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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Nov 07. 2017

사줘, 제발...

 세렝게티로 향하던 지프차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어두운 초콜릿 색의 피부에 삐쩍 마른 몸을 가진 기사가 뒤를 돌아보더니 우리에게 내리라는 듯 손짓을 하며 덧붙였다.

“수베니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내리니 포장되지 않은 도로로부터 나오는 희뿌연 먼지 사이로 다 쓰러져가는 조그만 가게 하나가 눈 앞에 보였다. 가게의 지붕 밑으로는 동물 가죽으로 엮은 북 몇 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보통 기사나 가이드가 안내해서 오는 이런 기념품점들은 대부분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부른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냥 구경만 하려는 마음으로 가게로 다가갔다. 가게 앞으로 다가간 나는 지붕 밑에 매달려 있는 북들 중 하나를 유심히 보았다. 내 지인 중에 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 주면 정말 좋아할 만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보!”


 옆을 돌아보니 그곳에는 케냐의 길거리에서 흔히 보듯 엉덩이가 펑퍼짐한 한 여성이 미소를 지르며 서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 여성은 민트색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피부색과 대비되어 그 민트색은 눈에 쨍-하고 들어올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 보였다. 


“잠보!”

 내가 대답했다. “안녕!”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였다. 서툰 내 스와힐리어에 그녀가 이를 환히 드러내고 소리를 내어 웃어 보였다. “유 원트 디스?” 이어서 그녀가 내가 보고 있던 북을 가리키며 어눌한 영어로 물었다.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긴 장대로 순식간에 지붕에서 북을 내렸다. 가까이서 보니, 북을 감싼 동물 가죽의 아름다운 모양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 참 아름다웠다. 혹한 내가 가격을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낮은 가격이 아니었다. 나는 간단히 북을 사는 것을 단념했다. 그러자 그녀가 “하우 머치?” 하며 내 가슴께로 들고 있던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거기에 원하는 가격을 적으라는 것 같았다. “시스터, 하우 머치?” 그녀가 나를 ‘자매’라고 친근히 부르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얼떨결에 종이와 펜을 받아 든 나는 그녀가 부른 가격의 반의 반을 적어서는 그녀에게 다시 건넸다. 그녀가 적혀있는 숫자를 보고 마치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는 아이처럼, ‘헉!’ 하는 소리를 크게 내더니 “노, 노” 하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러면 사지 않겠다고 말하니 그녀의 얼굴엔 순식간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에게 내가 제시한 가격에서 조금 더 높은 가격을 적어 주며 “시스터, 오케이? 오케이?” 했지만, 나는 이미 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내 단호함을 인지했는지, 그녀가 포기한 듯 물건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더 이상 팔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대신 그녀가 궁금한 듯 나에게 물었다. “웨얼 아유 프롬?”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이 질문 외에도 그녀는 내 이름이 무엇이며, 여기 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길인지 물었고, 나는 대답을 해주기도 하고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시집을 가서 아이들 두 명을 낳았어, 여자애 두 명. 그렇게 둘을 낳고 나니까 남편이 죽어 버렸어, 지뢰를 밟아서. 내가 이 일을 해서 애들을 먹여 살려. 근데 애가 아파서…”


어느새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가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얘기를 듣던 나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웃기게도 곧 나는 그녀보다 더 많이 눈물을 쏟고 있었다. 자동차들이 가게 앞의 도로를 쌩쌩 달리면서 뿌연 먼지가 우리 사이를 흘러 지나갔다. 기침이 나왔다.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여기 주인이 우리들한테 팔라고 시키고 우리가 팔면은 거기서 몇 퍼센트를 떼어 주거든… 근데 잘 팔리지도 않고, 애들은 굶고 있고… ” 


그녀의 찌그러진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그녀를 보며 한 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내가, 아까 전에 사길 포기했던 북을 감정적으로 다시 사기로 결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북을 사겠다고 하니, 눈물을 글썽이던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신속하게 북을 다시 가져왔다. 그녀가 아직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눈을 하고 입은 활짝 웃으며 그러면 반 값으로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내 허리춤에 넣어놓았던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가 거스름돈을 주겠다며 가게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다시 나왔다. 한 손에는 거스름돈으로 추정되는 돈이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모난 돌덩이가 하나 들려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거스름돈을 건네더니 거스름돈을 받아 든 나에게 그 네모난 돌덩이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붉은색의 돌을 간 후에 거기에 간단한 스와힐리어를 조각해 써 놓고, 나무와 산, 강의 그림을 그려 넣은 조각품이었다. 투박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마저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미 나는 예정에도 없던 북을 사는 바람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많은 돈을 쓴 상태라 이 조각품은 정말 사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미안하며, 안 산다는 표시로 고개를 가로젓자, 그녀가 다시 그 찌그러진 눈을 하고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이 아프고, 굶고 있어… 사줘, 제발”


