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생활의 시작
나는 네 학번 차이가 나는 학생회장 형의 옆에서 눈을 떴다. 그날은 학과 오티 둘째 날 아침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오티 첫날 고주망태가 되어 처음 보는 선배의 자취방에서 눈을 뜬 것이다.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선배는 전날의 내 모습을 상세하게 일러주었다.
오티는 학교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새내기새로배움터(일명 새터)’에 대한 안내가 목적이라고 얘기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역시 친목이다. 선배와 새내기들이 안면을 트고, 동기들끼리도 미리 친해지면 대학생활을 시작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첫날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이동한 뒤풀이에서 나는 엑스맨(새내기인 척하는 선배) 행세를 하고 있는 선배에게 잘못 걸려 안주가 나오기 전에 소주 한 병 정도를 먹은 상태였다. 주량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빠르게 마신 술은 머지않아 내 정신을 날려 보냈다. 우리 집에서 학교는 택시를 타면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지극히 가까운 거리였다. 선배들은 어떻게든 나를 택시에 태워 보내려 했지만 지나치게 취한 나 때문에 승차거부를 당했다. 체구가 작은 편임에도 술에 완전히 취한 사람을 옮기는 게 어찌나 힘들었던지 양 팔, 양 다리, 양 허리, 머리에 선배 일곱 명이 달라붙어 나를 옮겼다고 했다. 와중에 주소를 물어보는 선배들을 향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청량리. 퉤”
결국 저 대사는 한동안 내 별명이 되었다. 기대하던 대학생활의 시작이 흑역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황과 후회, 자책 등이 얽혀 당시에는 진지하게 입학을 취소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내 소식이 퍼졌고, 선배들이고 동기들이고 내 이름을 밝히면 “아, 네가 걔구나.”하는 반응으로 인사를 받았다. 내 대학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정과 흑역사. ‘네가 걔구나’하는 시선과 함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잘못한 게 사실이니 그런 적이 없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내 입으로 마신 술이니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은 알아서 흘러갔고, 나의 대학생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새터, 입학, 총엠티, 동기엠티, 답사, 축제, 과제와 시험까지……. 첫날의 실수를 곱씹을 정신도 없이 수많은 행사와 인간관계가 쏟아졌다. 어영부영 한 학기, 한 학기가 지나갔다. 다음 년도 오티 때는 내가 술에 취한 후배를 당시 학생회장 선배의 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침 뱉는 새내기로 시작한 나의 대학생활은 때로는 평범하게, 때로는 특별하게 지나갔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경험했고, 배웠다. 술은 지금도 좋아한다. 자퇴를 걱정하게 했던 흑역사는 지금은 웃으며 꺼낼 수 있는 술안주가 되었다.
실수로부터 배운 게 있다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나의 사건이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도전에 있어 지나치게 많이 고민하는 경향이 있다. 나만 그런가? 사람들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의 생각인 게 자명한데도 앞에 ‘개인적인’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답이 정해진 교육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틀릴까 걱정한다. 삶에 있어서도 그렇지는 않은가? 누군가가 봤을 때 분명 실수라고 볼만한 일들을 저지를까봐 우리는 고민하고, 염려하고, 겁낸다. 물론 그게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시작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데도 우리 사회는 그런 불완전을 개인의 탓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부족한 시작을 끌어주는 선배들이 있는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 시작의 실수를 웃긴 일화로 여길 수 있는 넉넉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