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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란,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아가는 시간

<머티리얼리스트>와 <엠아이오케이>로 바라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

by 마케터 S


다코타 존슨을 통해 바라본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들

다코타 존슨의 <머티리얼리스트>와 <엠 아이 오케이?> 두 영화는 모두 30대 여성을 화자로 이끌어간다. 중매쟁이로서 자신의 사랑을 알아가는 <머티리얼리스트>의 루시, 그리고 '이제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아가는 <엠 아이 오케이?>의 루시. 30대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늦었다고 생각될지 몰라도, 지금 30대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는 큰 위로를 주는 영화들이었다. 나 역시 아직도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진짜 뭘 하고 싶은지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되는대로 살아가는 데 벅찬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30대의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스포 있음


진짜 욕망의 내면을 따라서, <머티리얼리스트>

<패스트 라이브스> 감독 셀린 송이 만든 <머티리얼리스트>는 '유물론자'라는 제목답게 다코타 존슨(루시 역)이 결혼중매자(matchmaker)로 등장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가연'이나 '듀오' 같은 결혼정보회사에 다니는 30대 여성인 셈. 그녀는 직업 의식이 투철했고, 그녀의 고객들을 정말 잘 케어했다. 고객들이 원하는 이상형 리스트를 빼곡히 적고, 잊지 않고, 길 가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명함을 주며 중매쟁이로서의 역할을 누구보다 충실히 했다. 그렇게 그녀가 매칭한 커플이 9쌍이나 되어 회사에서 성대한 파티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다 자신이 맺어준 고객이 결혼식 당일, 결혼하기 싫다며 엉엉 울며 자신을 찾았다. 신부는 '자신이 현대 여성이기 때문에 결혼하기 싫다'는 말을 한다. 두 왕국이 동맹을 맺기 위함도 아니고, 소를 교환하기 위해서도 아니라면서. 루시는 "결혼은 원래 비즈니스"라면서 "진짜 머뭇거리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신부는 "언니 남편보다 직장도 좋고, 키도 커서 내가 이겼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대답한다. 루시는 "결국 가치의 문제였다"며, "남자가 내 가치를 높여준다고 생각한 거죠?"라며 묻는다. 신부는 끄덕이며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남자와 결혼하는 게 옳은 일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결혼한다.


이 대목에서 이 영화의 제목 '머티리얼리스트'의 표면적인 의미는 결혼을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끼며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남자를 찾는 여성이라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높이는 게 아니라 남자로서 높일 수 있다는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게 아닐까? 물론 성별을 바꿔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이유 때문에 배우자를 결정사 통해서 찾겠지. 더 어리거나, 더 예쁘거나, 더 능력이 있거나.


다코타 존슨은 <머티리얼리스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라는 게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면이면서 동시에 가장 추한 면일 수도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가장 두렵고도 아름다운 일이에요. 영화 제목도 그래요. 사람들이 물질적인 욕망 때문에 자신의 진짜 마음이나 영혼의 요구를 외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게 저에겐 슬프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에겐 또 좋은 일일 수도 있겠죠. 제가 누군데 그걸 판단하겠어요?"(1) 이 말이 <머티리얼리스트>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느껴졌다. 자신이 매칭하는 고객들의 욕망을 손가락질하지도 않고 이해하는 루시. 그리고 자신도 그러한 사람인지 아닌지, 깨달아가는 과정.


그러나 루시만큼은 자신의 가치를 남자를 통해 찾으려 하지 않는 인물로 비춰진다. 신부의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친형이 계속해서 들이대는데, 루시는 계속해서 거절한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집안도 좋고, 아파트도 끝내주게 좋은 곳에 사는데 자꾸만 "당신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남자는 어울리는 게 뭐냐면서 루시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둘은 사귀게 되지만 깊은 내면을 비추는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새벽에 남자의 다리에 있는 흉터를 발견한 루시는 그 흉터를 살짝 만지는데, 남자는 화들짝 놀라 깨며 그 흉터의 진실을 고백한다. 키 커지는 수술을 해서 키를 인공적으로 키운 것. 결혼정보회사에서 남자의 키가 얼마나 중요한지 초반부에 이야기했었던 장면과 오버랩되며, 남자가 자신의 치부를 고백하자 루시는 그제야 개운한 표정으로 "이래서 우리는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다"는 식의 말을 하며 관계를 끝맺는다. 남자는 "왜 우리는 정말 잘 어울린다", "결혼은 애초에 비즈니스 아니냐"는 말을 하지만 루시는 "결혼은 비즈니스가 맞다, 그렇지만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대답을 한다.


그러니까 루시는 조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해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남자가 몇 센치 키웠는지 직접 보여줄 때 루시는 그 사람을 이제서야 사람 대 사람으로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대화를 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물질적인 것만을 봤기 때문에 사랑의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듯이. 결국 루시는 이러한 대화로 인해 이미 사랑하는 사람은 전남친이었다는 생각에 크리스 에반스를 만나러 간다. 크리스 에반스는 돈을 못 버는 연극 배우지만 루시를 평생 사랑한다는 마음은 변함 없을 거라며 평생 사랑할 수 있으니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한다. 루시는 받아들이고, 일도, 사랑도 성공적으로 갖는 여성이 된다. 결국 루시에게 중요했던 건 물질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이었던 거다.


