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비단 Apr 02. 2024

브런치 '응원하기'의 심각한 문제점

대체 누가 기획했냐



 2024년 2월 26일, 브런치에 ‘응원하기’가 도입되었다. 응원은 후원 시스템으로, 독자가 작가에게 자율적으로 후원금을 주는 것이다. 그동안 브런치 작가의 수입원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같은 공모전에 당첨되는 것밖에 없었다. 응원하기는 브런치 작가가 수입을 얻을 기회를 늘려 창작의 보상을 줄 뿐 아니라 글을 계속 쓰는 동기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하지만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브런치의 응원하기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지 싶을 정도의 의문이 든다. 한 번 제대로 살펴보자.




1. ‘후원’ 기능은 있는데, ‘후원을 유도하는’ 기능은 없다.


 어떤 기깔난 상품을 만들었다고 하자. 이 상품을 판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인터넷 쇼핑몰과 오프라인 판매점에 유통하기만 하면 땡일까? 물론 이렇게만 장사해도 괜찮지만, 요즘 시대에는 보통 홍보를 한다. TV나 인터넷에 광고를 하거나, 인플루언서에게 광고를 맡기거나, 하다못해 리뷰 이벤트를 해서 구매자들이 좋은 리뷰를 남기도록 한다. 사람들이 상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후원도 마찬가지다. ‘후원’ 기능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후원을 유도하는’ 기능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브런치의 응원하기는 후원을 유도하는 장치가 하나도 없다.


포스타입의 후원 유도. 다음 내용을 이어서 보려면 구매해야 한다.


 다른 플랫폼을 살펴보자. ‘포스타입’은 무료 콘텐츠와 유료 콘텐츠를 구분하여, 후원하지 않은 사용자는 무료 콘텐츠만 볼 수 있고, 유료 콘텐츠를 보려면 후원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 있다. 콘텐츠를 보다가 중간에 끊기고, 이 다음을 이어서 보려면 후원을 하라는 식이다. 다음 내용을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기본적인 후원 유도다.


유튜브 채널 '너진똑'의 멤버십. 배지와 이모티콘만 제공하지만, 많은 구독자가 멤버십에 가입한다.


 ‘유튜브’는 멤버십 기능이 있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일반 사용자는 볼 수 없는 멤버십 회원 전용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댓글에 이모티콘을 사용할 수 있다거나, 숨겨진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또한 멤버십 회원은 닉네임 옆에 멤버십 배지가 뜬다. 이 작은 아이콘으로 내가 이 유튜버를 후원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2'의 미리보기. 4화를 먼저 보고, 댓글도 남길 수 있다.


 ‘네이버 웹툰’은 어떨까? 네이버 웹툰은 ‘쿠키’라는 화폐가 있다. 이 쿠키는 유료 작품을 구매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보통은 웹툰을 미리 보는 데 사용한다. 남들보다 3-4화분을 먼저 봐서 내용을 몇 주 먼저 아는 것이다. 웹툰 미리보기가 요즘 웹툰 시장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말도 있다.


 포스타입의 후원, 유튜브의 멤버십, 네이버 웹툰의 미리보기 모두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무료 콘텐츠만 봐도 충분히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후원자에게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플랫폼이 사용자가 크리에이터에게 후원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후원을 유도하는 기능이 있으면 후원을 하는 비율이 몇 배로 늘어난다.



응원 댓글을 박제하는 걸로 후원 유도가 충분할까?


 브런치는 후원을 유도하는 기능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응원 댓글을 모두가 볼 수 있게 박제하는 걸 후원 유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부족하다. 사실상 후원을 사용자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겼다. 사용자가 자신이 감명 깊게 본 콘텐츠에 자율적으로 후원하는 게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사람은 지갑을 여는 데 굉장히 신중하고 인색하다. 후원이 후원자의 자율에만 의지하면 후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응원순으로 글을 정렬해서 맨 위에 있는 글을 클릭하면 후원금이 10만 원을 넘는 경우가 잘 없다. 다른 플랫폼과 비교하면 후원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이건 후원 기능을 만들어 놓기만 하고 방치하고 있는 수준이다. 후원 기능이 있다면, 후원을 유도하는 기능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솔직히 후원 유도 기능이 없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니다. 브런치만의 운영 철학이 있을지도 모르고, 응원 댓글이 박제되는 것만으로 후원 유도가 충분했다고 오판했을지도 모르니깐. 하지만 지금부터 말할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대체 어떤 정신머리로 이딴 짓을 했는지 이해가 전혀 가지 않을 정도다.




