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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아리 Dec 12. 2020

코로나

새벽 3시. 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와 단 둘이 수술방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환자의 이마에는 마취 깊이를 보는 감시장치가, 두 눈에는 보호 스티커가, 입에는 기관 삽관 튜브와 체온계가, 오른쪽 목에는 정맥관과 폐동맥 카테터가, 양 팔에는 동맥관이, 사지에는 심전도가 붙어있다. 이미 심장 수술을 한 번 받았던 환자의 몸통 정확히 가운데에 세로줄 흉터 자국이 나 있다. 이번에도 대동맥이 박리되었지만 심장에서 폐로 나가는 판막이 엉망이고 환자의 전반적 상태가 좋지 않아 큰 수술을 견딜 수 없을 거라 판단하여 대퇴동맥으로 대동맥에 스텐트를 넣는 시술을 하기로 했다.


12시에 시작한 수술은 두 시간 만에 끝났다. 하지만 환자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없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환자는 중환자실에 갈 수 없다. 그래서 수술방에서 나가지 못하고 기다린다. 환자를 흰 포로 덮어 따뜻한 공기로 가온을 해준다. 나도 흰 옷을 입고 있다. 우주복처럼 생긴 방호복이다. 필터를 통해 공급되는 공기로 숨을 쉰다. 숨이 허락된 얼마 안 되는 공간을 통해 필터에서 나는 모터 소리가 웅웅대고 내쉬는 숨이 울려 퍼진다. 인공호흡기계 소리, 산소가 방으로 공급되는 소리가 방호복 안 스피커로 희미하게 들린다.


얼굴을 긁고 싶고 장갑을 벗고 싶지만 아직 3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손발을 괜히 꼼지락꼼지락 해본다. 피곤하지만 졸리지 않다. 그래도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약물 주입 속도와 환자의 활력징후를 확인한 다음 넓은 심장 수술방을 휘휘 돌아다닌다. 노래를 한 소절 불러본다. 인싸 댄스를 춰본다.


마취가 된 채 기계로 호흡을 하는 환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그걸 다시 멍하니 지켜본다. 갑자기 수술한 부위가 잘못되어 혈압이 떨어지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을 부르고 머리를 낮추고 마취약을 끄고 수액과 약물과 피를 때려 부으면 된다.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외과 의사가 들어와 방에 있는 CT로 환자의 상태를 바로 확인할 거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슴을 열겠지.


환자의 피를 새로 바꿔 달았다. 혈압은 일정하다. 공부를 하려고 책을 조금 읽다가 웅웅 거리는 소리에 집중이 안 되어서 그만둔다. 여전히 머리가 울리지만 졸리진 않다. 이제 겨우 30분 지났다. 핸드폰을 확인하고 싶은데 방호복을 입느라 들고 오지 못했다. 뭘 할지 고민하다가 종이에 아무거나 써본다. 집중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글이 써지긴 한다. 가끔 펜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만 참는다면 글을 쓰는 건 환자랑 둘이 있는 수술방 안에서 꽤 할 만한 일인 것 같다.


방호복으로 꽁꽁 싸맨 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없고 수술방을 나갈 수도 없는 나는 두 번 갇혀있는 셈이다. 갑자기 숨 쉬기 힘든 기분이 든다. 이 환자의 코로나 검사가 나오기는 하는 건지, 긴긴밤 동안 환자의 혈압이 괜찮을지, 그 바라보는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코로나가 끝나면 이렇게 수술 다 한 환자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밤새는 일은 없어질 거다. 하지만 환자가 오면 언제든 불려 나와 밤을 새야 한다. 평생 이렇게는 살지 못하겠다. 일단 이 환자를 수술방 밖으로 무사히 내보내고 언제까지 이 일을 버틸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 병원을 나와 실컷 잠을 자고 나면 어느새 이 시간을 잊어버리고 또 일을 하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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