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현민 Jan 18. 2024

내 소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

선택에 대한 이유는 나만 알고 있기 때문에

치과를 다니고 있다. 신경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다. 너무 아프다.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치료다. 맨 끝의 어금니이며, 내 입이 크지 않아 크게 벌리질 못한다. 의사 선생님도 나한테 말씀을 하셨다. 힘겨운 치료가 될 것이라고..ㅋㅋㅋㅋㅋ 의사도 힘들고 환자도 힘든 부분.


조금 특이한 부분이 있다. 의사 선생님이 마취를 잘 못하시는 것 같다. 마취를 위해 같은 부분을 15번 이상 찌른 적도 있고, 마치가 안 되었는데 그냥 치료를 진행한 적도 있다. 진짜 죽을 뻔했었고, 요즘도 종종 그렇다. 너무 아프다 보니, 주변에 하소연을 하게 되었다. 마치가 잘 안되어서 너무 아프다는 둥, 치료가 너무 길어진다는 둥, 과정을 설명해주시지 않고 그냥 무작정 한다는 둥. 내 하소연을 듣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은 치과를 옮기라고 한다. 실력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그렇기도 한 게, 치과도 매우 조그맣고 장비도 오래된 것들에다가 조무사님이랑 맨날 옥신각신하며 의사 선생님 연세도 많으시다. 입안에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집게를 넣으시다가 내 입술을 찌르거나, 석션(?)이 되게 딱딱한데 그걸로 내 치아를 때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요즘ㅡ요즘답다는 게 참 애매하지만서도, 이렇게 말하면 본능적으로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ㅡ답지 않다.


그런데도 내가 이 치과를 고집하는 이유. 의사 선생님의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상황을 보고 일반적인 생각 메커니즘을 따라간다면 여긴 낡고 오래되었고 친절하지도 않은 불편한 곳이지만, 난 의사 선생님의 진심을 전달받았고 그 마음을 이해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 더 깔끔하고 최신식인 치과에 젊은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면 이러한 서로 불편한 과정들을 예견하셨을 것이고, 그럴 바엔 신경치료 말고 그냥 임플란트를 바로 하는 것이 서로 편하고 나은 길이라고 제시해 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다니는 치과의 의사 선생님은 비록 연세가 많으시고 조금은 투박한 것들로 무장(?)되있으시지만, 일련의 이런 불편한 과정들을 알면서도 최대한 치아를 살리는 길로, 즉 나에게 도움 되는 길로 판단을 하셔서 이렇게 악작같이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곧 확신이 되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하소연은 하고 있지만ㅠㅠ) 계속 이 치과를 다니는 것이다. 아마 마취가 잘 안되는 이유도 내가 힘을 너무 주고 있거나, 마취가 잘 안되는 부분이거나 등등 어떠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입장을 바꿔, 예를 들어 내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한 아이가 상담을 왔다고 치자. 상담을 해본 결과 내 판단에 있어선 케어도 어려울 것 같고, 재능이 특출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다른 체육관으로 길을 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와의 상담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사연을 듣고 내가 애정 혹은 책임감을 느껴 내가 꼭 가르쳐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그를 위해 지루할 수도 있는, 그러나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 트레이닝을 진행시켜주었다고 치자. 안 받아도 될 책임감을 굳이 굳이 받아서, 그를 위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그가 말한다. “당신은 나에게 왜 이런 필요없는 트레이닝만 시키죠? 너무 지루하고 의미가 있는 줄 모르겠어요. 더 좋은 체육관으로 옮기겠습니다.”


얼마나 허탈할까. 바로 이것이다. 난 지금의 의사 선생님께 이런 허탈함을 드리고 싶지도 않고, 의사 선생님이 날 위해 뭘 자꾸 하신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없도록 시설이나 디테일한 어떠한 설명 분위기 등등은 없지만 진심은 어떻게든 통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 이 치과를 계속 다니는 중이다. (근데 진짜 너무 아프다... ㅠㅠ 마취 좀 해주세요 선생님.. 제발ㅠㅠㅠ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나의 진심이 지금과 같은 상황처럼 전달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이 되면 좋지만 그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혹은 그가 그 진심을 판단하는 과정에 있어서 비쥬얼이나 친절함 혹은 디테일한 설명 등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내가 아니었으면 과연 이 의사 선생님의 진심을 느꼈을까? 아니, 아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화내고 당장 환불 혹은 고소를 진행했을 수도..


외적인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히 중요하고 나의 진심을 전달하는 테크닉 역시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가 그의 진심을 느꼈다면 주변의 어떠한 이유로도 나는 그 소신을 지킬 것이고 굳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말하기도 입 아플 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