2.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후원금 순 정렬 기능


진짜 처음 봄


 바로 ‘후원금 순 정렬 기능’의 존재다. 브런치 메인에서 연재 브런치북 중 오늘 올라온 글을 응원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이 왜 문제냐고? 이건 존재 자체가 문제다.


 정렬 기능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내가 원하는 글을 찾기 위해서다. 오늘, 이번주, 이번 달에 어떤 글이 인기가 많은지, 어떤 글이 댓글이 많이 달렸는지, 아니면 글이 긴지 짧은지 등. 기본적으로 인기가 많은 글을 알고 싶어서 정렬 기능을 주로 사용한다.


 브런치는 몇 년 동안 정렬 기능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최신순이나 정확도순밖에 없었다. 나는 이 점이 정말 불편했다. 하지만 주로 구독한 작가 글 위주로만 보았기 때문에 딱히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브런치가 뜬금없이 응원순 정렬 기능을 도입했다. 인기순 정렬도 없는 브런치가 말이다. 어떤 글이 후원을 많이 받았는지 정렬하는 기능을 도입했다고.


유튜브의 검색 필터. 어디에도 '후원금 순 정렬'은 없다.


 잠시만 기억을 떠올려보자. 유튜브에 후원금이 많은 영상 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이 있는가? 네이버 웹툰에 쿠키를 많이 태운 만화 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은? 포스타입에 멤버십 가입을 많이 한 콘텐츠 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은? 없다. 이들뿐 아니라, 내가 아는 한 후원금을 많이 번 순으로 콘텐츠를 정렬하는 기능은 ‘텀블벅’처럼 후원 자체가 목적인 플랫폼 말고는 없다.


 왜 콘텐츠 플랫폼에 후원금 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이 없을까? 그 이유는 크게 기능적 이유와 심리적 이유가 있다. 기능적 이유로는 후원금의 크기는 콘텐츠의 인기를 나타내지 않고, 심리적 이유로는 콘텐츠의 가치를 돈의 크기로 판단하면 거부감이 든다.


 기능적 이유를 살펴보자. 후원금의 크기가 콘텐츠의 인기를 나타낼까? 상관관계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굉장히 적다. 기본적으로 위에서 예시로 든 플랫폼들은 무료 콘텐츠가 주다. 후원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다. 후원금과 인기는 상관이 없다. 실제로 브런치 글을 살펴보면 응원 댓글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이 뜬금포로 10만 원이 넘는 거액을 후원한 경우가 왕왕 있다. 후원이 자발적이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콘텐츠여도 후원은 적은 경우가 있고, 인기가 많지는 않은데 후원은 많은 경우도 잦다.


'텀블벅'처럼 후원 자체가 메인이거나,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처럼 유료 콘텐츠가 메인인 플랫폼에 수익순 정렬이 있다


 따라서 무료 콘텐츠가 메인인 플랫폼에서 후원금의 크기는 인기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없다. 텀블벅처럼 후원 자체가 목적인 플랫폼에서나 후원금의 크기가 인기와 관련 있다. 후원을 하러 텀블벅에 왔으니 후원금이 많은 프로젝트가 곧 인기가 많은 것이다. 자연스레 사용자는 어떤 프로젝트가 후원금이 많이 쌓였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텀블벅은 기본적으로 후원 달성률이 높은 순으로 프로젝트를 보여준다.


 그런데 브런치를 이용하는 사람이 어떤 글이 후원금이 많은지 알고 싶어 할까? 나는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고 본다. 아직 브런치가 후원이 메인인 플랫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응원순 정렬은 기능적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후원 유도 기능이 하나도 없는 이 상황에서는 더더욱.




