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과 미래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메타버스 세상에서 기술의 가치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기업들이 이공계 양성을 부르짖고 몇몇 학과들은 입도선매처럼 재학 중임에도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된다.
그 정도가 아니다 요즘엔 몇몇 대기업들이 대학과 결탁해서 아예 학과와 전공을 개설한다.
응당 졸업과 동시에 그 기업으로 직행하는 건 당연지사다.
이 정도가 되면 말 그대로 대학은 취업의 전진 기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해묵은 상아탑의 학문 정신이나 대학의 아카데미즘을 재론할 마음은 추후도 없다.
그리고 가속화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뒤지지 않기 위해 이공계를 더욱 강화하는 데도 적극 찬성한다.
문제는 죽어도 이공계가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어쩌면 다가오는 인공 지능 시대에 인간의 지능(인성과 지혜)이 더욱 요긴해지지 않을까 예측하는 수요를 어떻게 하느냐이다.
평소에 뇌과학이나 심리학 같은 분야에 관심이 컸던지라 치유(therapy)에 관한 공부를 지속해 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빅터 프랭클이 주도하는 의미 요법(Logo Therapy)에 주목해 왔다.
은퇴와 함께 텃밭이 딸린 시골 주택에서 흙과 풀을 다루며 평소의 관심사를 공부하는 중에 농진청에서 ‘치유 농업사’라는 자격증 제도를 시행한다. 이제까지 원예 심리 상담 정도의 민간 자격증 하에 운영되던 분야에 국가 자격증 제도가 생기다 보니 세간의 관심이 몰린다.
외국의 사례를 보느라 북구 유럽을 뒤지니 네덜란드나 스웨덴 등에 팜케어(Farm Care) 혹은 그린케어(Green Care)란 이름하에 유사 과정이 운영 중이다. 흥미로운 건 이미 네덜란드 유수의 농업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국내에 들어와 이 분야의 전문가로 선두를 달리는 젊은이가 있다. 미래를 내다봤는지, 얼떨결에 했는지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가히 독보적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모두가 체감했듯이 급하게 달려온 물질적 성장은 우리 모두에게 크든 작든 실존적 공허를 마주하게 한다.
자살률이나 분노 조절 장애 등은 여간해서 수그러들지 않는다. 허기진 배를 채웠으니 공허한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하지만 기술에 함몰된 우리 사회는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묻는 인문학적 노력에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받는 물가는 유류와 곡물이다.
산유국이 아니니 유류야 어쩔 수 없더라도 장차 곡물 등 농수산물과 같은 먹거리가 주요 통제 수단이 돨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WTO다 무역 개방이다 해서 밀려오는 값싼 중국산으로 농어민들이 손을 놓고 있는데, 유사시 수입이 제한되면? 이웃 일본은 유사시에 대비한 최소량의 1차 산업을 정부 지원하에 유지한다고 한다.
비단 이런 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4차, 4차, 6차 산업을 지향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1차 산업은 불가피하다.
특히 환경오염에 따른 제대로 된 먹거리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 높아질 게 뻔하다.
스마트 농업에서부터 해녀, 해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블루오션이다.
숲을 되살리고 자연을 복원하는 일은 단지 임업이나 환경 보전의 차원이 아니다.
첨단 기술이 추구하는 생활의 편리성은 1차 산업에 의한 생존의 보장 없이는 모두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의 포성과 코로나의 위협으로 퇴색됐지만,
그리고 비록 정부 주도하에 시작됐었지만 사회적 가치를 회복함으로써 사회적 자본을 늘리기 위한 사회적 기업 활동은 비록 기술을 활용하지만 그 발상의 원천은 사회인문학적 사유에서 나온다.
드론이 날라나디고 무인 자동차가 횡행하더라도 사람은 밥은 먹어야 되고 호흡은 멈출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정신적 위로와 의미 추구 활동이 확산될 것이다.
혹자는 예언한다. 종교는 쇠하고 사이비는 창궐할 것이라고....
인문사회학의 역할과 기회는 그 사이에 자리매김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