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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Oct 28. 2023

Joe의 생일 파티

말 그대로 내일모레글피가 둘째의 돌이었다. 타국에 살고 있으니 돌잡이 용품은 구하지도 못했고, 풍선과 케익은 동네에서 예쁜 걸로 사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아무리 발로 키운다는 둘째이지만, 첫 생일인데 말이다.


마음만 동동거리고 있는데, Dessie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늘 만나는 곳이고, 밴드 공연 같은 행사도 열어주는 카페, La Cantine 주인인 Joe가 내일 생일이라는 것이다. Joe가 우리에게 일 년 내내 도움을 많이 주었으니, 고마움을 표시하는 생일 파티를 열어주자는 것이고, 내일 오전 9시에 하자고 했다.  

케익, 풍선 등 생일 파티에 필요한 것들은 본인이 직접 다 준비했으니, 가벼운 선물 하나 챙겨서 참석해 축하를 해주라는 연락을 하는 것이다.


Dessie는 학교 어머니회 같은 단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학교 및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줏 대감이고, 그러면서도 잰체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다. 그녀가 갖고 있는 수 많은 장점 중, 가장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바쁜 가운데에서도 잃지 않는 그녀의 진심이다.


그래도, 둘째의 첫 생일에는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 주제에, 동네 카페 주인장 생일에 선물까지 들고 가는 행위가 스스로 설득이 안됐다. 거기 갈 시간이 있으면 돌잡이 용품을 더 구하려고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못 간다고 답을 했고, 그녀는 알겠다고 했다.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그 누구를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이 좀 의아한 일이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남편의 팀 인턴이 파리에 집을 구해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3주만 머무는 곳이었는데, 그 집 주인이 너무 잘 해주고 고마워서 이사 가기 전에 와인 선물을 한다는 것이다. 3주치 숙박비는 이미 다 지불했고 이제 곧 이사를 하지만, 전 주인에게 선물할 와인을 들고 퇴근하는 인턴. 이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물음표를 갖고 퇴근했다.


아무리 잘 해줘도 그렇지, 집주인에게 돈 다 줬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으면 됐지, 와인까지 선물할 일인가?

나도 거들었다.

그렇지?

나도 동네 카페 주인 생일 파티인데 못 간다고 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곳 문화를 너무 가벼이 여긴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한국인 둘이 앉아서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같은 날, 카페 주인 생일 파티 참석과 인턴의 집주인 와인 선물 사건을 겪으니,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정(情) 문화가 여기서는 이렇게 발현될 수도 있지 않은가?

풀어서 표현하자면,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특히 잘하는 문화다. 먼 사람들에게 딱히 정을 줄 일도 없고, 준 기억도 없으니, 생소할 법도 하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도 금방 말을 트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깊이는 논외로 하자)


남편은 곧 말했다. "우리는 아마 평생 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게 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인 것 같으니 내일 Joe 생일 파티는 잠깐이라도 들리는 게 어때?"


12살 사춘기 소년과 1살 우량아를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키우면서 연구까지 하는 것.

단순하게 살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복잡하기만 한 삶이다. 매 순간 복잡한 게 나타날 때 마다 쳐내고 부러뜨려도 모자랄 판인데, 동네 카페 Joe 생일 파티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일 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늘 쥐어짜다가 팔꿈치 인대가 너덜너덜해졌단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동네 카페 주인 Joe의 생일 파티에 나는 선물까지 들고 갔다.

짜잔! 서프라이즈! 내가 왔다! 생일 축하해!


모인 사람들과 비쥬(볼 뽀뽀 인사), 안부도 묻고, 커피도 마시고, 생일 파티 노래까지 30분 안에 후루룩 마치고, 또 집으로 돌아왔다. 안 갈 것처럼 저항하더니, 너무나 쉽게 생각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을까.



좋은 관계야말로 우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

좋은 관계에 필수적인 관대함은 긍정의 선순환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돕는 사람에게도 이익이 된다. 관대한 태도를 취하면 뇌가 좋은 감정을 느낄 준비를 하고 그런 좋은 감정 때문에 미래에 다른 사람을 도울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한다. -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보고서



많은 일들을 그렇게 심각하게 접근할 필요가 없다.

잠깐 들러서 축하해주는 거는 할 수 있지, 둘째 첫 돌 준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

첫 돌 준비를 안 한 것은 스스로를 탓할 일이고, 그것 때문에 초대를 받았고 들릴 수 있는데 안 간다고 하는 것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일 수도 있다. 그리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나태주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관계를 쌓는 일은 절로 굴러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자발적인 참여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관대하고 친절하게. 나와 남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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