에게 배우고 깨달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열심히 달린 결과 정복해야 할 고지가 정말 눈앞에 다가와 있었고 CEO의 믿음에도 꼭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삶의 유한함은 나에게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품어보기로 했다. 갑작스런 퇴사소식이었지만... 축하와 응원을 받으며 팀원들과 함께 달려가던 길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렇게 다시 백수가 되었다. 


 요시다 쇼인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나홀로 탐방하며 땀 흘렸던 일본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그간의 여정을 보여드리기도 하고, 책과 강연을 바탕으로 맺어진 다양한 인연들께서 불러주셔서 여기저기에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 견문을 넓혔다. “싱큘래리티(인공지능이 가져올 특이점)”를 주장한 레이 커즈와일이 만든 미래학교인 Singularity University를 졸업한 인재들과의 인연은 한국에 “Tide Envision University”라는 새로운 교육모델을 만드는 위원회에 함께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걸어왔던 모든 길들의 인연이 마구 뒤얽히며 꼭 만나보고 싶었던 선생님들, 작가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또한 청년세대의 다양한 활동, 특히 안보/통일 이슈를 다루는 곳에도 기웃거렸다. 그리고 ‘한반도 정책 컨센서스(한정컨)’가 주최한 행사에도 참가했다. 


 5월 말,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났다. ‘나’를 발견하기 위해 계획했던 여정,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섭게 내리치는 파도에서 뒤뚱거리며 서핑을 배웠다. 서핑은 정말로 재밌고 흥미로운 스포츠다... 하지만 강습 마지막 날, 서핑보드에 맞아 갈비뼈에 강렬한 통증이 시작됐고 숨 쉴 때마다 아픈 통증은 2개월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꾸따, 우붓 등에서 보낸 2주일은 매우 특별했다. 


 그간의 경험들과 자연의 조화, 영감을 바탕으로, 나는 국제대학원에 진학해 국제관계를 탐구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고려대학교에서 추가모집을 받고 있었다. 100% 영어로만 진행되는 대학원 과정... 급하게 TOEIC시험을 치르고 서류를 준비하여 면접까지 보았다.(일본어만 공부하다가 몇 년 만에 치른 시험에서 900점 넘게 받았다. 육사에서 받았던 영어교육에 정말 감사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는 여주의 세종대왕릉과 동학의 지도자 해월 최시형의 묘소를 동시에 방문하는 일정을 통해 이병한, 안상수(한글서체의 대가) 그리고 여주에 계신 선생님들을 연결시켜 드렸다. 또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정책의 교두보이자, 유라시아 대륙의 관문 그리고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짧고 치열하게 탐방하고 왔다. 


 8월에 닻을 올린 TEU 1기 과정에서 역할을 맡고, 한정컨의 3박 4일 본회의(공론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토론대회)에 참여해서는 국방, 외교, 정치, 인권 위원회의 대표위원으로 선출되어 역할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책을 위한 아이디어를 발견해 집필의 닻을 올렸다.  


늦깍이 대학원생


 9월, 고려대학교에 다니게 됐다. 육군사관학교를 다닌 이후 일반 대학교의 캠퍼스 생활은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새로웠고, 세계 곳곳에서 온 친구들과의 대화와 교류는 즐거웠다. 국제정치, 국제경영, 국제경제, 국제관계주요쟁점 4가지 수업을 수강하며 영어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모든 수업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의식 너머로 흘러가는 영어들을 붙잡아보려고 애썼다. 길목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맹수 고양이들의 솜방망이 등에 힘을 얻으며 시험, 발표, 에세이, 토론 등을 처리(?)하며 정신없는 학기를 보냈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 대치동의 한 진로컨설팅 학원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대학교 입시면접을 돕는 시간도 가졌다.(입시를 활용한 사교육시장... 정말 어마무시하다...)


 중간고사 직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베트남 다낭, 호이안에 다녀왔다. 아빠의 마지막 숨결을 거두고 정리하던 때에, 엄마와 나를 위해 약속했던 여정이었다. 첫 학기에는 한일관계, 남북관계, 인류의 산업혁명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았다. 대학원을 통해 그동안 홀로 공부해왔던 국제이슈, 각 국의 역사와 사상 등을 학제영역과 엮으며 생각이 더욱 정리되고 있다. 꾸역꾸역 마지막 시험까지 끝내자 해방감이 찾아왔다. 


