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재택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국어학원 알바인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을 읽고,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책을 읽고 실제로 내가 낸 문제를 푼다고 하니, 맨날 시험문제만 푸는 것에 익숙해지다가 갑자기 시험을 출제하는 입장이 되니까 기분이 새로웠다. 사실, 문제를 내는 일이 어렵지 않고, 재밌는 일이라 생각을 했다. 매력적인 오답이 있는 변별력 있는 문제를 내고 그 문제를 사람들이 틀리는 것을 보게 된다면, ‘문제를 잘 냈다’는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다소 변태 같은(?) 심리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문제를 내다보니, 이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은근히 배울 점도 많았다. 초등학생 도서라고 해서 가볍게만 봤는데, 문제를 내다보니까 책의 내용에 대한 통찰도 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특히, 주제 선정과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기법들을 보니,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만한 점이 있었다.
필자가 읽은 책들은 우리나라의 전래동화가 아닌 주로 외국의 동화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 자체로는 새로운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는 장치들이 있다. 이러한 핵심 요소들을 외국 동화의 이야기 전개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을 해보겠다.
첫 번째 요소 : 한 번 이상의 반전이 이야기에 들어간다.
중국 동화인 <빈 화분>에서는 꽃을 좋아하는 왕이 자신의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씨앗을 나눠주고 일 년 동안 예쁘게 가꿔오라는 과제를 부여한다. 주인공인 ‘핑’도 여기에 참가했는데, 그에게는 심는 풀과 나무를 모두 꽃과 열매를 맺게 할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핑은 임금님이 주신 꽃씨를 정성스럽게 키워보려고 해도 결국 싹이 트지 않아 빈 화분을 들고 임금님께로 가야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다른 아이들은 휘황찬란하게 꽃들을 많이 피워서 갔는데, 본인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해서 속상해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왕은 애초에 아이들에게 피울 수 없는 익힌 꽃씨를 준 것이었다. 결국 빈 화분을 가져온 정직함과 용기를 칭찬하며 핑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전개를 뒤집는 요소가 이야기에 나타나면 독자들의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반전은 이야기의 개연성이라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반전이 있는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기 위해서 우선 주인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 구성원 중 한 명을 선택한다. 주인공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 갈등을 구성하는 인물, 혹은 주인공 중에서 모두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인물에 원래 부여를 했던 이미지와 다른 특성을 묘사하거나, 다른 의도(계획)를 가지게 하는 것을 나중에 드러냄으로써 중심사건에 대한 전개방향을 틀수 있다.
두 번째 요소 :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주인공의 고난이 있다.
프랑스 원작동화인 <겁쟁이 승리하다>에서는 영주인 아버지를 이어 기사의 직업을 물려받아야 하지만, 겁이 많아 전쟁과 관련된 훈련을 하기 싫어하는 아들 바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 날, 동맹국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바질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포함해서 나라 안의 모든 건장한 남자들을 병력으로 차출한다. 전쟁에 나가는 것이 죽도록 싫었던 바질은 사촌들의 도움을 통해서 전쟁을 가까스로 나가지 않게 된다. 그런데 모든 병력이 빠져나간 뒤, 나라에 다른 부대가 침입하게 된다. 검술훈련을 좋아하는 사촌누나가 기사로 변장을 하고 나가려는 모습을 보고, 바질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바질은 사촌 누나 대신 싸우러 나가려고 마음을 먹는다. (후략)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주인공 앞에는 항상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 앞에 있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는 것도 이야기를 읽는 묘미가 된다. 고난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위의 동화에서 나온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괴리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 이미 우리가 평소에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마인드맵을 통해 관련된 것들을 상상해본 후, 그것을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 이야기화(化) 할 수 있다.
“마지막 요소 : 가치판단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는 과정이 있다.”
네덜란드의 유명 동화 중 하나인 <개구리 선생님의 비밀>에서는 학생들과 개구리로 변신하는 담임 선생님 프란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담임선생님인 프란스는 자신의 반 학생들에게 자신의 비밀(자신이 개구리 생각을 할 때마다 개구리로 변신하며, 변신이 풀리기 위해서는 파리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내용)을 알려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은 선생님을 반신반의 하던 학생들이 실제로 개구리가 되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된다. 그 후로, 다른 사람들에게 프란스 선생님을 지키기 위하여 선생님이 개구리로 변신한 모습이 탄로날 위기에 처할 때 마다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 중에서 지타라는 학생은 그동안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지만,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자주하게 된다. (후략)
이 과정에서 지타라는 학생이 거짓말을 자꾸 하게 되면서 스스로 내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향방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치판단 과정과 그로 인한 결과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핵심요소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지타의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선의의 거짓말’이 좋은 일인지는 비판적인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일이다. 이렇듯,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주제를 이야기에 스며들게 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풍부한 통찰을 하게끔 만들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평소에 가치판단이 필요한 문제들 중에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 문제가 이야기에 스며들 수 있도록 작성해보는 것이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읽는 입장에서도 더 좋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