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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효진 Dec 31. 2020

2020년 결산 (5) 시스터후드 2주년을 맞았다

최근 몇 사람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나와 동료 윤이나 작가가 헤이메이트라는 팀으로 만들고 있는 팟캐스트 [시스터후드]​가 나의 코어인 것 같다고, 덕분에 중심이 단단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그런가요?” 되묻고 생각해보니 만들어온 시간이 짧지 않았다. [시스터후드]는 지난 10월에 2주년과 100회를 동시에 맞이했다. 일부러 두 기념일을 맞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2년, 그리고 100회 동안 우리는 (길지 않았던 휴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주 여성 작가/감독/배우 중심의 영화와 드라마, 예능, OTT 오리지널 시리즈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올해부터는 여성 작가가 쓴 책 이야기도 많이 했다. 이건 재미있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우리가 잘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나는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마다 매번 어려움을 느꼈다. 작품에 대해 점점 더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느낌, 어떤 표현이 더 적확할지 말을 고르고 또 고르느라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는 느낌이 든다는 건 좋은 신호 같았다. 단언하는 데서 오는 속 시원함 같은 것과 내가 차츰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주어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이슬아 작가의 다짐을 읽다가,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나의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글쓰기만 생각했지, 나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글쓰기, 세상을 향하는 글쓰기에 관해 오래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나인 것을 잊지 않으면서도 주어를 늘려가며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내가 나인 것을 잊어야 할까? 그건 가능한 일일까?) 대신 나에게는 [시스터후드]가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있을 것이다. [시스터후드]를 통해 작품과 여성 창작자와 나의 가장 가까운 동료를 만나고 또 이야기하며, 아주 잠시나마 다른 이의 눈으로 내가 그간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시대에도 콘텐츠가 왜 중요한지, 좋은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것이 어째서 꼭 필요한지 나는 이제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만들고 있는 셀럽맷님의 제안으로 [시스터후드]를 시작한 2018년 가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귀찮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이렇게 돈이 안 되는데! 돈이 안 되는 데 비해서 이렇게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드는데! 돈이 안돼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나는 [시스터후드]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왜 돈 안 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한 작품을 두고 동료와 무엇이 좋고 아쉬운지 녹음에 들어가기 전부터 카톡으로 수백 마디를 떠들 때, 게스트의 이야기를 숨죽이고 들을 때, 공지사항을 읽다가 문득 웃긴 일이 떠올라 자꾸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몇 번이나 녹음을 끊어야 할 때, 작품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나처럼 눈물을 참고 있는 동료의 얼굴을 볼 때, [시스터후드]를 듣고 콘텐츠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말해주는 피드백을 받을 때.... 이 돈 안 되는 우리의 ‘일’이 무척 복잡하게 좋은 방식으로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나와 동료 모두 큰 변화를 겪을지도 모르는 2021년을 맞아, 우리는 1월 한 달간 조금 긴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무엇보다 둘 다 너무 오랫동안 쉬지 못했으니까. 그동안은 작품 선정의 고통과도 멀어질 것이고, 대본 작성과 녹음과 오디오 편집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진심으로 속 시원하다. 그런데 왜 벌써 심심하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기다리던 작품의 개봉과 우리의 컴백 시기가 어긋날까 봐 초조한 건, 또 왜일까? 윤이나 작가도 나와 비슷한 마음일 거라 지레짐작하며 한 달이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려본다. 내년에는 새 마음 새 뜻으로, ‘맞아요’라는 힘없는 추임새도 좀 덜 넣어야지. 아니, 이왕 넣을 거라면 힘 있게 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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