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동안 나에게 일어난 열 가지 일에 관해 쓰겠다고 다짐한 후 두 번째 사건까지 쓴 뒤로, 아무것도 쓰지 못한 상태로 2주가 흘렀다. 사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게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어떤 일을 잘 해내더라도 나만 알면 소용없는 거니까, 올 한 해 내가 잘 해낸 일들을 정리해서 소문을 내자!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올해로 일하던 회사에서의 업무를 마무리하게 됐기 때문이다. 마무리하게 '됐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퇴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 자체를 종료해야 하는 상황이라서다. 회사, 내가 하던 일, 함께 일한 동료, 커뮤니티 서비스를 이용하는 멤버들. 이 모든 것과 천천히 헤어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우울하거나 불안하지 않게 2020년을 보내기 위해 올해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또 이 회사에서 약 2년간 일한 것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지 글을 쓰면서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나 일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매일 화가 났다가, 서운했다가, 아쉬웠다가, 슬펐다가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일관성이라고는 도무지 없었다. 매일 나의 넋두리와 분노와 다짐을 카톡으로 받아주던 친구는 정말이지 피곤했을 것이다. 어떤 날에는 어떻게든 계속 이어갈 방법을 찾고 싶다가도 어떤 날에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남은 일들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내자 싶다가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하고 문득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너무 많은 일을 병행하는 바람에 언제나 지쳐있었고, 그래서 가끔 아주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나 올해까지만 일하고 회사 그만두려고"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왔던 터라 가족은 "어차피 그만두려고 했잖아. 근데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힘들어해?"라고 내게 물었다. 그러게. 왜 그랬지. 어차피 그만둘 회사인데. 영원히 다니려고 한 것도 아닌데. 한 주 한 주 버티는 기분으로 일을 한 적도 있는데. 아니 그래도, 동료들과 손발이 착착 맞는 기분을 느끼며 일할 때, 슬랙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을 때, 기획한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 커뮤니티 멤버들과 작은 모임을 하며 온갖 대화를 나눌 때, 그런 순간에는 '역시 조금 더 해보는 게 좋겠지?' 생각하게 됐다.
무언가와 헤어진다는 건 늘 슬픈 일이다. 쉽지 않다. 결정을 내리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마무리를 잘하는 것도 말이다. 쉽지 않아서 시야도 마음도 점점 좁아진다. 좁아지다 못해 나밖에 안 보인다. 일하며 기쁘고 뭉클했던 순간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돼서 제일 안타까운 사람은 나고 내가 제일 손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끝나면 이다음에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지? 코로나 19 시국인데, 과연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첫 번째 직장을 잃게 된 20대 동료의 마음도, 여기서 더 하고 싶은 일이 남았는데 갑자기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동료의 마음도, 회사에 합류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료의 마음도, 대표로서 이 회사를 만들고 끌어온 동료의 마음도, 각자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이 커뮤니티를 함께 꾸려온 멤버들의 마음도 모두 몰랐다.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연민 같은 것이 없다는 게 나도 다른 사람도 인정하는 나의 장점 중 하나였는데, 그 장점이 무색할 정도로 얼마간 나는 자기 연민의 화신이었다.
오늘 아침, 찾고 싶은 내용이 있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다시, 올리브>를 다시 펼쳤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노인이 된 올리브 키터리지는 이런 문장을 타자한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 올리브가 주인공인 <올리브 키터리지>와 <다시, 올리브>는 전부 사람과 삶과 죽음과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스쳐 지나가고 싸우고 사랑하고 어떤 식으로든 관계 맺으며 자신을 알아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알아가기도 한다.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단서는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동료들과 후쿠오카 여행에서 태풍을 만나 비를 쫄딱 맞고 배가 찢어지게 웃으며 숙소로 돌아갔던 날에. 강릉의 한 호텔에서 각자의 노트북을 허벅지 위에 얹고 1년 동안 목격한 서로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밤에. 피곤해서 잔뜩 예민해진 상태로 동료와 싸우다시피 회의를 마치고 몇 시간 뒤 문자로 사과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저녁에. 손이 많이 가는 행사가 코앞인데 회피하며 하루 종일 성수동에서 동료들과 놀다 벼락치기로 준비하느라 슬랙이 시끄러웠던 새벽에. 줌 가상 배경화면을 비건 케이크 사진으로 설정해두고 대전에서 일하는 동료의 생일 파티를 온라인으로 했던 어느 날에. 거기 내가, 동료들이, 일이, 회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들이 있었다.
회사의 서비스 종료 소식이 공식적으로 나가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개인적으로 긴 글을 남겼다. 주로 여기서 일하며 나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됐는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쓸 때는 이런저런 걸 다 안다고, 나의 의지로 일을 끝내는 건 아니지만 이 사건의 의미를 내가 새롭게 만들어낼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글을 쓴 지 며칠이 지난 지금은 다 모르겠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고, 이것만 알겠다. 나와 동료들이 일의 안과 밖에서 함께 만든 시간은 남는다는 것 말이다. 올리브의 말처럼, "그건 사라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