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ARON Mar 30. 2018

나는 그들에게 존댓말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이사를 했다.

대부분의 20-30대의 경우, 이사를 했다는 것은 단순한 거주지의 변경 이외에 집 주인 또한 같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 당일, 인터넷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물주와 첫 통화를 하게 되었고, 대화는 대충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나: "안녕하세요. 오늘 00건물 000호에 이사온 세입자인데요, 지금 인터넷 연결이 잘 안되서요."

건물주: "네 안녕하세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나: "000입니다."

건물주: "아 그렇군요. 000 선생님, 제가 인터넷 기사 전화번호를 알려드릴테니..."


잠깐, 뭔가 이상했다. 선생님?


그 뒤로도 며칠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차례 전화를 했으나, 그 분은 나에게 반말은 커녕 나를 꼬박꼬박 "000 선생님"으로 불렀다.

처음엔 다소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선 건물주의 나이는 나보다 51살이나 많았다. (계약서에 적힌 주민등록번호로 알 수 있었다)

아니, 여든이 넘으신 분이 이제 갓 서른에 접어든 나에게 선생님이라니?

게다가 나는 그 사람이 소유한 건물의 세입자인데, 우리나라에서 토지나 건물의 임차인은 수많은 을(乙) 중에서도 가장 을다운 을 아니던가.


생각이 복잡해졌다.

항상 나이로 인한 복잡한 위계질서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않았는가.

내가 여든이 넘었을 때, 나보다 50살 어린 사람에게, 나는 '선생'이라 부르며 존대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이 꼭 평온할 필요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