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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몸글몽글 Nov 06. 2017

생활체육 인권 헌장 제시해준 성소수자 궐기대회 현장

동대문구의 체육관 대관 취소에 분노하는 2017여성 성소주자 궐기대회후기

생활체육대회는 미풍양속을 저해시킨다.



체육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다. 체육을 하면 사회적 기능이 향상된다는 모든 이론을 파괴시키는 발언이다. 이 말은 지난 9월 26일 동대문구청이 퀴어여성네트워크에게 전달한 체육관 취소 사유다. 정확한 내용은 “성소수자 체육대회는 미풍양속을 저해시킬 우려가 있어 대관을 취소한다.”      


지난 9월 19일 퀴어여성네트워크는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 대관을 위해 10월 26일 자로 동대문구체육관 대관신청을 완료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 동대문구청 직원은 대회 운영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이 위와 같이 미풍양속을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대관 취소를 강행해버렸다. 올해 상반기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준비한 행사가 이토록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무산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 역시 대회 참관 신청을 했던지라 감정이 더했다. 대회 진행비 모금마련 안내 사이트에 기재된 대회 취지를 읽고 감명을 받아 바로 참관신청을 했던 것이다.     


“스포츠는 단지 재미나 건강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팀스포츠는 타인과 교류하는 즐거움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속한 집단에 자긍심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이렇게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긍정적인 경험에서, 여성과 성소수자가 배제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성과 성소수자가 함께하는 스포츠는 평가절하 당하기보다 장려되어야 합니다. (중략) 10월 21일에 열릴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젠더표현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하고 즐기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운동선수에게 매몰된 국내 스포츠인권의 지평을 여는 주문처럼 느껴지는 글이다. 기실 최근에도 학생선수 (성)폭력사건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벌어진다. 학교 운동부는 인권사각지대보다 우범지대다. 체육시민연대도 이를 개선하자는 일념으로 2000년 출범을 했고 규탄대회, 시위, 정책입안 활동을 전개했다. 폭력 근절을 기본으로 점진적 합숙소 폐지, 학습권 보장을 법제화하는 성과를 맞기도 했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당사자들의 불만과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학습권 보장 제도를 비판할 때 ‘인권침해’가 주요 논리로 쓰인다. 당국에서 기준한 성적 미달 시 대회출전을 금지시키는 일이야 말로 차별이고 개인의 권리박탈이라 주장한다. 인권침해 최소화를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인권침해’를 유발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학생선수 폭력에 관해선 서로 쉬쉬하며 몸을 사린다. 진학, 진로를 위해서라면 폭력은 감수해야할 필요악으로 여기는 현실에서 스포츠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체험의 장이 된다는 성소수자 생활체육대회 취지 문구는 내게 설렘을 안겼다.      


그간 도전, 한계극복, 집단자긍심은 정의와 자본이 스포츠로 표와 돈을 벌기위해 애용했던 수사였다. 또는 특정부류가 가치수혜를 독점했다.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에서 수사와 특정 전유물로 전락한 스포츠의 가치가 회복하고 거듭날 순간을 목격한다는 기대감에 한껏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주최측에서 보낸 대관취소 사태 문자에 기대감이 펑! 터졌다. 주최측은 발빠르게 10월 18일 동대문구청 앞에서 대관 취소에 분노하는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를 준비했다.      



궐기대회당일 나는 주최측의 요청으로 연대발언 기회를 가졌다. 대회 시작 전 지난 8월 ‘메가스포츠와 인권’ 주제로 열렸던 토론회에서 인연이 된 행동하는성소수자연대 활동가를 만났는데 그가 내게 대회 운영진과 인사를 시켜준 덕에 얻은 기회였다. 나는 발언대에 나가 연대 성원과 앞으로 체육계 각성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표명했다.     


궐기대회는 매우 세련된 구성과 진행을 선보였다. 비록 차별과 모욕에 분노하여 결집한 자리였지만 유괘한 분위기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대회 드레스코드부터 운동복이었다. 일련의 사태를 정리 요약한 오프닝 영상물을 시작으로 참가자 발언 후 혐오와 차별 문구가 박힌 송판 격파 퍼포먼스(실패 시 추가 3분간 발언 벌칙적용)를 실시했다. 나도 분노의 주먹으로 ‘차별’ 송판을 아작 냈다. 뒤이어 ‘비혼여성코러스 아는 언니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해학으로 똘똘 뭉친 노랫말에 청중은 웃음으로 터트렸다. 대회 전 사전 공모전을 했던 ‘동대문구 사행시 짓기’ 발표회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이어서 내게 굉장한 울림을 안겨준 선언문 낭독. 그리고 화룡정점이었던 참가자 전원에게 나누어준 ‘성소수자에게 체육관문을 열어라’와 생활체육진흥법 제3조 2항 ‘모든 국민은 생활체육에 관하여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가 적힌 손피켓을 동대문구 청사 여기저기에 붙이는 퍼포먼스까지.                

 

여기서 선언문은 꼭 소개해야겠다. 사실 이 선언문을 읽고 주눅이 들어 후기 작성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 너무도 샘나는 문장과 내가 그리던 스포츠의 청사진을 수놓은 글이다. 제목이 성소수자 궐기선언이지만 생활체육 인권 관련으로는 어떤 글보다 폭넓고 정확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내년 4월로 연기된 성소수자 체육대회에 체육시민단체가 연대하여 궐기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처럼 “어떠한 인권침해와 차별이 없는,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고 즐기는 스포츠”가 되도록 활동을 전개하겠다. 그럼 아래에 선언문 중 첫 번째와 네 번째 선언을 옮겨본다(전문은 아래 출처 하이퍼링크에서 확인가능).     



[동대문구의 체육관 대관취소에 분노하는 여성성소수자 궐기 선언문.2017.10.16.]     

“하나, 스포츠는 인권이다. 스포츠는 단순한 재미, 건강증진을 넘어 신체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이자 자아표현이다. 스포츠에의 참여는 개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타인과 교류하는 즐거움을 안겨 주며 사회적 관계들을 풍요롭게 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희망과 수준에 따라 적합한 스포츠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하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스포츠에의 자유롭고 평등한 참여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권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개인의 희망과 특성에 따라 다양한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그 동안 스포츠에서 배제되어 왔던 사람들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와 지자체는 스포츠를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도록 적합한 시설을 제공하고 제도를 마련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바라고 추구해야 하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는 어떠한 인권침해와 차별이 없는,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고 즐기는 스포츠여야 함을 선언한다.”     
                                     
                        -출처 : 언니네 네트워크 홈페이지 http://www.unninetwork.net/?p=3919          



글쓴이 : 이경렬

대학에서 생활체육과를 전공. 호텔 트레이너, 체육교사를 꿈꿨으나 어쩌다 2014년부터 체육시민단체에서 활동 중. 주요 관심사는 스포츠인권과 스포츠문화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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