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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Aug 14. 2023

나쁜 리뷰를 남길 것인가?

여러 번의 잽이 강펀치 한 방보다 낫다.

도널드 트럼프가 정치를 하기 전, "Apprentice(견습생)"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었다. 최종 우승자는 트럼프네 사업 중 하나를 경영할 견습생으로 고용된다. 출연진들의 엘리트적인 면도 물론 놀랍다. 그러나, 해고된 사람이 택시를 타고 가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평가하는데, 이렇게 앞에서 웃고 뒤에서는 전혀 다른 속마음을 내뱉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백미다.

이번에 살아남았다고 네가 나보다 낫다는 건 아니다, 떨어졌지만 나도 평가를 할 수 있는 주체다,를 방송으로 보여준달까.

당시만 하더라도 트럼프는 성공한 (듯한) 사업가의 이미지를 잘 구축해왔고, 그의 책도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그 프로그램도 열심히 챙겨봤었다.

그 쇼로 유행했던 최고의 유행어는 "넌 해고다(you're fired)".

한 회 당 한 명씩 탈락 시키면서 트럼프는 읖조린다. 그러면서 종종 "개인적인 지적으로 여기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예전 삼성 그룹에 다닐 때 일이다. 5년차가 다 되어가는데도 회사 생활에 딱히 정을 붙이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회사를 잘 다니는 것인지에 대한 센스도 없던 나에게 그 뒤로 8년 간 더 회사라는 곳을 다닐 수 있는 힘을 주신 고마운 사수가 있었다. 모르는 것은 핵심을 짚어 가르쳐주고, 실수는 미리 발견해서 일러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일을 잘 하고 좋은 후배라고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다. 나에게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좋은 분이다.


그런데, 그 사수는 IMF때 인사팀에 있었다. 하필이면 사람들에게 명예퇴직, 해고, 또는 면직을 전하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때 받은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살면서 주식으로 순수 1억원을 날린 적이 있지만, 날린 1억보다 해고를 전하는 그 때의 일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해고 소식을 전하면, 우는 사람, 욕하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계산하는 사람, 자리를 못 떠나는 사람.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라고 한다.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해고를 당하고도 계속 회사에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부서장이었다가 사원 옆 복도 바로 앞으로 자리를 옮겨도 1년 반을 성실히 더 나왔다고 했다. 근태를 철저히 지켜서 진짜 해고를 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함이라고 했다.

남에게 해고를 전하는 일은, 지킬과 하이드의 하이드처럼 전혀 다른 자아로 갈아껴야 전하는 사람이 온전할 수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나쁜 평가를 받는 일. 기분부터 나쁘다. 상황과 역사를 온전히 모르는 평가자에 대한 원망도 생긴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한 평가절하에 분한 감정이 치밀어 오를 것이다. 네가 뭘 알아, 하면서 반항심도 생긴다. 심지어 나쁜 평가가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 감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걸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은 값싼 위로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평가가 난무한 시대에 산다.


에어비앤비 이용을 해도 호스트와 손님이 서로 평가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호 평가를 하면 전반적으로 평가 점수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도 잘 줄테니, 너도 잘 줘. 물론 서로 평가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서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예전에 남긴 평가는 볼 수 있으니 이 사람이 까다롭게 점수를 주는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후한지는 기록이 남는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우리 가족을 에어비앤비 평가 점수에 많이 속았다. 구글맵의 맛집, 에어비앤비 등 평가를 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는 그래서 3가지를 다 같이 봐야 한다.

"리뷰의 양, 리뷰 점수, 최근 리뷰의 경향". 점수는 4.8인데 리뷰의 개수가 10개이면 신중해야 한다. 나라면 이런 집은 과감하게 거른다. 그리고, 나는 가격대비 서비스나 시설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낮은 점수와 해당 내용을 전해 준다.


동생이 파리에 놀러왔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은 울적한 상태에서 왔다. 가이드 투어를 갔는데, 코로나 직후라서 관광객이 물밀듯이 오는 시기였다. 그 가이드는 돈을 세느라 너무 바쁘고 본인 평생에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고 자랑을 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그 전날 몽마르트에서 도둑을 만나 80유로를 뜯긴 동생은 기분이 더 울적해졌다.


나는 물었다. "그 가이드는 그래서 설명을 잘 하고, 안내도 잘 했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그럼, 하루 이틀 더 지난 뒤에 좀 차분해지면 너가 겪은 사실 위주로 리뷰를 남겨" 라고 했다.

리뷰가 쌓일 수록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쌓이는 것이다. 가이드가 부정적인 리뷰를 보고 더 갈고 닦아서 훨씬 나은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개선할 점에 대해서 리뷰를 남기지 않으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나는 나쁜 리뷰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에 근거하여 개선할 점 위주로, 비난이 아닌 비판 말이다. 곧바로 해고 소식이 아닌,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쁜 리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와 정반대인 남편은 역시나 나쁜 리뷰는 절대 남기지 않는다.

한 번은 이태리 포르토피노의 에어비앤비가 가격대비 너무 형편없어서 점수를 낮게 줘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1박에 50만원을 낸 숙소인데, 모든 수건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남편은 수건을 밖에 널었는데, 사람들이 골목에서 담배를 피니 그 냄새가 올라와서 밴 것 같다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화장실 문은 고장나서 닫히질 않았다. 남편이 안에서 잠궈 봤다가 갇혀서 1시간 동안 낑낑대며 손잡이를 분해했다가 다시 껴서 겨우 나왔다. (여긴 닫거나 잠그면 안되겠네, 하면서 바보같이 히죽 웃었다. 문이 계속 안 열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 내가 한심했다)

와이파이도 잘 잡히지 않았다. (호스트에게 연락했는데 별 수 없어서 그냥 인터넷 없이 살았다)

침구류도 세탁을 안 해둔 양 냄새가 좋지 않았다. (아침에 또 샤워를 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호스트 브루노는 선심쓰듯 냉장고에 샴페인은 선물이고, 사탕도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중요한 것을 잘 해야지, 이 사람아. 나는 꽤나 화가 났다. 그리고 예약한 남편에게 3점을 주면서 이 현황에 대해서 써야 한다고 했지만, 남편은 본인 이름으로 된 그 어떤 글에도 남들에 대한 나쁜 것을 남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약을 늦게 하도록 미리 챙기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 내 탓도 있다고 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구분해야 한다. 좋은 사람 포지셔닝도 좋지만, 개선할 점 위주로 사실 위주의 리뷰는 필요하다. 잽을 자꾸 맞아야 일어나는 법을 익힌다. 잘하는 줄 알고 깐족대다가 강펀치를 맞으면 KO패다. 작은 나쁜 리뷰 남기는 것. 잠깐 기분은 나쁠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것.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오늘 또 얘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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