 하반기에는 요시다 쇼인을 읽으신 김용태 국회의원께서 초대해주셔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처음으로 가보기도 했다. (사실 국회 정문에 들어가면서 크게 외친 말이 있다. 좋은 말은 아니었다 ㅋㅋ) 이후 보수/진보에 제한되지 않고 청년 정치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만나뵐 수 있었다. 각자의 뜻을 품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연대하는 분들을 관찰하며,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를 머릿속에 그려보게 됐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의 강연을 듣기 위해 현재 집권여당의 중앙당사를 방문했던 것도 나름 특별한 경험이었다. 


필리핀으로


 대학원 학기가 끝난 직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필리핀 보라카이로 갔다. 12월의 마지막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내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태어나서 처음,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몰아닥친 강력한 태풍으로 인해 기반시설이 무너져 전기가 끊기고 통신이 두절되었다. 빗물이 빠지지 않아 온통 물바다가 됐다. 3일 넘게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를 하며 오히려 자유를 느꼈다. 학기 말, 지방에서의 강연, 여러 모임, 학업부담 등이 엮이며 피로해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서 인지 몸이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글자도 읽지 않고 뉴스도 보지 않고 오직 순간에만 집중하니, 소화도 잘 되고 얼굴도 맑아지고 어깨도 안 아프고 몸이 더 좋아졌다. 


 태풍이 지나간 뒤 깨끗해진 날씨, 바다 위에서 낙하산을 타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산호 주변을 노니는 다양한 물고기와 말미잘 속에 숨어있는 니모도 보았다. 해변에서 사는 견공들과 곳곳에서 닝겐의 손길을 구하는 냥냥이들과도 호흡했다. 하루에 4kg의 망고(18개 정도)를 앉은 자리에서 먹기도 했고, 맛있는 망고를 잘 찾는 전문가가 되었다. 뚝뚝과 오토바이 등의 매연이 심하고 물가도 쓸데없이 비쌌지만... 보라카이는 아름답고 빛나는 곳이었다. 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강단을 재평가해 볼 수 있었다.


빨간약 먹을래, 파란약 먹을래


 12월 31일 새벽,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1년, 한국 사회는 유독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졌다. 불확실성과 갈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내 탓과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남 탓과 비난은 넘쳐난다. 이슈가 이슈를 덮고 반칙과 비리 그리고 갖은 선동에 피로감만 높아진다. 지난 정권의 과오을 탓하던 이들은 정작 지난 정권과 유사한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국제관계, 경제, 정치 등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긍정적인 소식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F-35A, 글로벌호크 등이 도입되어 공군력이 크게 높아진 것 정도가 위안이려나. 미래를 담보로 잡고 수십 수백 조원의 국가부채를 제 돈 마냥 끌어오고, 온갖 선의로 포장해 대중을 속이고 서로 다투게 만들면서 뒤로는 제 밥그릇만 챙기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볼 때면, 한국이란 국가의 생존 자체가 우려된다.


 회의감이 깊어질 때면 차라리 아예 모르는 게 약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파란 약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난 매 순간 빨간약을 먹고자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불굴의 용기를 갖고 삶을 탐구해나가려고 한다. 


2019년을 여미며,


"하늘은 바람을 피하지 않고 바다는 파도를 겁내지 않는다"

"자신의 무게를 견뎌내는 배는 어떠한 대양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


이 문구들을 되뇌며 시작했던 2019년이 끝났다. 그간의 삶에서 "역대급"으로 생각했던 2018년보다 더욱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다. 


지난 해, 매우 단순하지만 깊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아는 것(Knowing)과 이해하는 것(Understanding)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Doing)은 다르다. 


이해와 행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도전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

내 기억 속의 모든 분들도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면 좋겠다.


새로운 10년과 2020년, Attraversiamo!(우리 함께 건너가자) 


- 꿈이 아닌 현실이 될 2020년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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