나는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가 민트색 점퍼의 주머니에서 흰 천을 하나 꺼내더니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훔쳤다. 더 사지 않겠다는 내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그녀의 눈물과 흰 천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녀에게 사겠다고 말했다. 가격도 물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가 그대로 눈물을 훔치며 나에게 가격을 말해주었다. 생각보다도 더 비쌌다. 거스름돈에 얼마를 더 얹어야 했기에 나는 다시 허리춤을 뒤져 꼬깃꼬깃 접힌 얼마의 돈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가 흰 천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고는 다시 가게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이번에 그녀가 나오는 데에는 10초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의 한 손엔 다시 거스름돈으로 추정되는 돈이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기괴한 모양의 나무로 엮은 것으로 보이는 모빌이 들려 있었다. 나무로 엮은 줄에 여섯 명의 사람들이 달려 있었는데, 각각의 사람마다 알 수 없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이 모빌의 첫인상은 좀 기괴해 보였다…. 나중의 얘기지만, 내가 이 모빌을 친구에게 선물하고 그날 저녁, 친구는 모빌이 나오는 악몽을 꾸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다시 나에게 거스름돈을 건네고, 이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가까이서 본 모빌은 더 기괴했다. 대체 뭘 표현하고자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 그런 표정을 읽은 것인지 그녀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같은 모양이지만 다른 색깔을 한 모빌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핑크색, 보라색, 초록색 등이 섞여 있어서 좀 전의 모빌보다는 그나마 조금 더 ‘유쾌해’ 보였다. 그녀가 모빌을 내 눈앞에 들며 “시스터, 오케이? 오케이?” 물어보았다. 더는 살 수 없다고 말하려는 찰나, 그녀가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시스터, 사줘, 제발.”

 그녀의 글썽거리는 눈빛은 덤이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녀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치를 보니 하나만 사라는 게 아니라 내가 모빌 두 개 전부를 사기 원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녀의 바람대로 똑같은 모빌 두 개를 사게 되었다. 허리춤의 돈주머니가 한참 가벼워졌다. 그녀가 다시 거스름돈을 들고 나오며 이번에는 다른 물건을 손에 들고 나왔다. 그런 그녀가 내 앞에 서자 마자 나는 물건도 확인하지 않고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다시 마법의 주문을 외우려는 찰나, 내가 말했다. “노, 노.” 내가 생각해도 더 이상 단호할 수가 없었다. 내 얼굴을 보던 그녀가 한 발 물러섰다. 그제서야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레츠 고! 레츠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서 운전기사가 나를 보고 손짓하고 있었다. 가자는 것 같았다. 내가 가겠다고 말하니 그녀가 이를 들어내며 다시 웃어 보였다. 그녀의 뺨 위로 눈물이 지나간 자국이 보였다. 그녀의 이야기가 진짜일 수도 있지만, 가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야기 자체가 사실이던 아니던, 그녀가 내 앞에서 보인 눈물과 웃음에는 진심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녀의 이야기가 정확한 사실인지 아닌지 보다도, 그녀가 나누어 준 감정이 진심인지가 중요했다. 


나는 얼떨결에 사게 된 기념품들을 가방에 쑤셔 담았다. 널널하던 가방이 어느새 꽉 찼다. 공간이 부족했기에 가방 끝에 주렁주렁 북을 달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내 손을 두 손으로 마주 쥐고 그녀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왔다. 그녀의 손은 아주 따뜻했다. 나는 그녀를 긴 시간 동안 안아주었다. 


“레츠 고!” 기사가 더 크게 소리쳤다. 나는 뒤돌아서 북이 덜렁대는 가방을 등에 매고 기다리는 차를 향해 뛰어갔다. 북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달려가는 내 다리를 때렸다. 차에 타서 창 밖을 보니, 그녀가 내가 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차는 곧 출발했다. 양 떼와 소떼들을, 거리에서 뛰노는 맨발의 아이들과 화물차들을 지나치며, 그렇게 나는 중앙선 없는 고속도로를 달려 세렝게티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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