 두 번째 이유, 심리적 이유를 보자.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정렬 기준은 곧 플랫폼이 콘텐츠의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알려준다. 거의 모든 플랫폼에 조회수, 좋아요 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이 있는 이유가 바로 플랫폼이 조회수와 좋아요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밀리의 서재'는 완독률, 완독 예상 시간에 따라 4가지로 책을 분류하여 추천해준다.


 ‘밀리의 서재’를 예로 들어보자. 밀리의 서재는 구독제 전자책 플랫폼이다. 밀리의 서재에는 다른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는 정렬 기준이 있다. 바로 ‘완독률’과 ‘완독 예상 시간’이다. 완독률이 높거나 완독 예상 시간이 짧다면 사용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바쁜 현대인이 읽기 적합할 것이다. 반대로 완독률은 낮지만 완독한 사람들의 완독 시간이 길다면? 완독한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끝까지 읽을 정도로 좋은 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밀리의 서재는 완독률의 높고 낮음, 완독 예상 시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4가지로 책을 분류하여 이용자에게 추천한다. 이렇듯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렬 기준으로 플랫폼이 콘텐츠의 가치를 어떤 식으로 판단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 브런치에 응원순 정렬이 존재하는 건 무슨 뜻일까? 브런치가 후원금이 높은 글이 가치 있는 글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브런치는 ‘작품이 되는 이야기’를 표방한다. 아무나 글을 쓸 수 없고, 작가 신청을 하고 합격한 다음에야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쓸 수 있다. 조회수를 위해 어그로를 끄는 쓰레기 같은 글이 아닌, 진지하고 세련되고 가치 있는, 책으로 내도 손색이 없는 글을 추구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광고했고,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을 불러 모았다. 나도 글에 진심인 듯한 태도를 보고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 했고, 브런치 작가에 신청했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응원하기를 출시하더니, 후원받은 금액 크기 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을 추가한 것에 큰 실망을 했다. 후원 유도 기능 하나 없이 후원을 추가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응원순 정렬은 대체 누가 어떤 생각으로 기획했고, 어떻게 회의에서 통과했고, 왜 출시할 때까지 누구도 피드백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건 다른 플랫폼에서 후원 기능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조사를 하나도 하지 않은 수준이다. 조사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이런 식으로 나와선 안 됐다.


 어떤 콘텐츠 플랫폼이 콘텐츠의 가치를 그 콘텐츠가 벌어들인 돈의 액수로만 판단한다면 어떨까? 사용자와 크리에이터들이 그 플랫폼을 좋게 볼까? 내 생각에는 그 플랫폼을 돈에 미친놈들로만 볼 것 같다. 콘텐츠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장사꾼들. 콘텐츠를 수익에 따라 서열을 매기는 사업가들. 이게 내가 최근에 브런치에게 드는 생각이다.


돈이 최고야!


 카카오가 후원금 수수료를 떼먹는지 아닌지 후원을 받은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카카오가 후원금 수수료를 벌기 위한 의도로 응원순 정렬 기능을 추가한 게 맞다면, 이는 지금까지 브런치가 보여주었던 자신들의 철학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브런치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응원하기 위해’ 응원하기를 추가한 게 맞는지.




 브런치에게 요구한다. 하루빨리 후원을 유도하는 기능을 추가하고, 응원순 정렬을 없애라. 정렬 기능을 넣고 싶으면 특정 기간에 조회수, 라이킷수, 댓글수 순으로 정렬하는 기능을 넣어라. 다른 플랫폼이 어떻게 운영하는지 조사하고, 벤치마킹해라. 지금의 응원하기는 반쪽짜리도 못하다. 특히 후원 금액 순 정렬은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한 신박한 기능이었다. 제발 없애라.








구독, 라이킷, 댓글,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추천 글

https://brunch.co.kr/@bidancheon/54


https://brunch.co.kr/@bidancheon/76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북 매일 연재를 비추천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