그래서 결정사를 통해 결혼하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일 수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물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틀렸다, 옳다의 문제가 아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Value)가 무엇인지 아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이라 느껴진다면, 그리고 그 가치가 인생에 정말 중요한 거라면, 우리는 기꺼이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혼은 사랑이 전제된 비즈니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과 같이.




여전히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기, 30대라는 시간 <엠아이오케이?>

<엠아이오케이?>는 마사지 샵에서 일하는 다코타 존슨(루시 역)와 회사원인 소노야 미즈노(제인 역)의 우정 이야기다. 제인은 루시가 뭘 먹을지 대신 주문해줄 정도로,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사이다. 그러나 루시가 썸 타는 남자가 있음에도 사귀지 않고 관계 발전을 하지 않자 제인이 왜 안하냐면서 닥달을 하자 루시가 "사실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고백한다.


그렇게 30년 동안 성 정체성을 모르다가 알아버린 루시를 위해 제인도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때로는 폭력으로 다가올 때도 있어 둘 사이는 멀어졌다가 결국 제인이 런던 지사에 가게 될 때 루시가 손 내밀고 같이 런던에 가게 된다. 둘도 없는 친구 사이는 서로의 진정성 있는 노력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다시금 붙일 수 있는 것처럼.


다코타 존슨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엠아이오케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30대에 접어든 사람들이 여전히 스스로를 알아가고, 여전히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우리는 보통 그런 이야기를 고등학생이나 20대 초반 인물들에게서 보곤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나이에 어떻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어?'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제야 비로소 제 자신에 대해 단단해지는 느낌을 조금씩 받기 시작하는데, 저는 지금 32살이거든요."(2)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30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위로를 줬다. 하다못해 오늘 뭐 먹을지 정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먹고 싶고, 누구와 인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지를 30대의 1-2년 안이라는, 그 짧은 시간에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결혼을 안하면, 왜 결혼을 안하지 진심으로 걱정되고, 누가 취업을 안하면 저러다 어떻게 살려고 저러지 진심으로 조언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쁘다는 건 아닌데 서로를 향한 걱정이 가끔은 불화로 변질될 때도 있고, 누구나 "이 시기에는 이걸 해야 한다"는 '으레 그렇다'는 식의 발언이 누군가의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 역시도 주위 친구들에게 늘 소개팅을 주선해주려고 했던 이유를 돌이켜 보면 친구가 외롭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결혼했을 때 친구가 마음이 더 급해져 정말 '아무나'와 결혼할까 두려워지기도 했고. 이유야 어찌 됐든 그 친구를 위한 나의 바람이었겠지만, 그 친구의 입장에서는 폭력적이지 않았을까?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반성적인 영화였다. 가족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결국 30대라는 시간을 공유하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을 더더욱 열정적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물론 누구를 만나도 끊임없이 계산하는 물질주의자이지만, 나는 어떤 사랑을 선제적으로 둘 것인지, 그리고 나에게 우정이란, 사랑이란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두 영화로 다코타 존슨이라는 배우의 팬이 되었다. 배우는 배우가 고르는 영화를 보면 가치관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어느샌가 들기 시작했는데, 다코타 존슨이 고른 이 두 영화를 통해 그녀가 30대 여성으로서 좋은 목소리를 던지는 배우라는 게 느껴졌다. 특히 이 글에 인용한 인터뷰 내용도 그렇고,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영화를 참여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 보여 매우 멋진 목소리를 내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그녀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그녀가 루시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응원의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 더더욱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 30대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두 영화를 꼭 보시길.


"Materialists가 사람들에게, 특히 사랑에 대해 작은 희망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 진짜 욕망은 무엇이지? 내 진실은 무엇이지? 나는 누구지?’라고 묻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스스로를 마주하지 않는 게 훨씬 편할 때도 있으니까요. 스스로를 풀어내는 과정은 불편하고 때로는 꽤 보기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영화나 예술이 사람들에게 조용히 질문 하나, 생각 하나를 속삭여 줄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생각해요.(3)"





(1) Loving someone is the most scary and beautiful thing you can do. Even the title of our movie – that people can basically get to a place where they deny their true soul’s needs or their true heart’s needs because of what they think they want or need in a materialistic way, which is sad to me. But also, for some people, really great. Who the f*ck am I to judge?


(2) “I really liked the idea of people in their 30s still figuring things out and still becoming whoever they’re becoming,” Dakota Johnson said of her latest film Am I OK? screening at Sundance. “I think we often see those in high school, [in the] early 20s. But I’m like, ‘How could anybody know who they are then at all?’ I feel like I’m just starting to drop into a solidness in myself and I’m 32.”


(3) It would be so lovely if Materialists ignited a sense of hope in people, especially about love. But ultimately, I feel every human being has the option in this life to question and interrogate themselves, and to go inward and ask: ‘What is my real desire? What is my real truth? Who am I?’ It’s not easy to do, and I get why not holding up a mirror to yourself can be a way more enjoyable path. Untangling yourself is uncomfortable and can be quite ugly. But I like that film and art can maybe just whisper a question or an idea to people’s hearts.



인터뷰 출처 : https://www.elle.com/uk/life-and-culture/culture/a64741225/dakota-johnson-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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