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진 스펙은 쎄! 정규화 가능성은 글쎄...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각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에게 그동안 준비해왔던 프로그램을 2~3회의 파일럿 형식을 통해 공개한다. 그렇지만 이번 설에는 여느 명절 때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파일럿 프로그램의 수가 많지도 않았고 시청자들의 눈에 띄기도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 SBS에서 <로맨스 패키지>라는 신규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방송 이후 관련 검색어가 실시간 순위에 오르는 등 화제성 측면에서 꽤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림픽의 여파를 감안하더라도 이번에 공개된 파일럿 프로그램 중에선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었다.
<로맨스 패키지>는 호텔에서 3박 4일간 일련의 활동을 통해 10명의 일반인 남녀가 자신의 연애 상대를 찾는 프로그램이다. 추억의 ‘방팅’ 느낌을 살려 출연자들은 각 방에 배정되어 생활하고, 상대방이 자신의 방에 오기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며 상대에 대한 탐색을 시작한다. 이제는 연인사이가 된 전현무, 한혜진씨가 MC 겸 로맨스 가이드로 출연한다. 각 방의 출연자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시청자들의 반응을 대리로 보여주기도 하고, 출연자들에게 지령을 내리거나 도움을 주기도 한다.
호텔이라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3박 4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제공하는 것은 관심 있는 남녀로 하여금 더 연애의 감정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은 분위기에 따라 타인을 보는데 영향을 많이 받고, 시간적 제약이 있으면 결정을 서둘러야하기 때문에 행동이 감정을 통해 묻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펙과 외모가 출중한 출연자들의 입장에서는 솔로를 탈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그런데 제작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프로그램이 정규화 되어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프로그램의 화제성 못지않게 차별성 또한 중요해진 시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차별화된 부분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 싹트는 장소가 호텔이라는 것 이외에는 종전의 연애매칭 프로그램이랑 흡사한 점이 많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이 포맷의 참신함을 느끼거나, 출연한 남녀의 깊이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쉽진 않다. 대신 그 공백을 출연자의 외모나 스펙의 화려함으로 메우려고 한다.
누구나 선망할만한 사람들이 출연함으로써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높이는데 기여를 할 수는 있지만,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보고 진정한 공감과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연애매칭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마다 크고 작은 논란은 있었지만, 성공했던 프로그램은 차별화 된 부분이 명확했다. 연애매칭프로그램의 새 시대를 열었던 SBS의 <짝>은 흔히들 예능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교양프로그램으로서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을 찾는 모습을 진행자 없이 외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다. 채널A <하트시그널>은 예능프로그램이지만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연출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거기에 러브라인에 대한 추리를 대행해주는 요소를 부가하여, 복합장르로써의 성공을 이룩했다.
<로맨스 패키지>도 처음에는 외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맨스 가이드들이 출연자들에게 규칙을 알려주고, 출연자들끼리 만날 때는 다른 방에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봄으로써 관찰자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개입하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 차량 데이트 전에 출연자들의 차를 선택하는 장면, 남녀 1등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씨름을 하는 장면에서 로맨스 가이드들이 출연해 진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서 정작 이들의 본 역할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만들었다.
예전과 최근의 연애매칭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차별화가 되는 부분은 ‘외부인의 개입 여부’다. 프로그램의 진행을 위해서는 연출이 필요하지만. 연애라는 감정을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로 느끼려면 자연스럽게 몰입을 해야 하고 추측을 유발하게 해야 한다. <로맨스 패키지>가 연애매칭 프로그램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러한 기본 공식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로맨스 가이드’는 진행자의 역할을 하면서, 출연자들을 관찰하며 시청자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역할도 하는데, 이는 역할이 모호해질뿐더러, 러브라인의 자연스러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짝>처럼 진행자가 아예 드러나지 않도록 하던지, <하트시그널>처럼 관찰자로 빠지던지 해야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단순히 젊은 남녀들을 모아놓고 ‘다대다 소개팅’의 틀로 진행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사랑’과 ‘실험’이라는 요소를 결합해 보는 것이다. ‘서로 공통분모가 거의 없는 청춘들과 공통분야가 많은 청춘들을 따로 모아 두고 이 중 어느 그룹에서 러브라인이 더 많이 형성될까?’ ‘연애경험이 전무한 남녀들을 모아 1주일 동안 지내면 러브라인이 형성될까?’ ‘팀 프로젝트를 위해 결성된 그룹에서 커플이 생길까?’ 등의 주제를 통해 프로그램을 제작해 선보이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새로움을 주는 방법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같은 분야에서 성공한 전례가 있으면, 후속 프로그램들은 ‘제 2의 OOO’와 같은 꼬리표가 붙고, 비교당하기 마련이다. 공통된 주제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차별화를 위해 다양한 요소를 넣어보려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존 프로그램을 철저히 분석하고 제작자만의 새로운 기획력을 덧붙여야 경쟁력있고 차별회된 프로그램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SBS도 <연애도시>, <로맨스 패키지> 등 짝 이후의 연예매칭 프로그램이 파일럿으로 등장했다. 시행착오를 충분히 거쳐서 흘러 지나가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프로그램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