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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Apr 20. 2024

입대 영장


 아이패드 스마트 키보드가 고장 나고, 곧바로 가족여행을 가는 바람에 2주 동안 글을 못 썼다. 주기적으로 글을 안 쓰는 기간이 찾아온다. 따지고 보면 글을 쓰는 기간보다 글을 안 쓰는 기간이 더 길다. 내가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항상 의문이다. 어쩌면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할 줄 아는 게 글 쓰는 것밖에 없어서 자꾸만 글을 쓰게 되는 게 아닐까.



 입대 영장이 왔다. 요즘 영장은 편지가 아니라 카카오톡으로 온다. 올해에 군대에 갈 생각이긴 했는데 이렇게 일찍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여름 지나고 가고 싶었는데. 국가가 오라 명하면 내게는 순순히 응하거나 범죄자가 되거나 선택권은 둘밖에 없다.


 내 친구들 중에선 내가 군대를 제일 늦게 가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하나둘 가기 시작하고 제대하더니 내 차례가 왔다. 어째서 나는 지금에서야 군대를 가는 걸까. 옛날의 나는 임용고시에 한 번에 합격할 줄 알았지. 두 번이나 떨어지는 건 내 계획에 없었다고. 인생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군대에 가기 싫은 이유 중 1년 반 동안 자유를 뺏기는 것이 가장 클 것이다. 18개월 동안 사회와 단절되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랑 부대끼며 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작은 스마트폰 화면이나 몇 개월에 한 번 나오는 휴가로만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괴롭다.


스마트폰이라도 있어서 다행


 군대에 간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 군대 안에서 ‘개인 시간’은 전혀 없다고 한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존재하는 시간, 군대에 그런 시간은 없다. 이게 제일 두렵다. 예민하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운 인간이라서 더 불안하다. 복무기간도 더 길고 스마트폰도 없고 가혹행위도 심하던 옛날에는 어떻게 버텼는지 의문이다.


 내게 애국심은 없다. MZ 새끼들 나라 위하는 마음도 전혀 없어서 문제라고 욕할지도 모르지만, 욕을 듣는다 해서 없던 애국심이 생길 리 없다. 나는 애국심이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얘기는 아니다. 어떤 커뮤니티에서 한국에 전쟁 나면 입대할 거냐 도망칠 거냐 투표한 적이 있는데 도망친다는 답변이 50% 넘게 나왔다. 어떤 유튜브 영상에서는 징집 명령을 거부하면 징역 7년이라고 하자, 댓글에 ‘전쟁에서 뒤질 바에는 징역 7년 산다 ㅋㅋ’라는 댓글이 추천수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동의한다.


동의하면 개추 ㅋㅋ


 모두 알 것이다. 한국에서 군인의 인식은 시궁창이라는 걸. 6.25 전쟁 참전 용사가 폐지를 줍고 다닌다는 이야기, 군인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하자 성차별 논란이 일어난 이야기, 위문편지에서 눈이나 치우라고 조롱한 이야기, 군가산점이 성차별이라는 이유로 취소된 이야기, 예비군에 갔더니 수업이 결석 처리되었다는 이야기, 젊은 여성들이 군대를 군캉스라고 조롱한다는 이야기 등등을 들어보면 이 나라의 군인 인식은 얼마나 밑바닥인지 궁금하다. 한 나라의 남성으로 태어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군인이 되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멸시라니. 상황이 이런데 애국심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민주주의 못 잃는 그분들의 투표


 군대에 가는 것 자체는 슬프지 않다. 남들도 다 가는 군대다. 긍정적으로 보면 군대에 간다는 것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증거다.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지, 억울해하거나 원망해야 할 일이 아니다. 물론 요즘에는 건강하지 않은 사람도 군대에 막무가내로 끌고 가서 논란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경우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고, 신검에서 1급이 떴다. 나는 자랑스러운 이 나라의 대한남아로서 군인이 될 것이다. 내 친구들이 그랬고, 선배들이 그랬고,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슬픈 건 따로 있다. 내가 나라를 위한 소모품이 된다는 것. 전쟁이 일어나면 전선에 나가 총알받이가 되어 목숨을 내놓는 일회용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입대하는 것이, 내가 그 사실에 순응하는 것 같아서 슬프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계약서에 내 손으로 직접 싸인을 하는 기분이다. 거부권은 없다. 손목 자해 몇 번 한 것만으로는 신검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사회에서 이룬 것 하나 없이 20대 중반에 나는 군대에 간다.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아직 알리지 못했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 브런치에 올릴 글이나 최대한 많이 쓰고 가야겠다. 군대에서 스마트폰이 허용되면서 자율 시간을 보장해주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면 군대에서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시간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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