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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Aug 20. 2023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

밤 11시

여행 책자에 늘 나오는 내용이 있다. 이 지역을 여행하기 좋은 시기.

파리는 5 - 10월이다. 겨울에는 해가 4~5시에 지고, 그나마도 햇빛이 거의 없어 비타민 D를 부러 꼭 먹어야 한다. 온돌도 없고 습기도 있는 편이라 집에 있어도 으슬으슬 뼛속이 춥다. 두꺼운 옷과 양말을 껴입고 살아야 한다 (젊으면 좀 덜 할 순 있다).


유럽의 매력은 그림 같고 엽서 같은 하늘색 하늘부터 시작인데, 겨울엔 이 그림이 잘 안 나온다. 그래서 여름보다 훨씬 적은 수의 관광객이 찾는다. 하지만, 파리의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가 분명하다. 겨울에 가장 먹기 좋은 굴, 라끌레 치즈를 녹여서 감자 위에 얹어서 먹기, 추위를 잊게 하는 따뜻한 뱅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 그리고 여름보다 사람들이 적으니 어딜 가도 쾌적하게 구경할 수 있다는 환경.

그럼 언제 가는 게 좋을까?  


내가 가고 싶을 때 여행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다 듣고 장단점을 파악한 뒤, 그저 내가 원하는 형태와 방향을 선택하고, 내 선택을 사랑하면 된다.

이렇게 쉬운데 여행이든, 직업이든, 삶의 방식이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특히, 몇 년 전까지, 그러니까 30대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경험에 많이 의존했다. 다들 이 때 여기를 가니까 나도 가봐야지. 남들이 이 길이 좋다고 하니까 힘들어도 버텨야지,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 이렇게 해야지.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괜찮은 방법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알기 때문에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수가 좋다고 하는 길이 늘 옳고 나에게도 맞는 건 아니다. 사실 이건 너무나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라 고루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지루한 이야기를 일상에서 - 큰 결정도 아니고 작은 결정에서조차 - 잘 실천하고 있는지 물으면 자신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파리 시내에 메르시(Merci)라고 하는 편집샵이 있다. 식기류, 소품, 옷, 가방들을 판매하는 곳이다. 제품 전시 방식(visual merchandising)이 파리지엔느 느낌을 딱 표현하고,위치도 마레 지구에 있어서 들리기 좋고 건물도 높은 층고에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개방감이 남다르다. 한 마디로 소셜미디어에 다녀왔다고 올리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날씨가 좋은 토요일 오후, 2시간 동안 그곳에서 관찰을 했다. 한국인들이 정말 많이 오는 곳인데, 궁금했다. 무얼 사고, 여길 왜 올까.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가장 붐비는 이 시간에 한국인이 100명 가까이 방문했다. 1층 계산대 근처에서 한참을 관찰했다.


다들 무얼 많이 사나. 대다수가 메르시의 에코백 (35euros)를 구매했다. 색깔이 파스텔톤이고 크기도 적당해서 괜찮은 제품 중 하나다. 하지만, 무려 5만원 가까이 하는 에코백 사러 여기까지 왔을까? 여기가 예쁘다고 해서 동선에 넣었고, 막상 보니 예쁜 공간이긴 한데, 집에 사들고 가려니 마땅한 것이 없고, 그냥 가기는 걸음이 아깝고 애매하다. 에코백 앞 사람들이 웅성웅성 서서 이것저것 매보고 사가고, 오며가며 여기 에코백을 맨 사람들을 꽤 본 것 같으니 나도 같이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유투브 채널을 보는데, 어떤 인테리어 회사 사장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본인 손님들 중에 대다수가 이케아에 가서 목각인형을 산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 생각에 장식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안 사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본인이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니까 따라서 사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에 시간 쏟기.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 여기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밤 11시다. 육아도 퇴근하고, 연구도 퇴근한 그 시간. 일분 일초가 아까운 나 혼자만의 소중한 시간.


내가 진짜 좋아서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을 때에는, 이 황금같은 시간에 소셜미디어나 네이버 기사를 의미없이 넘겨 보면서, 시간을 물처럼 쓰기도 했다. 도대체 지나고 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그 많은 게시물들을 이삼십분을 보고 있었다.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한다. 노트를 펴고 오늘 있었던 일들과 생각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아주 약간의) 스트레칭.  


인생은 짧으니 남의 눈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한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먼저 하기가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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